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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Trip 안나푸르나 ‘마르디 히말’을 오르다

기사입력 2024-08-02 13:08

히말라야의 땅, 네팔 여행②
트레킹은 거창하지 않을수록 좋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라는 말이 나오면 반감이 들 때가 더러 있는데, 네팔 트레킹이 그랬다. 네팔에 가면 반드시 트레킹을 해야 한다는 강요와 같은 울림이 부담스럽게 작용한 까닭이다. 단순하게 그저 산에 오르고 싶었고, 산속 생활을 직접 보고 싶었다. 안나푸르나에서 최고의 단기간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높은 ‘마르디 히말(Mardi Himal)’에 올랐다.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안나푸르나 신규 트레킹, 마르디 히말
아무리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고급 정보를 손에 넣는다 한들, 눈 앞에서 경험자들의 실제 후기를 귀로 듣는 것에 대적할 수 있을까? 지난밤 마르디 히말(Mardi Himal)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여행자 무리를 만나고 난 뒤 최고급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너 명의 무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트레킹이 너무나 쉬웠고, 다른 이는 그렇지 않다며 의견이 갈렸다.
현지인들이 극찬해마지 않은 산의 경치 또한 훌륭하다, 기대에 못 미친다 등 트레킹에 대한 후기도 엇갈렸다.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또다시 업데이트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실제 경험하며 직접 두 발 찍어본 뒤 깨닫는 수밖에. 엇갈리는 후기 속에서도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한 건 ‘아주, 대단히,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 그 말의 객관적 확실성을 기대하며 나의 길을 걷는다.
트레킹의 시작점, 카데 마을 풍경
↑ 트레킹의 시작점, 카데 마을 풍경
마르디 히말은 안나푸르나에 있는 5,587m 봉우리로, 이곳은 2012년에 개장한 신규 트레킹 코스다. 포카라에서 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카데(Kade)’ 마을 초입에서부터 코스가 시작된다.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참나무, 진달래, 대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이 자리하며, 작은 산속 마을을 통과하는 경로를 따른다.
최근 들어 안나푸르나에 형성된 여느 코스와 더불어 마르디 히말 트레킹이 여행자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것은 비교적 접근이 쉽다는 이유가 크다. 보통 평균적으로 해발 4,500m의 베이스 캠프까지 5일의 일정이 소요되며, 고도가 높은 반면 코스를 통과하는 대부분의 길이 정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는 데다 멋진 전망까지 자랑한다.
카데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  카데 마을에 조성된 돌계단
↑ 카데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 카데 마을에 조성된 돌계단
또한 마르디 히말은 가이드 없이 독립적인 트레킹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찾는 인기 코스 중 하나기도 하다. 네팔 정부는 2023년 3월부터 국립공원 트레킹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현지 가이드 동행 필수’라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상은 여전히 독립적인 트레킹이 활개를 친다. 안나푸르나 보호 구역 내에서 ‘나홀로’ 혹은 ‘동행자들 여럿이서 함께’ 가이드 없이 하는 트레킹은 여전히 흔한 일이며,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마르디 히말 트랙은 그래서 더 인기를 끈다.
혼자 혹은 함께, 첫날의 마술 같은 트레킹
포카라 도심에서 출발한 택시가 1시간가량 구불구불한 도로를 통과한 뒤 카데 마을 초입에 도달했다. 안전한 여행길을 빌어주며 택시기사까지 떠나고 ‘나홀로’ 독립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의 시간을 깨는 동행자가 불쑥 나타났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였지만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아주 일찍, 빠르게 동행자들을 만난 것.
산속에 자리한 포타나 마을 풍경
↑ 산속에 자리한 포타나 마을 풍경
사실 가이드 없이 마르디 히말을 정복하겠다고 결심한 건 ‘오롯한 자유’를 경험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5일간의 트레킹 일정 내내 고독에 허우적대며 오직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겠다는 생각까진 아니었다. 대다수의 독립적인 트레킹을 택한 여행자들이 산행 가운데 동행자를 만나 팀을 이룬다. 나 역시 동행자의 등장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트레킹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은 예상 밖의 전개였다.
가이드, 포터(짐꾼)를 앞세워 트레킹을 시작한 두 명의 말레이시아 여행자 티코(Tco)와 파우지(Fauzie)가 그 주인공. 첫 번째 목적지인 오스트레일리안 캠프(Australian Camp)로 향하는 길을 이들과 발걸음을 맞춰 함께 걸었다. 그러나 머리로 측정하고 지도에서 확인한 거리상의 계산은 실제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 도착했을 때도, 이후 두 번째 목적지인 포타나(Pothana)에 닿고 난 뒤에도 나와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벌써 도착했다고?”라며 연신 놀라움을 내뱉었다.
