↑ 김승재 한서대 레저해양스포츠학과 교수 |
한국사회체육학회장을 지냈던 김승재 한서대 레저해양스포츠학과 교수가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후보들을 향해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교수는 "현재 체육 관련 업무는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어 협조 체제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스포츠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스포츠위원회나 체육부, 체육청 등 정부 부처의 하나로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이후 장관급의 체육청을 설치해 전문체육 복원에 나서면서 체육에 집중 투자를 했다"며 "단숨에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 파리 올림픽까지 우리나라를 따돌리고 저 멀리 앞서가기 시작했는데, 이는 체육청의 설립을 통해 전문체육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였다"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은 한국 스포츠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정부 부처의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경기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여 국민 건강 증진과 국제 대회에서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최형규 기자 choibro@mk.co.kr ]
<기고문>
모든 후보들이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에 힘을 보탰으면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부쳐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불혹을 눈앞에 둔 후보부터 고희를 훌쩍 넘긴 후보까지 6명이 나서 역대 선거로는 최다 후보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큰 뜻을 품은 후보가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후보가 등장했다는 것은 대한체육회장 후보 선택에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에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후보들은 저마다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위한 적임자로 자임하고 있지만 공약들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이런 가운데 글쓴이의 눈길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 부문은 ‘체육회 변화의 완성은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이라는 공약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은 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갈등의 씨앗이 되어 왔다. 국가스포츠위원회가 설립되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 부문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게 되면서 부처 업무가 축소되는 것에 따른 반감이 갈등의 한 요소가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스포츠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스포츠위원회가 됐건 아니면 체육부나 체육청이 되었건 간에 어느 것이나 정부 부처의 하나로 반드시 설립되어야 할 시기가 왔다는 점을 모든 체육인들이 동의를 할 것 같다. 현재 체육 관련 업무는 정부각 부처에 산재되어 있다. 이 바람에 협조체제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체육을 총괄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도 국가스포츠위원회와 같이 정부 별도 조직으로 체육을 총괄하는 부처가 존재해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밀월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1981년 9월 30일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뒤 1983년에 정부 부처로 체육부가 발족했을 때였다.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 노태우 등이 체육부 장관을 역임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체육부 실무자로 체육현장에 밝은 전문가들이 포진해 정책과 현장이 조화를 이룬 덕분이기도 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아시아의 변방에서 단숨에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고 일본도 제치면서 국민들의 자존심을 한껏 세웠다. 이후 체육부는 체육청소년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체육을 군사정권의 부산물로 여기며 작은 정부를 구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문화부에 체육부를 흡수시켰고 한때는 부처 이름에서 조차 체육을 제외하는 홀대를 당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체육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담당 2~30명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서글픈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이들 체육담당들은 수년 동안 단 한차례도 현장 방문은 하지 않은채 탁상행정으로만 우리나라 체육 전반을 쥐락펴락 했다. 어느 고위 관계자는 “올림픽에서 메달 한 개 따지 못해도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면 반대로 일본의 예를 보자.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치른 뒤 전문체육보다는 생활체육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더 이상 전문체육은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하지만 일본은 갓 20년이 지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에 추월을 당했고 이 충격은 그대로 올림픽까지 이어지면서 아시아 스포츠에서 조차 2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일본은 56년만인 2020년 도쿄로 올림픽을 유치한 뒤 장관급의 체육청을 설치해 전문체육 복원에 나서면서 풍부한 저변을 바탕으로 체육에 집중 투자를 했다. 일본은 단숨에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 파리 올림픽까지 대한민국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저 멀리 앞서가기 시작했다. 특히 파리 올림픽에서 폐회 직전까지 대한민국과 똑같이 금메달 13개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가 막판에 레슬링에서 7개의 메달을 무더기로 따내 금메달 20개로 종합 3위에 오른 것은 바로 체육청의 설립을 통해 비인기종목의 집중적인 육성에 따른 결과였다. 반면 한국은 서울 올림픽 이후 소위 헝그리 종목인 레슬링과 복싱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은 한국 스포츠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다양한 정부 부처의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경기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여 국민 건강 증진과 국제 대회에서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스포츠 인프라 확충과 재정 지원을 통해 지역 스포
체육발전에 헌신하겠다며 대한체육회장에 도전한 모든 후보들이 당락의 유불리를 떠나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을 한마음으로 찬성하며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서면 어떨까?
김승재 이학박사
한서대학교 레저해양스포츠학과 교수
전 한국사회체육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