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빈곤,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기쁨과 슬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들 단어처럼 두바이의 얼굴은 동전 양면처럼 극과 극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두바이는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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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최상류층이 거주하는 주메이라 주택가 전경 |
구도시와 신도시, 데이라 VS 주메이라
숙소 위치를 데이라(Deira)로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데이라는 두바이국제공항에서 불과 5~6km 떨어진 가까운 지역인 데다 지인이 추천해준 이곳 호스텔의 환경이나 시설 또한 제법 괜찮았다. 문제는 두바이 최동단에 자리한 데이라의 지역환경이 아무리 ‘구도심’이라고 불린다고는 하지만 낡아도 너무 낡아 세계적인 호화의 도시, 두바이에 왔음을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는 점.
그렇기에 두바이에 대한 내 첫인상은 사진에서 봐왔던 화려하고 멋들어진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모습이 두바이 여행의 자극제로 활용될 만했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새로운 땅, 새로운 도시에 대한 호기심 또한 커지니까. 그렇게 아랍에미리트를 넘어 중동 최대 관광도시로 일컬어지는 두바이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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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두바이 구도심, 데이라 거리 풍경
(아래)주메이라 해변 주변에 조성된 자전거 길 |
데이라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곳이다. 지역에 따라 빈부격차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도시 두바이에서 데이라는 ‘빈(貧)’을 담당한다. 1800년대 어촌 마을로 건설된 두바이는 20세기 초부터 관광과 사치에 중점을 두고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2024년 스마트시티 지수가 전 세계 142개 도시 중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이룬 도시로 손꼽히는데, 지역별 빈부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고속 성장을 이룬 대다수의 도시가 그러하듯 두바이 또한 호화로운 풍요 이면에 낡아빠진 속을 감출 수 없는 형국이다.
풍요와 빈곤을 가르는 배경에는 두바이 거주자의 비율이 아랍에미리트 국적자에 비해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현격히 높다는 점이 있다. 이 도시의 거주자 중 70%가량이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이민자나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지역이 바로 데이라다. 1970년대 두바이가 개척될 당시 원도심 역할을 했던 데이라의 명성은 이민자의 동네로 전락한 지 오래.
오늘날 이를 대신하는 두바이의 중심지역인 주메이라(Jumeirah)가 ‘신도시’라 불리며 오히려 이 도시의 풍요의 얼굴을 대변한다. 바닷가 지역에 위치한 주메이라는 세계 최고 높이의 최고급 호텔인 부르즈 알-아랍(Burj Al Arab)부터 도시의 최상류층이 거주하는 저층의 고급주택이 해변을 마주한 채 줄지어 들어서 있다. 데이라에서 주메이라까지는 차로 20~30여 분 떨어진 상당히 인접한 거리지만 두 지역의 환경이나 시설, 인프라 등을 비교하면 거리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운하를 따라 역사지구로, 올드타운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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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운하를 가로지르는 수상택시, 수상택시 정거장 |
두바이의 올드타운과 뉴타운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여행의 재미를 한층 높이는 배경이 된다. 먼저 올드타운에서 방문해야 할 곳은 두바이 크리크(Dubai Creek)다. 이 운하는 데이라와 주메이라 지역을 가로지르는 지점에 위치하는데, 역사적으로 중동과 그 일대 주변 무역 및 운송에 사용되어온 자연 항구의 역할을 해온 곳이다. 자연적인 염수가 약 14km로 뻗어 가며 흐르던 이 운하는 1950년대 준설 및 방파제 건설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발이 이뤄져, 1970년대 들어서서는 주메이라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총 24km까지 확장됐다. 이는 두바이 크리크가 최대 500톤의 국내 및 연안 운송을 위한 정박지를 제공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대표적인 상업활동 장소로서 입지를 다진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운하를 따라 제방과 길에 여러 관광 명소와 호텔, 레스토랑, 주거 지역이 들어서며 올드타운 내 부촌이 된 현재에 이른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수상택시를 타고서 올드타운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와 예스러운 멋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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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두바이 벽 주변 주변, 역사지구에 자리한 예술품 상점 |