(위)해발 2,130m 산 위에 세워진 숙박시설 (아래)피탐 데우랄리에서 바라다본 산의 경치
↑ (위)해발 2,130m 산 위에 세워진 숙박시설 (아래)피탐 데우랄리에서 바라다본 산의 경치
카데 마을 초입에서 포타나까지 약 4km 거리, 고도 300m를 오르는 동안 수치상의 계산보다 두 발은 훨씬 더 빨랐고, 더 안정적이었으며, 눈깜짝할 사이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마술 같은 트레킹의 경험이 첫날의 오전을 장식했다. 산행의 묘미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경험으로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포타나에서 점심을 해치운 뒤 첫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피탐 데우랄리(Pittam Deurali)까지 약 2km를 더 걸어 도착했다. 도시에서나 볼 법한 호텔 건물이 해발 2,130m 산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 산장이나 오두막과 같은 숙소를 기대했건만 각 방마다 온수가 나오는 전용욕실은 물론 초고속 와이파이까지 갖춰져 있다는 사실은 실제 맞닥뜨린 또 하나의 놀라운 장면이었다.
오후 3시 무렵 숙소에 도착한 뒤 휴식과 저녁식사를 마치고도 기나긴 하루는 계속 이어졌고, 잠을 청하기 무섭게 자정부터 내린 세찬 비는 밤새 소란스럽게도 땅을 적셨다.
(좌)3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포터 하리(Hari)의 모습 (우)산길 곳곳에 표시된 친절한 이정표
↑ (좌)3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포터 하리(Hari)의 모습 (우)산길 곳곳에 표시된 친절한 이정표
이정표를 따라서 그렇게 한 걸음 더
두 명의 말레이시아 여행자와 더불어 현지 가이드 사로지(Saroj)와 그의 조력자 부띠(Buddhi), 포터 하리(Hari)까지 총 다섯 명과 본격적으로 팀을 이뤘다. 첫날 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은 앞으로의 전 일정을 함께하며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30kg짜리 배낭을 앞 이마에 매단 채 앞장서 걸음을 내딛는 하리를 시작으로 둘째 날의 행군이 시작됐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축축한 땅의 기운이 발걸음을 촉촉히 적신다. 울창한 나무 숲을 통과하는 산행은 비가 내린 뒤의 축축함을 배가 시켰고, 계속해서 오르막을 통과하는 사이 물기를 머금은 나무 숲은 청명한 초록빛을 강하게 내뿜어 다리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산길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를 볼 때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대감과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때론 인생이 참 쉽게 흘러가기도 한다.
(위)산에서 만난 다섯 명의 동행자들 (아래)구름에 가려진 설산 풍경
↑ (위)산에서 만난 다섯 명의 동행자들 (아래)구름에 가려진 설산 풍경
안나푸르나 보호 구역 내에서 독립적인 트레킹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데에는 여행자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조성된 구체적인 이정표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안내된 이정표를 따라가는 길, 살아가는 행위에도 이러한 이정표가 존재한다면 가파른 오르막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해발 5,000m가 두렵지 않다고 느낄 만큼. 하나 반대로 이정표를 따라 인생이 계속해서 쉽게 흘러간다면 이정표의 역할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 확실하다.
해발 2,500m를 넘긴 지점에서 간이상점 앞에 멈춰 섰다. 나무로 대충 지은 건물과 천막 아래 진열된 물과 음료수, 과자 등은 꽤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듯 두툼한 먼지로 뒤덮인 모습이다. 이곳에 닿기까지 한 시간가량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는데, 그 끝에 이르러 간이상점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깊고 깊은 산속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은 천막이 여느 화려한 건물보다 더 위대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료수 한 병을 골라 일상의 먼지를 털어낸 뒤 한 모금 쭉 들이키자 탄산의 톡 쏘는 맛이 반갑기 그지 없다. 그 힘을 빌어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끝이 없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
가이드 사로지의 말마따나 둘째 날 트레킹의 거리와 강도에 비하면 첫날은 애피타이저(Appetizer)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둘째 날 트레킹이 메인디시(Main dish)는 아니었다. 사로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피타이저와 메인디시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답을 했다. 메인디시가 아니라면 굳이 알 필요 없는 불필요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 상황이었다. 오전부터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연이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한 코스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반가울 리 있겠는가.
