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에 황강이 있다. 합천 읍내를 가로지르는 강인데, 강을 따라가며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피며 걷다 보면 사는 것이 저 강처럼 다만 흘러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황강마실길의 그림같은 풍경 |
↑ 작약이 가득한 황강변 |
그 시절 나는 강자락을 따라 삐뚤빼뚤 걸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새빨간 노을 속 산그림자를 거느리며 유연하게 내려오던 종소리, 커다랗게 퍼져나가던 종소리의 동심원 속에서 삶의 비애와 그것을 극복하는 시의 아름다운 유용성을 생각하던 그 시절에서 나는 참 멀리도 왔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 삶에서 이룩하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대부분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와 의심으로 가득한 중년이 된 어느 여름날, 나는 다시 황강으로 가고 있다. 마치 거기에 두고 온 뭔가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합천 황강’이라는 이름은 생소한 분들이 많으시리라. 내가 태어나고 생활하던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강이었지만, 이 강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박태일이라는 시인의 시를 읽고 나서부터다(그는 내 시의 스승이기도 하다).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말이 간직한 특유의 소리와 리듬을 잘 살린 시를 썼다. 나는 그의 ‘황강’ 연작시를 읽으며 황강이라는 강의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됐고, 그가 직조한 때로는 맑고 때로는 영롱한 물소리 같은 시어들의 발성에 이끌려 황강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 아직도 옛 풍경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황강 |
그 햇빛을 받으며 합천에 들어섰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들판과 가로수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읍내를 지나 황강 가에 차를 세운 나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 속 깊이 맑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희미하게 오이 향이 나는 듯했다. 아마도 바람에 실려 오는 강의 흔적일 것이다.
↑ 황강마실길은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
주머니에 손수건이 있나 확인하고 손에는 500㎖짜리 생수 하나를 들었다.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한 셈이다. 길을 걷는다. 바람이 등을 지그시 밀어준다. 자전거를 타고 선글라스를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황강 마실길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이십 년 전의 황강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곳곳에 갈대밭이 있었고 새하얀 모래톱이 펼쳐져 있었다. 강물 속에 종아리를 담그고 천렵을 하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걸으며 박태일 시인의 시 ‘황강’을 읽었다. 가끔 멈춰 서서 시와 강의 풍경을 대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를 읽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시에는 황강의 예전 풍경이 화석처럼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구불구불 흐르는 고운 모래밭, 그 모래밭에서 이모와 고모가 어울려 놀며 살며 늙어가는 풍경. 황강은 합천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흐르고 있다. 실제로 황강을 따라가다 보면 합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황강변에는 황강레포츠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제는 캠핑장도 만들어져 있어 드넓게 펼쳐진 모래톱에는 텐트가 쳐져 있다. 아이들은 얕은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논다. 여름은 어른에게는 무덥고 지치는 계절이지만 아이에게는 신나는 물놀이의 계절일 뿐이다.
↑ 황강을 따라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경 |
황강 모래 엄지 검지 발가락 새 물꽃 되어 흐르듯이
간지러운 옛말이 들리는 봄
재첩 볼우물이 고운 옥이 마을
이모와 고모가 한 동기를 이루며 늙어간 버들골로
물안개는 디딜 데 없이 아득하였습니다
호르르르 물잠자리 홀로 물수제비 띄우고…’
(‘황강9’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함벽루다. 합천 8경 중 하나다. 1321년 고려 충숙왕 8년에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들의 글이 누각 현판에 걸려 있는데, 이것만 봐도 이곳에서 마주하는 황강의 풍경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누각에는 할머니 두 분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식 이야기며 시장 물가 이야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일 것이다. 젊은이는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지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각 한 귀퉁이에 걸터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배경 삼아 생수를 마셨다. 강바람은 이런 이야기를 실어서 강에 떠내려 보낸다.
누각 뒤로는 연호사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해인사보다 무려 150년 앞서 창건된 고찰이다. 이곳에 서면 함벽루와 어우러진 황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아침 무렵 은은한 물안개가 필 때도 좋고 저물 무렵의 노을이 산그림자와 함께 슬금슬금 내려올 때도 그때만의 운치가 있다.
↑ 황강을 바라보며 선 함벽루 |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평양도 재현해 놓았다. 2004년 개장한 이후 영화 ‘써니’, ‘암살’, ‘전우치’, ‘모던보이’, 드라마 ‘각시탈’, ‘에덴의 동쪽’ 등 50편이 넘는 영화와 80편 이상의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전주한옥마을이나 서울의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게 유행인데, 이곳에선 교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중년이 많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둘 이상 모이자 그곳이 곧 동네 사랑방이 된다.
↑ 옛 70년대 풍경을 재현한 합천영상테마파크 |
이렇게 정자에 등을 기대고 강바람이나 맞으며 앉아 있다 보면 사는 게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목표나 원대한 꿈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바람에 실어 보내면 그만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어쩌면 그게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 황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
동서울 톨게이트에 들어서자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4시간 전에 보았던 황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클래식 FM을 틀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흘러나온다. 푸른하늘 아래 햇빛을 찬란하게 튕겨내며 천천히 흘러가던 어느 시절의 강이 떠오른다. 모래톱은 눈부시게 빛나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야 했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강, 그 강가에 내 맹렬한 한 시절이 있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강가의 저녁까지 서서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자락을 따라가며 수없는 저녁 속에 섰고, 어지러운 발걸음을 모래톱에 새기며 뭔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찾지는 못했다. 다만 많은 일들과 수없는 인연과 미련을 떠나 보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떤 노력과 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 한국 3대 사찰 중 한 곳인 해인사 |
↑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합천 |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