데이라 맞은편 수상택시 정거장에 내리면 두바이의 역사지구라 불리는 ‘알 파히디(Al Fahidi)’가 있다. 올드타운에서 두 번째로 방문해야 할 장소다. 19세기 중반 두바이의 삶과 풍경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전통 양식 건물이 밀집된 ‘알 파히디 역사적 동네(Al Fahidi Historical Neighbourhood)’. 두바이 운하를 따라 위치한 이 동네는 사암, 티크, 석고, 야자나무, 샌달우드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여기에 좁다랗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문화 활동, 박물관, 미술관, 예술품 상점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이 중 올드 두바이 벽(Wall of Old Dubai)이 대표적이다. 역사적 예술 조각품이라 불리는 이곳은 올드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벽으로 1800년대 석고와 산호석을 사용해 지어졌다. 데이라와 부르 두바이에 각각 하나씩 지어진 두 개의 벽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경계를 정의했으며, 20세기 초 도시의 확장을 이유로 부르 두바이에 위치한 성벽은 철거되어 올드 두바이 벽이 당시의 유일한 증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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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타운에 자리한 나이트마켓, 올드 두바이 벽 주변 건축물 |
부유함과 행복함에 이르는 곳, 뉴타운 랜드마크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도시’, 이 문장은 두바이가 관광도시로서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하나다. 호화와 사치의 도시라는 명성은 ‘행복’을 사고 팔 수 있는 능력으로까지 뻗어있는 모양이다. 두바이 뉴타운에 가면 이 말에 어느 정도 믿음이 가기도 한다. 두바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다. 지상 163층, 지하 2층, 첨탑층까지 포함하면 높이가 총 209층인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두바이 뉴타운 중심에 서 있다. 2004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공사기간만 족히 5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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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 후 인산인해를 이루는 두바이 분수, 최대 500피트 높이로 물을 뿜어내는 두바이 분수 쇼 |
부르즈 할리파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2009년 이후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 초고층 건물을 보기 위해 일부러 두바이를 찾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 부르즈 할리파를 중심으로 이곳 일대에 들어선 두바이몰(Dubai Mall)과 공원, 분수, 오페라 극장,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데만 하루를 꼬박 쏟아 부어도 모자랄 정도다.
특히 일몰 후 밤이 되면 분수 주변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매일 밤 펼쳐지는 분수 쇼가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6,600개의 조명과 25개의 컬러 프로젝터, 아랍 음악에 맞춰 최대 500피트 높이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 쇼는 화려함이 극에 달하며 두바이의 정체성을 오롯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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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요트가 즐비한 두바이 마리나 선착장, 인공운하 지역인 두바이 마리나,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 중 하나인 골드 수크 |
부르즈 할리파가 풍요로운 도시의 얼굴에서 관광을 담당하는 장소라면 두바이 마리나(Dubai Marina)는 두바이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의 부유한 일상이 넘쳐나는 곳이다. 페르시아만 해안선을 따라 약 3km에 걸쳐 건설된 인공운하 지역으로, 두바이에서 최고의 부촌으로 꼽힌다. 일대에는 높다랗게 쭉 뻗은 주거용 빌딩 타워가 즐비하고, 인공 선착장에는 화려한 고급 요트가 정박되어 제트 스키나 낚시, 다이빙투어와 같은 수상스포츠를 즐긴다.
마리나 주변에는 접근 가능한 해안로가 있어 해변까지 이동 가능한데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배경을 뒤로하고 해변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이나 일몰 감상,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현지인들로 분주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일상’과도 같이 느껴지는 부유한 일상이다.
금부터 향신료까지, 전통시장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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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과 백금, 다이아몬드를 주로 취급하는 골드 수크 |
아랍국가에서 시장을 뜻하는 ‘수크(Souk)’. 쇼핑의 도시답게 두바이에는 다양한 수크가 있기로 유명하다. 향수를 파는 수크부터 향신료, 금, 옷감을 파는 수크까지. 일단 두바이 하면 대다수가 가장 먼저 ‘금’을 떠올린다. 두바이를 넘어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독특한 전통시장 중 하나인 골드 수크(Gold Souk)는 그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곳이다.
올드타운인 데이라에 자리잡고 있는 골드 수크는 약 400여 개 이상의 소매상이 시장을 이룬다. 금과 백금, 다이아몬드, 진주를 주로 취급하는 이곳 상점은 40~50년 이상 전통이 있는 가게부터 최근 문을 연 상점까지 다양하다. 이곳에서 금은 그램(g) 단위로 판매하는데, 시장 상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액의 금을 만나볼 수 있다며 흥정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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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신료를 파는 스파이스 수크(Spice Souk) |
화려한 금의 세계를 뒤로하고 약 300m가량 길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코끝이 먼저 반응하는 시장이 등장한다. 향신료를 파는 스파이스 수크(Spice Souk), 중동을 묘사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음식에 쓰이는 다양한 향신료가 아닐까. 최고급 사프란부터 계피, 육두구, 바닐라, 후추 등의 향신료는 물론 허브, 대추야자 등의 말린 과일, 절인 견과류, 아랍 차 등 이국적인 품목이 가득하다.
