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
가을이 되면서 주말마다 결혼 소식이 많죠
무척 축하할 일이지만 고물가 상황 속에 서울 기준 결혼식장 식대가 7~8만 원인 것으로 알려지며 예비 부부 뿐 아니라, 하객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이 올해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5만 원을 낸다는 사람이 전체의 52.8%로 가장 많았고, 평균은 8만 원이었습니다. 참석할 경우에는 10만 원을 낸다는 의견이 67.4%로 가장 많았으며 평균은 11만 원이었습니다. 결혼식 장소가 호텔일 경우, 평균 축의금은 12만 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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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이제 식비가 올라서 5만 원을 주면 적자일까 봐 더 많이 줘야 할 것 같다”, “10만 원이 많이 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그런 것 같지 않다. 얼마나 내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생각한 금액과 상대방이 기대하는 금액이 다를까 봐 무섭다” 등 축의금 액수를 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결혼식은 평생 한 번이라는 생각 때문에 예식장주 배만 불리는 이런 풍조는 빨리 사라져야 한다”,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은 마치 세금 고지서 같다”, “돈 있는 사람들은 비싼 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없는 사람들은 회관을 빌려서 하면 되지, 축의금으로 결혼식 비용을 메우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축하의 의미를 넘어 부담이 된다는 축의금 문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처럼 현금은 아니지만, 쌀과 같은 현물로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율곡 이이가 쓴 ‘해주향약’에 따르면, 혼례 때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을 주거나, 적게는 무명 한 필과 쌀 세 말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무명과 쌀이 일종의 화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물에서 현금으로 바뀐 건, 조선 말기입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적 변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촉발됐고, 축의금 문화는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1969년에는 당시 정부가 허례허식을 줄이고 국민 생활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을 제정하며 축의금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이런 축의금을 사적 보험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신석하 교수는 “과거 축의금은 한 가정이 결혼식 비용을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우니 지인들이 나눠 분담해주는 의미가 있었다”며 “보험처럼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위험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니 사회적으로 분산해 충격을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보험은 적정한 보험료와 보상금액을 선택할 수 있지만, 축의금은 사회적 관례에 따를 수밖에 없어 액수를 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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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축의금은 우리나라만 있는 문화일까요?
중국과 일본도 한국과 유사하게 결혼식에 금전적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홍바오(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주고, 일본에서는 ‘고슈기’라는 봉투에 돈을 넣어 신랑 신부에게 전달합니다. 일본에서는 하객 수가 평균 65명 정도로 비교적 적지만, 축의금 액수는 상당히 높습니다. 주로 새 지폐로 3만 엔(약 30만 원)을 주며, 이 중 1만 엔은 축하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대부분 현금보다는 신혼부부가 필요한 물품을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혼부부가 원하는 물품을 미리 목록으로 등록해 두면 하객들이 그 물품을 사주는 ‘레지스트리’ 문화가 일반적입니다.
[정민아 디지털뉴스 기자 jeong.minah@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