이럴 땐 모르는 게 약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수치상으로 보면 첫날의 총 이동거리가 약 5.6km, 둘째 날은 두 배에 가까운 10km에 달한다. 해발고도 또한 2,100m에서 출발해 2,600m까지 이동한다. 그중 가파른 오르막이 절반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체감상 두 배를 넘어선 몇 배의 강도가 온몸을 때리는 기분이다.
해발 2,500m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 정글 숲을 통과하는 트레킹
↑ 해발 2,500m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 정글 숲을 통과하는 트레킹
체력적 한계가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 중 최고는 음식을 통해 보상받는 일. 포레스트 캠프(Forest Camp)에 도착해 우린 고민할 것도 없이 라면을 점심 메뉴로 골랐다. 첫날부터 지나쳤던 모든 식당과 상점에 한국 브랜드의 라면이 가장 중심에 주인공마냥 진열되어 있었는데, 사로지의 설명에 따르면 해발 4,200m 마르디 히말 전망대에서도 라면을 판매한다고 했다.
신라면과 밀크티로 에너지 충전하기. 산속 모든 식당과 상점에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 신라면과 밀크티로 에너지 충전하기. 산속 모든 식당과 상점에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맛볼 계획이었지만 이를 조금 앞당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안나푸르나에서 라면만한 체력 보충 음식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인 네팔 사람이 끓여준 라면에서 고향의 맛과 향이 제대로 진동했다. 한두 번 끓여본 솜씨가 아니었다. 국물까지 모조리 해치운 뒤 라면에 경의를 표하며 서둘러 둘째 날의 막바지 산행을 이어갔다.
끝도 없이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길 ,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 끝도 없이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길 , 해발 2,500m에 자리한 간이상점
구름에 가려진 설산을 볼 수 있을까
일득일실(一得一失),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고, 산길이 주는 지혜도 이와 마찬가지다. 비가 내린 이후의 날씨는 짙은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경치를 선사해주었고, 마치 산신령이 금방이라도 얼굴을 빼꼼히 내밀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는 정글 숲과 혼연일체를 이뤘다. 더욱이 태양을 가린 구름 덕에 선선한 바람결 뒤로 땀이 찰 새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점.
여기까지가 ‘득(得)’이라면 ‘실(失)’은 설산의 경치가 구름에 온통 가려져 이곳이 안나푸르나인지, 동네 뒷산인지 모를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면 저 멀리 설산을 벗삼아 오르막을 올랐을 테지만 이제 막 우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쾌청한 날씨는 둘째치고 큰 비를 맞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어쨌든 실보다 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맨위)포레스트 캠프 (중간)포레스트 캠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긴급 재난 대피 시설, (가장 하단)레스트 캠프로 향하는 길, 날씨가 급변했다.
↑ (맨위)포레스트 캠프 (중간)포레스트 캠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긴급 재난 대피 시설, (가장 하단)레스트 캠프로 향하는 길, 날씨가 급변했다.
둘째 날의 최종목적지, 레스트 캠프(Rest Camp)로 가는 막바지 산행에서 우려했던 먹구름이 빠르게 하늘을 뒤덮었다. 금방이라도 굵은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 아래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발걸음의 속도를 최대로 높이는 것뿐. 그 노력이 통했는지 산장에 거의 다다를 무렵 하늘이 갈라질 듯 천둥번개가 내리치기를 수 차례, 그리곤 곧장 커다란 빗줄기가 땅에 꽂히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또 하나를 얻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해발 2,600m에 닿았다. 첫날 밤 숙소와 비교하면 방에는 전용욕실은 물론 전기 콘센트도 없다. 가스로 물을 데우는 방식의 온수샤워는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만 이용 가능하고, 공용공간에 마련된 전기 콘센트 또한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와이파이 사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날에는 날씨로 인해 통신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었다. 휴대폰이 기능을 잃자 산속 기나긴 밤을 채운 건 카드게임, 산장에서 즐기는 최고의 밤 문화에 피로가 절로 달아났다.
(위로부터 순서대로)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설산, 카드게임은 산장에서 즐기는 최고의 밤 문화다. 셋째 날 아침, 일출 풍경 사진
↑ (위로부터 순서대로)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설산, 카드게임은 산장에서 즐기는 최고의 밤 문화다. 셋째 날 아침, 일출 풍경 사진
다음날 새벽녘, 화장실이 급해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풍경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구름이 걷히고 설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순간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잠이 달아났고, 설산에 넋을 잃은 채 일출을 맞이했다. 평생토록 간직하고 싶

은 특별한 순간, 트레킹 여정의 셋째 날이 밝았다.
*히말라야의 땅, 네팔 여행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1호(24.08.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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