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무리한 합의금 요구 확인해도 개입 권한 없어 제재 어려워
↑ 증가하는 무인점포 절도 (CG)/사진=연합뉴스 |
"아이스크림 훔쳐 갈 시 100배 변상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 주변 무인점포에서는 이같이 적혀 있는 경고문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실제 범죄가 일어났을 때 경고문에 적힌 것과 같이 물건값에 비해 과도하게 큰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업주 한 명이 여러 개의 무인점포를 운영하며 고액의 합의금을 상습적으로 챙기는 경우도 있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설명입니다.
경기 남부지역 한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A 경감은 "어린 학생이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 훔치자, 업주가 부모에게 200만∼300만 원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들이 있었다"며 "물론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지나치게 큰 금액을 부르는 일이 계속되니 문제"라고 전했습니다.
일부 업주가 '합의금 장사'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과도한 금액을 부르는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이 꼽힙니다.
통상 소액의 물건을 훔치는 등의 경미한 범죄(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료, 과료에 처하는 사건)를 저질렀다가 경찰에 적발됐을 경우 성인은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촉법소년이 아닌 미성년자는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됩니다.
경찰이 두 위원회에 회부할 대상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하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입니다.
경찰청 훈령이 정하는 경미범죄심사위원회 대상자 선정의 참작 기준을 보면 초범인지, 생계형·우발적 성격의 범죄인지, 신체·신분·연령상 참작 사유가 있는지 등 여러 항목이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또한 명시돼 있습니다.
선도심사위원회에서 훈방 대상자를 정할 때도 합의 등을 토대로 한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업주들은 상대방에게 해당 내용을 언급하며 과도한 액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 무인점포 (CG)/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를 접해도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은 '형사조정위원회'를 열어 양측 간 합의금 책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지만, 경찰에게는 관련 권한이 없다"며 "때문에 수사 대상자에게 '이런 경우엔 합의하는 게 좋다', '요구한 합의금이 과한 것 같다' 등 최소한의 의견만 귀띔한다"고 전했습니다.
무인점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되풀이된다면 소액 절도사건 수사 및 종결에 과도한 경찰력이 투입되는 등의 행정 소모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에 제동을 걸고 각 무인점포의 방범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공신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합의금 조정 기구를 마련해 당사자들이 자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지나친 합의금 요구 등 정황이 파악될 경우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일정 수준 개입
이 교수는 "무인점포 업주들도 입장객 신원 확인 장치 및 자동경비시스템 설치 등 방범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이를 장려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