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지는 청라 아파트 화재 발생 전기차 (연합뉴스) |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전기차 화재로 몇 달 동안 전국이 떠들썩했습니다. 새까맣게 탄 지하주차장과 자동차를 보며 전기차 화재가 재난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습니다. 전기차 화재는 대비할 수 없는 걸까요?
온라인에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불이 더 자주 난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소방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그렇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 내연기관차 화재 통계 (자료 : 소방청) |
내연기관차는 매년 3,500여 건에서 3,700여 건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1만 933건이 발생해 1년에 평균적으로 3,644건의 불이 났습니다. 하루에 10건 정도 발생한 겁니다.
↑ 전기차 화재 통계 (자료 : 소방청) |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발생 건수가 매우 작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24건이던 화재가 2022년에는 43건, 2023년에는 72건까지 증가했습니다. 보급된 수가 늘었기 때문이겠죠.
절대적인 수치만 보면 전기차 화재 건수가 압도적으로 작지만, 이는 도로에 돌아다니는 전기차 수가 내연기관차 수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그럼 등록 대수 당 화재 발생 건수를 살펴보겠습니다.
2023년 말 가준, 내연기관 차량의 등록 대수는 2,518만 9천 대입니다. 2023년 화재는 3,736건 발생했습니다. 10만 대당 14.8건이 발생하는 수준입니다.
전기차는 54만 4천 대입니다. 2023년 화재가 72건 발생했으니 10만 대당 발생 건수는 13.2건입니다. 내연기관차보다 작은 수치입니다.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아직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평균 연식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 건수가 작은 것일 뿐,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타당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배선이나 배터리에 피로가 쌓이다 손상이 발생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래는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니, 현재로선 전기차가 화재 발생 위험이 더 크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분이 전기차 화재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도 기존에 우리가 쓰던 방식으로는 진화가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전기차에 불이 붙고 배터리에서 열폭주 현상까지 일어나면 불을 끄는 난도는 내연기관보다 훨씬 더 높아집니다.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면 배터리 속 물질이 분해되고 자체적으로 산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기를 차단한다고 해서 곧바로 꺼지지 않습니다.
배터리를 물에 담가서 서서히 식히는 게 그나마 효과적인 소화 방법으로 현재 대부분 소방서에선 수조를 이용해 불을 끄고 있습니다. 전기차 주변에 간이 수조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채워 넣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결국엔 불이 꺼지긴 합니다. 문제는 시간과 자원이 많이 투입된다는 점입니다. 내연기관차 화재는 보통 1시간 이내로 불을 끄고 철수하는 데 반해 전기차 화재는 2~3시간 동안 현장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방대원과 장비가 현장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소방력도 많이 소모됩니다.
사용되는 물의 양도 많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테슬라 모델S에서 불이 났을 때 약 2만 리터의 물을 뿌려서 껐다고 합니다. 소방 펌프차는 보통 3천 리터에서 4천 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으니까 소방차 4대~7대 분량을 다 쓰고 나서야 불이 꺼진 겁니다.
↑ 전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전북자치도소방본부) |
며칠 전 전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 불이 났습니다. 다행히 이 아파트의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때 전기차에 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지만, 그래도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진 물이 불이 번지는 걸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같은 층에 있던 450여 대의 차량은 무사했습니다. 지난 5월 군산에서 일어난 전기차 화재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큰 피해 없이 45분 만에 꺼졌습니다.
↑ 전기차 화재 시 스프링클러 효과 실험 (출처 :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
실험에서도 스프링클러는 효과를 보여줬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진행한 실험에서 두 차량 사이에 전기차를 두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도록 했습니다. 온도를 측정한 결과 23분간 전기차 배터리에서 열폭주 현상이 일어났고 배터리가 완전히 불에 탔습니다.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스프링클러만으로는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을 끄긴 어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스프링클러는 화재 확산을 막는 데는 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자 옆 차량 문의 온도는 219도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자 온도는 40도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고 이후에도 80도 이하로 꾸준히 유지됐습니다. 불이 다 꺼진 뒤 확인해보니 옆 자동차는 문 도장이 벗겨지긴 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전기차가 보급되는 걸 막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미 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외 여러 국가가 전기차 개발에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없어지기는커녕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가 점점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100여 년 전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교통사고’입니다.
신종 재난을 목격한 군중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고 운전자는 사람들에게 맞아서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일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중은 자동차 그 자체에 화를 냈습니다. 자동차를 없애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죠. 새로운 기계가 인류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판단하기 어려웠고, 이 난해함이 공포로 이어졌던 겁니다.
새로운 발명품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 우려하고 걱정하는 건 자연스러
결국 인류는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포를 자양분 삼아 사고를 줄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연구했습니다. 안전벨트, 에어백, ABS 같은 수많은 기술이 그 과실이죠.
전기차를 없앨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