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구분 없이 이어지는 확성기 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잠을 못 자고 있어요”
↑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앞 시위 |
최근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 자택 앞에서 자극적인 내용의 현수막과 욕설, 상복을 입고 장송곡을 부르는 등 ‘민폐 시위’가 증가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올해 중순, 충남 천안의 일부 조합원들은 서울 삼성동의 한 기업 총수 자택 앞에서 공사비 인상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고,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는 빈 집을 대상으로 한 시위도 있었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택 앞 시위로 인해 피해를 겪은 주민들이 “소음 신고 외에는 소용이 없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거슬린다”, “욕설도 들려서 아이가 들을까 겁난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습니다.
이처럼 주민들은 주거지에서의 시위가 평온한 생활을 방해하고 ‘불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시위자들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 네이버 뉴스 댓글 캡처 |
이에 누리꾼들도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는 “주택가에서의 집회는 원천금지 시켜야 한다”, “자택 앞에서 대체 뭐하는 행동?”, “주거지역은 안되지 공장 앞이라면 모를까”, “집회의 자유와 함께 모든 일반 국민들이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인간답게 살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 “집시법은 민주화운동권의 주권이다”, “본사 앞에서 백날 해봐야 아무도 만나주지도 않다가 회장님 집앞에 가면 바로 비서실에서 전화온다. 기업 문화가 만든 시위문화다”라며 시위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자택 앞까지 찾아가 시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회사에서는 경비가 있고 경계가 심하지만 자택은 그렇지 않아 시위 대상자가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 있다"며 "집은 사적인 공간으로, 상대에게 더 위협적이며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장소"라고 시위 대상이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곽 교수는 특히 "회사 시위는 다수의 책임으로 분산되지만, 집 앞 시위는 온전히 상대방 개인의 몫이 되기 때문에 더 큰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 자택 앞 시위 |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시위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헌법 제37조 제2항은 공공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이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가적 안전이나 공공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우 일부 제한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자택 앞 시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어려우나, 소음 정도나 시간대 등을 제한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지난 8월 개정된 집시법 시행령에서는 주거지역 등에서의 소음 기준치를 한층 강화해, 등가소음 기준 주간 60dB, 야간 50dB, 심야(자정~오전 7시)에는 45dB 이하로, 최고소음 기준으로 주간 80dB, 야간 70dB, 심야 65dB 이하로 낮췄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의 기준에 따르면, 80dB은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음 정도, 65dB는 사람이 많이 모인 카페에서의 대화 소리 정도, 60dB는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소음 수준입니다. 국내 환경부는 65dB 이하를 주거지의 낮 시간대 소음 기준으로 제시하며, 이를 넘어갈 경우 주민들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앞 확성기 시위 / 사진=연합뉴스 |
주민들이 주거지에서의 시위를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법무법인 대륜 최현덕 변호사는 “주거지에서의 시위를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그러면서 "65dB도 지속되면 상당히 불편할 수 있으므로, 향후에는 데시벨 기준을 더욱 낮추거나 주거지역에서는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민아 디지털뉴스 기자 jeong.minah@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