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일럿’이 관객수 433만 명(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8월 29일 기준)을 돌파했다. 잘 나가던 스타 파일럿에서 회식 자리에서의 발언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가 여자로 변신 후 재취업에 성공하는 얘기다. 원작인 스웨덴 영화 ‘콕핏(Cockpit)’(2012)보다 적어도 코미디는 우위에 섰다. 그 팔할은 조정석 때문이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고의 비행 실력을 갖춘 스타 파일럿이자 뜨거운 인기로 유명 TV쇼에도 출연할 만큼 고공행진 하던 한정우는 순간의 잘못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직장에서 잘린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에 대한 관심 없이 일만 하던 그에게 지친 아내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게 된다. 블랙 리스트에 오른 그를 다시 받아줄 항공사는 어느 곳도 없었고 궁지에 몰린 한정우는 유튜버 여동생 ‘정미’(한선화)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신분으로 변신한다. 재취업에 성공한 뒤 친해진 동료 파일럿 ‘윤슬기’(이주명 분)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정우는 그러나 비상 착륙 과정에서 신분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고. 회사는 ‘여성 파일럿’을 마케팅에 이용하려 정우를 내세운다.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장 보통의 연애’(2019) 김한결 감독 작품으로, 플롯은 이혼한 아내의 집에 보모로 재취업하는 내용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와 더욱 비슷하다. 정우는 여장 남자로 바뀐 뒤 일 대신 외모로 평가받고, 끊임없는 성희롱에 노출되면서 객체로서 여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대신 가족을 돌본 아내의 노력, 파일럿 대신 발레리노를 꿈꾸는 아들의 소망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보고, 사내 최고 카사노바인 후배가 여장을 한 넓은 어깨의 조정석에게 반하게 된다는 설정은 얼핏 만화 같다. 성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원작 이야기에 비해 ‘파일럿’은 묵직함에선 부족하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불편한 농담을 참아 넘겨야 하는 직원들, 얼평(얼굴 평가)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젠더 문제에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역차별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러 갈등의 디테일을 조금씩 가미한 것은 돋보인다.
코미디 안에 주제의식을 담으려 여러 부분에서 노력한 영화다. 그 사이 삐걱대는 부분에 각종 코미디와 여장 연기에 익숙한 조정석의 연기력이 윤활유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극중에서 트로트 가수 이찬원을 좋아해 성지 순례를 다니는 정우 엄마 역을 맡은 배우 오민애의 원숙한 연기력 또한 돋보인다. 전 세대 관객층이 함께 보기에 나쁘지 않은 가족용 영화. 유재석, 조세호, 문상훈 등이 특별출연한다. 깜짝 인물이 등장하는 쿠키영상이 있다. 러닝타임 111분.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글 최재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5호(24.9.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