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지하세계-형오살롱'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진행: 김형오 MBN 앵커
출연: 박채서 전 대한민국 공작원 (일명 ‘흑금성’)
[전문]
○ 앵커> 그러니까, 박 선생님이 제출했던 가급의 사업계획서는 사업가로 군에 불만을 품고 전역을 해서 사업가 그리고 이제 광고를 찍는 대행사 대표라고 하는 사업가가 돼서 북측 관계자들을 접촉하고 북한의 명소 뭐 금강산이든 명소에서 남북 합작, 실제로 이제 이효리 씨인가요? 가수 이효리 씨랑 북한의 무용수 조명애 씨가 찍은 광고도 있긴 한데 삼성 광고였죠. 그런 것들이 전부 박 선생님이 사전 계획했던 사업계획서의 내용이었군요? 그러니까.
● 박채서> 이렇게 했어요. 아까 발상전환이라는 얘기했잖아요. 발상전환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얘기거든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거거든. 한 3년 동안 한미합동정보대에서 근무하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아보니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냐면 관심을 가졌을 거 아니에요? 나는 어차피 그 쪽에서 근무할 거니까 더 다른 사람보다 관심 갖고 일을 했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는 북에 직접 못 가니까 간접공작을 한단 말이에요? 재일동포가 제일 많아요. 재일동포, 자유롭게 북한 들락거리니까 재일동포나 그 당시 중국하고는 이게 안 됐으니까 못 가고 아니면, 캐나다 저쪽에 유럽 아니면, 미국 동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북한 정부나 첩보를 수집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 사람들이다.
○ 앵커> 그렇죠. 고위층한테는 전혀 접근이 안 되죠.
● 박채서> 그러니까, 거기서 나오는 첩보나 정보는 그냥 평범한 거에요. 근데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국가사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공작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나중에 이제 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북한에는 광고라는 용어에 없어요. 광고라는 게. 안 하니까.
○ 앵커> 그렇죠.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상업 광고를 할 일은 없으니까요.
● 박채서> 그러니까, 용어 자체가 없어요. 사전에도 광고라는 용어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광고를 만약에 북한에 한다면 이게 자본주의 꽃인데, 이거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김정일 위원장 한 사람밖에 없는 거에요. 최고 지도자 밖에 없는 거예요. 만약에 성공했다 가정했을 경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대한 사람은 로얄패밀리. 최고위급에 근무하는 상대가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야지 우리가 원하는 정보나 첩보가 나온다고. 국가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그런 정보가 나온다. 이렇게 첩보가 나온다. 이렇게 판단했던거에요. 그 계획을 집어넣으니까 전혀 황당한 얘기 아니겠습니까.
○ 앵커> 그렇죠. 김정일 당시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서 정보를 가져오겠다. 라는 사업계획서를 냈으니 그 계획이 위에서 봤을 때는 참으로 허무맹랑한…그래도 어쨌든, 그 계획이 승인을 받아서 이제 실제로 사업 계획에 착수하게 되네요. 그러면 박 선생님이 광고 대행사 대표로 신분을 만들고 그래서 처음 북한에 있는 인사를 접촉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영화에 나오는 그…
● 박채서> 아니에요. 제가 대표로 간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샘물, 그 다음에 뭐 농수산물 수입, 어업물 여러 가지로 손을 많이 댔어요..
○ 앵커> 아, 북한산 농산물 수입 같은 것도? 수입업자?
● 박채서> 북한을 접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라인을 가지고 해봤었는데 제가 강서구로 이제…왜냐하면, 해외 출장을 잘 다니니까 그 당시만 해도 올림픽 대로를 뚫고 나가는 게 엄청 어려웠거든요.
○ 앵커> 공항 근처에 사셨군요? 그래서?
● 박채서> 그래서 거기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한 거에요. 근데 마침 보니까 우리 아파트 바로 앞집에 있는 사람이 롯데 계열 대형 기획사에 있다가 나온 사람이에요.
○ 앵커> 광고 대행사에 있던 분이었군요?
● 박채서> 거기서 이제 또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대북 광고를 하고 싶어가지고 그렇게 미쳐있다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내가 아, 이거구나.
○ 앵커> 사업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오는구나.
