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기술 발전, 심리적 방어기제도 한몫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거짓말을 크게, 단순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믿는다’며 선전·선동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셔머는 “유튜브 등 미디어의 발달과 딥페이크 등 기술 발전으로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 선동들이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고 밝혔다.
#2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지난 9월 10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자들이 주민들이 기르는 개, 고양이를 먹는다”는 발언의 출처로, 120만 팔로우를 지닌 미국의 극우 음모론자 로라 루머의 SNS를 주목했다. 그녀가 며칠간 ‘이 괴담’을 퍼트렸고 이를 트럼프가 이민자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인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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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난 7월 19일 미국 IT보안업체 크라우드스크라이크사가 보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MS운영체계와 충돌을 일으켜 MS 클라우드에 이상이 생기면서 컴퓨터 화면이 온통 파랗게 변하는 이른바 ‘죽음의 블루스크린BSOD-Blue Screen Of Death’ 현상이 나타났다. 이후 전 세계의 주요 항공, 금융, 통신 등의 서비스가 마비되며 혼동이 일었다. 곧 ‘제3차 세계대전이 곧 시작된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사이버 공격을 모의했다’ 등의 음모론이 등장했다.
‘음모론陰謀論, conspiracy theory’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이다. 음모와 음모론은 다르다. 음모는 그 실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음모론은 논리와 이성을 떠나 증거를 변형 혹은 왜곡하고 그 사건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우연성’을 부정적, 혹은 의도적 방향으로 확대 해석한다. 음모론의 특징 중 하나는 매우 단정적이라는 것이다.
동서고금 이래 수많은 음모론이 있었다. 몇몇 음모론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일테면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북침설, 남침 유도설’도 있다. 또 아직도 아물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아픔인 이태원 참사에서도 ‘각시탈을 쓴 사람이 길바닥에 아보카도 오일을 뿌리고 다녔다’는 음모론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이른바 ‘백신 괴담’이 떠돌았으며 심지어 미국에서는 ‘코로나19는 특정 인종을 겨냥, 백인과 흑인은 취약하고 유태인과 중국인들은 강하다’는 음모론이 큰 힘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서구 사회에서 음모론을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비밀결사 단체인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이다. 이 두 조직이 세계의 권력을 조종하거나 비밀리에 전 세계 국가와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음모론의 핵심이다.
객관적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이른바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도 음모론을 ‘신앙’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페이크와 팩트』(김보은 옮김 / 디플론 펴냄)의 저자 데이비드 로버트 그리임스는 흑역사의 오류를 탐색한 학자이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주변을 파악하는 인간의 능력과 호기심은 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이 기능 때문에 인간은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며 “무작위로 발생한 사건들 사이에서 패턴을 찾거나 자신이 관찰한 결과만을 토대로 추론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셔머의『음모론이란 무엇인가』(이병철 옮김 / 바다출판사 펴냄)를 보면 음모론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풀린다. 그는 3가지로 음모론을 분석했다. 권력기관이나 권위 있는 위원회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기존 진실의 대리적 역할을 음모론이 한다는 ‘대리 음모주의’,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생을 둘러싼 음모론 같은 ‘부족 음모주의’, 음모론을 믿지 않아서 입는 피해가 믿었을 때 입는 피해보다 많아진다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인한 ‘건설적 음모주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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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했다.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대단한 사건이 사소한 이유에서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납득하기 어려운 데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더 큰 조직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성’,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으니 차라리 음모론을 믿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자성’ 등이 그것이다.
“셔머는 “미디어가 발달하고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현대 사회에서 음모론에 대응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음모론을 막기 위해선 ‘교육’과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더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덜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또 투명성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쌓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참고 및 발췌 : 2024년 9월 12일, 매일경제, 한창호 기자 ’현대 사회는 음모론의 천국..보고 듣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中).
음모론은 투명하고 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는 그 위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지만 위기 상황,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계급 및 임금 상승 등에 대한 절망적 상황, 그리고 혼란이 가중될 때 더 힘을 얻는다. 이는 벌어지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의 부재에서 오는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 그리고 상황에 대한 주관적 시점의 과도한 개입으로 상황이 더 심화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서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는 원인으로 우선 정치적 양극단을 지목한다. 이는 비단 우리 사회뿐 아니다. 미국 사회 역시 공화, 민주 두 지지세력의 상대방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음모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음모론은 각종 SNS를 통해 무차별적, 실시간으로 살포된다. 여기에 내용이 더 자극적, 더 선정적, 더 잔인할수록 돈이 된다는 ‘상업성’도 개입된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도 우리가 놓치는 것, 바로 ‘대화와 소통’이다. 이런 가장 ‘원시적이지만 확실한 방법’만이 이른바 음모론에 날개를 달아주는 ‘가짜 뉴스’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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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1구역’ 외계인 거주설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인 미국 네바다주 공군기지 ‘AREA 51(51구역)’에 외계인의 존재와 UFO정보들이 숨겨져 있다는 설이다.
3. 엘비스 생존설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가 대중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가장해 사라졌으며, 지금도 어딘가에 은거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4. 아폴로11호 달착륙 연출설 미소 냉전기에 소련 ‘스푸트니크’호가 발사되자 뒤처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세트장에서 아폴로11호 달 착륙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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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수 결혼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으며 그 후손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는 설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를 통해 유포됐다.
7.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우주에서 온 파충류 인간 ‘렙탈리안’이라는 외게인이 비밀리에 세계를 조종한다는 음모론이다. 프리메이슨이 이들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8. 에이즈 개발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특정 지역의 인종을 몰살시키기 위해 에이즈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2007년에는 리비아 정부가 어린이들에게 에이즈 오염 혈액을 고의로 수혈했다는 혐의로 외국인 의료진을 종신형에 처했다가 석방하기도 했다.
9. 케네디 암살 배후설 케네디는 1963년 댈러스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공식조사기구는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 결론지었지만, 오스왈드가 잭 루비에게 살해되면서 CIA, KGB, 마피아가 배후라는 음모론이 이어지고 있다.
10. 다이애나 사망 영국 왕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이미지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5호(24.11.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