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한글·한국 문학 비중 점차 커져
↑ 영국 런던 대형 서점 포일스 채링크로스점의 한강 특별코너 / 사진=연합뉴스 |
주말인 12일(현지시간) 오후 사람들로 북적이는 영국 런던 도심의 대형 서점 워터스톤스 트래펄가 광장점.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직원은 곧바로 "한강 말이죠? (수상 발표) 첫날에 이미 다 팔렸어요. 지금 센트럴 런던 어디에서도 못 찾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직원은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새로 주문한 책이 들어올 예정"이라며 "앱에서 어느 지점에 재고가 뜨는지 봐서 현장 수령으로 주문해 찾으러 오는 게 가장 빨리 구하는 방법"이라는 '꿀팁'까지 줬습니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다른 대형 서점 포일스(Foyles) 채링크로스점도 마찬가지.
이곳 직원은 "한강 책은 한 권도 안 남았다. 이 일대 다른 서점들도 같은 상황일 것"이라며 "4층 언어(외국어) 섹션에 한국어로 된 책만 서너 권 남아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도심 번화가 소호에 있는 이 서점은 포일스의 7개 매장 중 6층 건물에 20만 권을 보유한 플래그십 스토어(간판 매장)로, 언어 섹션에서 외국어 서적도 다량 판매합니다.
이 서점은 이 섹션에 노벨문학상 수상 다음날인 지난 11일 오후 주영 한국문화원과 손잡고 '한강 특별 코너'를 마련해 한강의 책들을 한글 '원서'로 배치했는데, 만 하루 만에 거의 동이 났다고 합니다.
포일스 언어 부문을 맡고 있는 카멜로 풀리시 부장은 "한글 책은 약 40부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서너 부 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풀리시 부장은 "영문판 '희랍어 시간'(Greek Lessons)은 작년 4월 출간 당시 한강 작가의 런던 방문에 맞춰 포일스에서 책 가장자리에 한글 문장이 쓰인 특별판 2천 부를 주문했는데 그건 모두 팔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15년 출간된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는 "한 달에 20∼50부씩은 늘 팔리는 꾸준한(perennial) 작품"이며 '소년이 온다'(Human Acts)는 "현재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책인데 우리에겐 재고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영국 런던 대형 서점에서 한국어책 서가를 살펴보는 독자들 / 사진=연합뉴스 |
런던에서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부터도 한강을 비롯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런던은 2016년 한강에게 권위있는 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안기며 그를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려놓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한강은 그 해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 맨부커 인터내셔널(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 수상이었습니다. 이어 2018년 소설 '흰'이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포일스의 풀리시 부장은 한강뿐 아니라 정보라, 박상영, 천명관 등의 작품도 독자 반응이 좋다고 전했습니다. 모두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들입니다.
그는 "새로운 목소리는 우리에게 좋은 시장이다. 그리고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늘어 한국어 교재도 많이 팔린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이 서점 한국어 책 코너에서 한글 책을 고르고 있는 현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날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구입한 크리스티나 씨는 영문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먼저 접하고 나서 한창 독학 중인 한글 공부를 위해 원서를 사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티나 씨는 좋아하는 한국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질문에 바로 "한강"이라면서 "'채식주의자'를 좋아하지만, '희랍어 수업'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멋진 일"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 작가 주동근 북토크 / 사진=연합뉴스 |
이날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관심은 이 서점 6층에서 포일스와 주영 한국문화원이 '한국 문화의 달'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한 웹툰 작가 주동근의 북토크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주동근은 학교를 무대로 한 좀비물인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원작 작가입니다.
작가가 "영국에서 '28일 후' 등 제게 영감을 준 작품이 만들어졌기에 런던에 초대받아 기뻤다. 영국 사람들이 좀비물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즐거운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작업하면서 독자 댓글을 작품에 반영하나,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풀어 나가나", "드라마화에 원작자도 배우 캐스팅에 의견을 낼 수 있나", "드라마에 얼마나 만족하나" 등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한 분야나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다른 분야로 관심을 확장하며 한국 문화를 여러 각도로 접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불가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에디 씨는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취미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어 연습을 위해 한글 소설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지내는 사브리나 씨는 이날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 이날 북토크에도 찾아오게 됐다면서 "한국인들이 책이나 드라마에 까다로운 독자 또는 시청자여서 그런지 한국 작품들은 깊이가 있고 한발 앞서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독자나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줄 안다"고 말했습니다.
[김가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gghh7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