● 박채서> 이걸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를 이제 거기 대표로 하고 나는 전무라는 직책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이제 북한하고 접촉이 돼서…과정이 참 복잡한데, 접촉이 돼서 나왔을 때는 내가 대한민국 육군 소령 출신이라는 걸 걔들도 알잖아요? 이제?
○ 앵커> 조사를 하겠죠? 당연히? 신원 파악을 하겠죠.
● 박채서> 그걸 중간에 중개해준 사람이 일본 조총련계 시바다 아리요시(서재호) 이 사람이 이제 연결을 시켜준건데…
○ 앵커> 북한 사람하고 우리 박 선생님을?
● 박채서> 예. 그때 나왔을 때는 내가 소령 출신이니까 걔들도 파트를 중좌, 우리나라로 하면 중령이죠. 현역 중좌를 보낸 거에요.
○ 앵커> 비즈니스하러 갔는데? 광고 대행 비즈니스를 하러 갔는데도?
● 박채서> 중국에서 그 사람하고 이제 우리 사람들 나왔겠죠. 실무 파트너로 나온 사람이 육군 중좌에요. 중령이 나왔는데,
○ 앵커> 아, 현역 군인? 북한도?
● 박채서> 북한 현역 군인이 나온 거야. 내가 이제 군 출신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안 되는 거야. 말이.
○ 앵커> 말이 안 되겠죠. 북한의 중령이라고.
● 박채서> 무슨 얘기하면 그냥 '아, 위대한 수령님' 그러고 TV에 이렇게 나오면 벌떡 일어나서 '아' 막 이러고 그래요. 북한에서 나온 고위층 사람들한테 '저 사람하고 일을 어떻게 하겠냐'고, 일 하려면 나하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이거 비즈니스다.
○ 앵커> 뭔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되니까…
● 박채서> 저런 사고를 가진 사람하고는 나 일 못 한다. 나 돌아가겠다. 그랬더니, 거기서 나왔던 보위부 부부장이 우리나라로 치면 안기부 차장 같은 사람이 보위부장이 주의를 줘요. '동무, 그러지말라' 말해도 이게 습관적으로 이렇게 하는 거에요. 평생을 몸에 배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다음에 바꿔 나온 사람이 그 영화에 나왔던 '리철'이라는 사람이에요.
○ 앵커> 영화 공작에서 '리철' 역을 했던 이성민 씨 역할을 한 사람이 이제 나온 거군요?
● 박채서> 첫 인상이 깔끔해. 스마트하고 아주.
○ 앵커> 근데 그 '리철'. 이성민 씨가 연기했던 그 '리철'이라고 하는 사람도 본명은 아니죠?
● 박채서> '리철'이 본명이에요. 근데 98년도 사건터지고 나서 이름을 바꾼거죠.
○ 앵커> 그러면 '리철'이라고 하는 북한의 카운터 파트가 리철이면 우리 박 선생님도 박채서라는 이름으로 리철을 만난 거에요? 둘은 서로 본명으로 만난 거네요?
● 박채서> 네. 본명으로 만났어요. 이 친구가 이제 왜 그랬냐면 대외경제위원회 심의처장 직책을 가지고 이 업무를 보고 있더라고요.
○ 앵커>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 박채서> 예. 아마도 북한의 관례 중에서 해외 업무를 가장 현장에서 했던…
○ 앵커> 외화벌이 같은 업무를 하나요?
● 박채서> 예. 거기를 담당했던 직원이고 또 한 가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을 걔가 논문을 썼더라고요. 박사 논문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북한의 몇 안 되는 엘리트에요. 그 친구를 이제 제 파트너로 붙여줬던 것 같아요.
○ 앵커> 나이는 어떻게 돼요?
● 박채서> 똑같아요. 동갑이에요. 더 편하게 이제 친구처럼 지냈죠. 이 상, 박 상 그러고. 걔가 일본 쪽을 많이 상대했기 때문에 이 상… 이 씨, 박 씨를 갖다가 이렇게 하고, 거기 아들만 둘이에요. 우리는 딸만 둘이고. 그래서 이제 오면 농담 삼아서 '사위야, 선물 좀 안 준비했어?' 그러면 '뭐 필요한데?' 그러면 사전이라던가 예를 들어 어학 테이프라던가 이런 것까지도 내가 선물 사주고 친해졌죠. 상당히 친해졌어요. 내가 상대했던 그 북한의 어느 직원들보다도 아주 유연성있고 합리적이었던 친구에요.