향수를 파는 퍼품 수크(Perfume Souk)도 빼놓을 수 없다. 시카트 알 카일(Sikkat Al Khail) 거리에 자리한 이곳은 향신료 시장과는 전혀 다른 향과 분위기로 다시금 코끝을 자극한다. 향수에서부터 에센셜 오일, 인센스 스틱 등을 파는 상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곳 상점 곳곳에서 거대한 도매 용기에 담긴 진한 오일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현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전문 조향사의 안내에 따라 나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어보는 기회를 경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최고급 실크가 있는 텍스타일 수크(Textile Souk)에서는 다양한 원단과 이국적인 패턴의 옷감이 즐비하고, 직접 구입한 원단에 맞춰 아랍스타일의 전통의상을 제작하는 맞춤 의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의외의 재미와 장소, 지하철과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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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비아 반도에 설계된 최초의 두바이 지하철 |
두바이 여행에서 의외로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은 바로 지하철 타기다. 여느 중동국가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지하철이 이곳 두바이에 있기 때문에 소소함을 넘어 특별함까지 선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바이 지하철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설계된 최초의 도시 철도 네트워크다. 아랍국가들 가운데 이집트 카이로 지하철 다음으로 두 번째. 2009년 9월부터 첫 운행을 시작했으며 레드와 그린 두 개의 라인, 총 53개 역으로 구성된다. 두바이국제공항을 포함해 인기 관광명소인 올드타운의 크리크와 수크, 뉴타운의 두바이몰이나 마리나 일대 등이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이동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또 하나의 장소, 그린라인 크리크역에서 10여분가량 걸으면 의외의 명소가 황무지를 배경 삼아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올드타운이나 뉴타운의 관광명소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소지만 그 점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분주한 두바이에서 여유를 선사해주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바로 2022년 6월 16일에 대중에 공개된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Mohammed Bin Rashid Library)이다.
전통적인 이슬람 연단 위에 펼쳐진 책 모양으로 설계된 7층짜리 도서관 건물은 디자인을 완성하고 완공하기까지 6년이 소요됐는데, 이는 건설 규모와 기간, 비용 면에서 두바이에서 가장 큰 문화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최신 동향에 발맞춘 450만 권 이상의 인쇄본, 디지털 및 오디오북, 교육자료 등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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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단 위에 펼쳐진 책 모양으로 설계된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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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 7층 전시실 |
악천후가 남기고 간 풍요와 빈곤
두바이에서 ‘안전안내문자’ 알림 소리에 잠에서 깰 줄 누가 알았을까. 깨어보니 시간은 막 동이 튼 이른 아침, 그러나 아직 해가 얼굴을 감췄는지 창문 밖 상황은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안전안내문자에 언급된 대로 악천후가 들이닥친 것.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바깥 상황을 들여다 보니 밤새 내린 비로 거리가 물에 잠긴 모습이었다. 일년에 한두 번 비가 오는 사막도시 두바이에 홍수가 나다니…. 그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다니 참 재미있는 여행이다. ‘두바이 홍수’라는 타이틀로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야기의 맹점은 이 도시에도 기후변화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밤새 내린 비의 양은 몇 년치 비가 하루 만에 내린 것과 맞먹는 수치, 게다가 75년 만에 내린 비 중 역대 최다 강수량이라고 언론은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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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다 강수량으로 물에 잠긴 도로 |
비가 오지 않는 사막도시다 보니 도로 자체에 배수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오히려 피해를 키운 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슬비 정도의 강수량이겠지만 사막도시의 계산법은 소낙비 이상의 사이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계산법은 사막도시에서도 동네에 따라 사이즈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 도시의 빈부격차는 강수량의 많고 적음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로가 물에 잠긴 데이라 지역의 풍경과는 달리 부촌인 주메리
아와 마리나 등지에는 밤새 이슬비가 내렸다는 듯이 잠잠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바이의 빈부격차는 더 극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두 얼굴의 두바이, 풍요와 빈곤의 도시는 극명하게 엇갈린 두 개의 경험을 여행자에게 남겼다.
[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5호(24.9.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