○ 앵커> 리철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고 굉장히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지만 우리 박 선생님에게는 리철한테도 말할 수 없는 나름의 임무가 있었잖아요? 사업이 있었잖아요? 그거는 감추면서도 그건 그거대로 감추면서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으로는 리철이라고 하는 북한의 그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리철과 굉장히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그런 관계가 됐다?
● 박채서> 가까워지는데 특히, 2010년도에 긴급 체포해가지고 저를 간첩으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한테는 그 사람이 공작원이 되야지 내가 보안법에 접촉되는 거거든요. 그 사람이 일반인이면 접촉 안 돼요.
○ 앵커>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람이 북한 공작원이고 박 선생님을 포섭했다. 그래서 박 선생님이 간첩이 됐다. 스파이가 됐다' 이렇게 이제 구도가 만들어져야 되죠.
● 박채서> 그게 안 되는 것이 그 친구는 이미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18살, 20살 되면 선발해서 키워요. 작전부나 어떻게 키운다고요. 그러면 김일성 혁명 군사학교에 집어넣어서 연락요원으로 키울 것이냐, 대남 공작원으로 키울 것이냐. 이렇게 분류해서 키우거든요? 그러면 보통 연락 이런 그 간단한 업무는 3~4년 정도 걸리고 전문 공작요원으로 이렇게 하면 보통 같은 경우에는 7년, 8년 정도 전문 교육을 시켜서 남파를 하는 거거든요. 근데 그 친구는 이미 벌써 김일성 종합 대학을 나온 게 공백히 나왔고, 박사까지 하고 김일성 대학에서 교수까지 하고 그 이제 그 걔들이 개방을 하면서 대외경제위원회를 만들었잖아요? 거기에 심의처장 나와서 협력 업무를 했던 사람과…
○ 앵커> 그러니까, 공작원으로 길러진 인물은 아니었다. 이런 뜻이군요?
● 박채서> 그리고 그 다음에 나하고는 대화 창구였지, 실질적인 공작 논의를 할 때는 걔는 배제했어요. 못 들어왔어요. 보위부에 김 과장이라고. 북한 보위부 내에 베테랑 과장이거든요. 그 사람하고 필요에 따라서 부부장 급들이 들어와서 이제 같이 얘기를 하고 그러지, 그때 그게 당연한 거에요.
○ 앵커> 그럼 리철은 박 선생님을 포섭하려고 했던 북한의 공작원 이렇게 보는 건 절대 아니군요?
● 박채서> 파트너였지, 연락책. 대화가 되는 연락책이었어요.
○ 앵커>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박 선생님이 추진하는 북한 내 상업광고 촬영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파트너 정도였다?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였다?
● 박채서> 광고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이제 업무가 퍼져나갔었는데 전부 북한 최고위층만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갔어요.
○ 앵커> 그래서 이제 리철하고 가까워졌고 리철을 통해서 북한의 이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게 되고 또 박 선생님은 사업계획서 나와있는 대로 북한에서 광고 촬영이라던가 이런 사업을 했는데 그러면 실제로 광고 사업 말고도 이제 다른 사업도 하셨다고 했는데,
● 박채서> 예. 부가적으로 이제 많이 했죠.
○ 앵커> 리철을 통해 가지고 처음 진행한 게 이제 광고사업.
● 박채서> 아니에요. 그 광고사업 전에 먼저 골동품이라던지 이런 걸 많이 했죠.
○ 앵커> 김정은 위원장이 보유하고 있는 골동품을 팔아주는 거요?
● 박채서> 그건 나중 일이고,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제 그 당시 북한이 워낙 어려울 때니까, 골동품 같은 걸 팔아서 경비로 쓰는 경우가 많이 있었거든요? 이제 그 일환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이제 우리 내부에서 여러 가지 판단을 해보니까 '아, 이게 그게 아니고, 뭔가 있다.' 그건 전문가들 판단이에요. 저도 이제 그러다 보니까, 골동품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했는데, 인사동에서 전문가들하고 얘기도 해보고. 그 세계에서는 얘기들어보면 공급책이 있지 않습니까. A급(공급책)은 A급만 들어온 대요. C급은 맨날 C급만 갖고 온다는 거에요. 특급은 특급만 갖고 오고. 근데 지금까지 부에서 팔아달라고 온 이 골동품은 특A급이라는 거야.
○ 앵커> 특A급. 북한 내에서 발굴 됐어도 아무나 소유할 수 없었던 것들?
● 박채서> 그러니까 이거 이상하다. 그래서 이거를 다시 한 번 어떻게 해보자. 그래가지고 나보고 그러더라고요. 한번 돌려보내래요. '이거 가짜다' 일부러 쇼를 한 거에요. 그런 다음에 어떤 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답이 나온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걸 나한테 주고 팔아. 창피 당했단 말이야. 한국 시장에 가서 이런 걸 갖고 왔다고 혼났다'고 그랬더니 사람들한테 그러고서 일부러. 진짠데 돌려 보낸 거에요. 그랬더니 그 다음에 더 좋은 게 나온 거에요. 쟁반같이 생긴 게 있어요. 두께가 한 4~5 센티미터 되는 그리고 직경이 한 2~30센티 이상 되는 이런 청자 쟁반이 나오는데 이게 없는 거에요.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큰 게. 근데 색깔이 뭐고 최고급이야. 그래서 그때 우리 내부적으로 판단할 때 아, 이게 뭔가 단순한 외화벌이가 아니라,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거 아니냐. 근데 그게 정확하게 맞은 거죠. 그게 이제 그 김정일 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골동품을 전부 일괄 처리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던 거라고 판단했던 거죠. 왜 그랬냐면 그쪽에서 신뢰를 쌓던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를 팔 때 그랬어요. 내가. 통상 보면 저거 1억에 팔면 한 2~3천만 원 땡겨 먹고 5천만 원에 팔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약속을 했어요. 경비가 들어간다. 판매액의 10%를 떼겠다. 나머지는 그대로 돌려준다. 근데 그거를 그대로 했어요. 한번도 어긴 적 없이. 근데 나중에 보니까 여기서 얼마에 팔았는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시험을 한 거예요. 나한테. 시험을 한 거더라고요.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마 이제 그게 다 보고 됐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 저 친구는 군에서 밀 수 있겠구나.' 금강산 개발할 때 프로젝트 마찬가지고, 이런 과정에서 아마도 김정일 위원장이 저 정도 남자면 내가 밀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단 한 차례도 예를 들어서, 골동품을 팔면 약속대로 10%만 떼고 나머지는 다 갖다줬거든요. 그게 아마 김정일 위원장이나 장성택이나 김경희 그 사람들한테 신뢰를 받는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앵커> 그러면 박 선생님은 그 리철을 넘어서서 누구까지 만나봤습니까?
● 박채서> 거의 만났죠.
○ 앵커> 김정일 위원장까지도?
● 박채서> 내가 오면 보고가 계속 되니까요. 브리핑 하지 않습니까? 내부에서 이제 판단을 한 다고요. 계속.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나와 전혀 얼굴색도 모르는 사람들이 차단돼 있는 심사 소속관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내 보고서를 읽고 나와 똑같이 생각해 볼 보고서를 써야 되는 거에요. 그렇게 세밀하게 써요. 하루 종일 400회, 500회 A4용지에 쓸 정도로 그러면 그 내 보고서를 가지고. 나와 다르면 안 되니까. 내가 우리 앵커님하고 이렇게 만나서 저 사람 성향 어떻고, 저 사람 왜 이런 거 썼고 알면 안 되거든요. 순수하게 이 내용만 가지고 판단해야 되는 거에요. 그 사람들이 거기서 판단을 내려요. '아, 이거는 이런 의도다. 저런 의도다' 거기서 이제 다시 또 대책을 강구해서 임무가 떨어지고 그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그 사람들 판단에는 아까 얘기한대로 '아, 여기는 단순한 외화벌이가 아니고 뭐가 있겠다.' 이것은 내가 판단한 게 아니라 이것은 온전히 우리 내부에서 판단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공작 방향이 재수정 하거든요. 한번 세운 그대로 가는 게 아니라 내부에도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심사 분석을 다시 계속해요. 그래서 공작 방향이라던가 보안 체크 해가면서 방향이 계속 수정돼 나가는 거거든요. 그런 방향에서 지시가 떨어지죠. 이건 이런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97년도 선거까지. 북한이 믿으니까. 아무리 자기들이 여기서 고급 첩보들이 올라온다 하더라도 의심 많잖아요. 나를 믿으니까 대남 선거 전략에 내 동의를 받은 거에요. 저한테 얘기를 하고. 북한으로서도 그 당시 남쪽의 선거 대통령이 누가 되냐에 따라서 저희들 자금 정책에 10년 영향 미치니까 그 당시 97년, 96년 말부터 바짝 긴장을 하더라고요. 한국의 동향에 대해서. 그래서 그때 나는 다 보고 하고 그 다음에 그 당시 모 언론사에 김 기자 같은 이런 사람들 봐서 실제 남쪽의 사정을 그대로 설명해주고 그 다음에 전문 사료 같은 것들 주고 그래서 남쪽의 실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계속 주입을 시켜준 거에요. 심지어는 어떻게 김정일 위원장이 보고를 잘못 받았는지 모르겠는데, 김대중 후보가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이회창이 된다. 이렇게 판단하고 했는데 얘들은 둘 다 싫다. 이거죠. 이인제 후보를 얘들은 선택을 했어요. 뭐 여러 가지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 내가 젊은 엘리트 그룹 중심으로 해서 권민이라던가 이 참사, 강 참사라던가 우리또래 젊은 사람들한테 '나중에 당신들의 오판에 의해서 최고 지도자가 잘못 선택 했다면 그 결과에 반드시 책임을 물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정책이나 이런 행동은 A와 B가 있어야 된다. 이럴 경우는 있지만, 이럴 경우 있다. 이거를 계속 보고를 해라. 그쪽으로 계속 김대중 후보 된다, 왜 되느냐는 얘기를 자료를 다 밀어준 거에요. 나중에 결론적으로 안병수라던가 북의 베테랑 대남 전문가들 아니에요. 다 작살났어요.
○ 앵커> 잘못 짚은거니까.
● 박채서> 다 숙청, 걔들 때문에 그렇게 된 거거든. 다 숙청당하고 권민, 강 참사 이 참사 사람들이 다 훈장 받은거야. 권민은 그 후에는 대남, 남북관계에서 장관급 회담에 북한 대표 단장으로 항상 나올 정도로 그렇게 했잖아요. 그 공을 인정받아서 그렇게 된 거에요.
○ 앵커> 그렇게 북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본인 신분을 속이고 사업 계획을 속이고 북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그럴 때 소위말해서 블랙요원으로서 내가 왜 이 일을 왜 하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신변에 위협까지 느끼면서 이 일을 꼭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은 좀 안 드셨나요?
● 박채서> 개인적인 성향인데 글쎄 모르겠어요. 어려서부터 뭘 하고 싶으면 했어요. 그냥. 일 관계를 안 따지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누가 나한테 부탁을 하면 내가 저걸 부탁을 들어주면 내게 어떤 이익이 있나. 이런 생각을 안 했어요. 그 사람이 좋으면 했어요. 나한테 이런 일이 주어졌을 때 이것은 '내가 해야 될 운명이구나' 나는 이런 제안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 안기부 내사관들이 한 얘기가 내가 처음에는 안 간다고 어쨌든간에 내 속 마음을 떠나서 이렇게 얘기를 했을 거 아니겠습니까? 처음부터 아이고 이렇게 안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총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도 국가에 충성이지만, 박 선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국가이익에 부합되게 일하는 것도 충성이다. 박 선생은 여기 일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기회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충성하면 충성 아니겠느냐. 그 말이 저한테는 와닿더라고요.
○ 앵커> 정말 좌우 가리지 않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그냥 일에 빠져서 또는 이제 그런 것들이 또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하시지만, 결국은 이제 북풍 문제 때문에 또 북한에 포섭된 남한의 스파이로 또 몰리셔가지고 곤욕을 또 치르셨잖아요?
● 박채서> 98년도에는 그렇게 안 했고요. 그때는 있는 대로 빠져서 그렇게 했는데 몰린 거는 2010년도죠. 아까도 말씀을 해주셨지만, 왜 저도 인간인데 그런 걸 생각을 안 하겠어요.
○ 앵커> 회의감이 들죠. 이거 뭔가 내가 국가를 위해서 일했는데 왜 내가 국가로부터 억울한 이런…
● 박채서> 그 당시는 제가 도곡동에 살고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잖아요. 내가 이제 군대생활에 불만이 있으니까 나와서 뭔가 돈 벌겠다고 중국으로 왔다, 갔다 한 사람은 우리 가족들이나 집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 근데 그때 애들 하나가 이제 초등학교 다니고 하나가 이제 일곱 살 차이니까 유치원도 아직 안 다니고 어릴 때에요. 그러면 중국가는 비행기가 꼭 9시 반인가 대한항공이 있어요. 천진으로 가서 북경으로 들어가는 노선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면 집에서 최소한 내가 7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돼요. 그럼 집에서 5시 정도에 나오니까 깜깜한 새벽에 나오잖아요? 일어나가지고 자고 있는 그 어린 딸들 보면서 속으로 나도 인간이고 아버지니까 내가 와서 쟤들을 또 볼 수 있을까? 항상 그런 생각을. 왜? 적진에 가서 내 신분이 탄로나면 그냥 끝나는 거거든요. 그때 가서 뭐 국가나 국정원이 안기부가 구해주는 것도 아니고, 모르쇠 이렇게 되니까. 숙명이거든요. 부인은 내가 이제 중국에 나가니까 반찬 같은 게 이렇게 안 좋으니까 고추장도 볶아주고 김도 싸가지고 이렇게 주고 해서…
○ 앵커> 사업하시러 가시는 줄 알고?
● 박채서> 예. 사업하러 가는 줄 알고.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고 택시타고 이제 그 당시 택시타고 공항에 내리니까 그럼 뒤에서 손 흔들면서 여보, 잘 다녀오라고 하는데 그걸 돌아보면서 저도 이제 가슴이 뭉클해지죠. 저 여자 나를 믿고 저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인간적이었을 때가 많이 있었어요. 근데 그거를 극복하고 넘어서야 되는 것이 비밀요원들의 운명이고 숙명이에요. 거기에 감상에 빠지면 못 하는 거죠. 2010년도에 내가 국방부에 체포 됐을 때 묻더라고요. 판사가. 재판 중에 당신은 국가에 배신감을 느끼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 능력이 맞았기 때문에 한 것인데 이 3박자가 맞아야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국가는 강제로 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대우해준다는, 특별히 뽑아준다. 이런 것도 아니란 말이야. 오직 국가를 위한다는 신념 하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거기 때문에 그 선택한 일에 대해 내가 잘못선택하면 내 책임이지, 국가 책임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숙명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에서 그런 공작원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물으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배신을 당했다는 등, 서운하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내가 답을 했는데, 그렇게 저 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과 자신의 아내를 도외시하고 해외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 하나 밖에 없었어요. 그 실제 뭐 아시다시피 정치적인 문제지만, 그 당시 해외파트보다 국내파트가 더 좋았잖아요. 안기부에서도.
○ 앵커> 그럼요. 국내 정책 개입하고.
● 박채서> 어떤 면에서 해외 파트에 근무한 사람들은 공작으로 비밀리에 근무한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힘들게. 진급도 늦고 오히려. 차라리 화이트 요원들.
○ 앵커> 대놓고?
● 박채서> 대사관 이런데 근무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떵떵거리면서 살았어요. 안기부 라인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어요. 근데 그 사람들(블랙요원) 그렇게 말도 못한단 말이에요. 숨어서. 어디 근처도 못 가고 혼자 적진에 가서 일해야 되고 꼭 적진이라 해서 꼭 뭐 북한만 갑니까? 해외에 우리는 우방국의 미국이나 이런 데도 다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아무리 우방국이어도 그런 행위가 미국에서 발견되면 체포 당하잖아요. 로버트 김 사건 은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 앵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파공작원 그러니까, 블랙요원들이 그러니까.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가족도 버리고 또 동료들에 비해서 처우라던지 모든 것들이
● 박채서> 감수하는 거에요.
[제작]
PD : 김경중, 김수영, 백빈, 김은, 정윤조, 김윤찬
작가 : 신검지
그래픽 : 양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