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첫 올림픽 메달
↑ 우크라이나 선수 올하 하를란/사진=연합뉴스 |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검객 올하 하를란이 30일(한국시간)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접전 끝에 우리나라의 최세빈(전남도청)을 15-14로 제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하를란의 동메달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를란의 동메달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영토를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치른 첫 번째 올림픽에서 거둔 첫 번째 메달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년 5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러시아와 전쟁 중입니다.
펜싱 경기가 열리는 그랑 팔레의 공동취재구역에서 이날 만난 우크라이나 기자 이리나 코지우파는 "정말로, 너무나 소중하다. 그 사태 이후 우리가 딴 첫 번째 메달이다. (우리에겐) 금메달과 같다. 아니, 금메달보다도 값지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딴 메달의 가치를 안 하를란도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에 차 오열했습니다. 무릎을 꿇더니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벗고 자신이 승리를 거머쥔 경기장 바닥에 입을 맞췄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아는 관중은 1만 3,500㎡가량 면적을 자랑하는 그랑 팔레 중앙홀이 떠나갈 듯이 박수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의 '국민 검객'이다. 2008년 베이징,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습니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악수 거부' 사건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를란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64강전에서 러시아 출신 선수인 안나 스미르노바를 15-7로 물리쳤습니다.
경기 종료 후 마주 선 스미르노바가 다가가 악수하려 했으나, 하를란은 자신의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두며 악수를 피하고 경기장을 벗어났습니다.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를 하지 않은 하를란은 실격 처리됐습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실격으로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랭킹 포인트를 딸 기회가 사라진 하를란에 올림픽 출전을 약속했습니다.
↑ 코치와 기뻐하는 올하 하를란/사진=연합뉴스 |
이전까지 개인전에서는 동메달만 딴 하를란은 최세빈에게 5-11까지 끌려가며 이번 대회 메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나,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 15-14로 역전을 이뤄내면서 우크라이나에 귀중한 동메달을 가져왔습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 하를란이 나타나자, 우크라이나 기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격렬히 환영했습니다. 하를란도 함께 소리치며 감격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언론뿐 아니라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하려는 전 세계의 기자들이 몰려 잠시 통행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공동취재구역이 꽉 막히기도 했습니다.
환희에 찬 하를란은 "(이번 동메달은) 정말 특별하다. 믿을 수가 없다"며 "조국을 위한 메달이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메달"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오지 못한 선수들,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을 위한 메달"이라며 "여기로 온 선수들에게는 참 좋은 출발로 느껴질 거다.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동메달이 금메달만큼 가치 있다고 한 코지우파 기자처럼 하를란도 "모든 메달이 금메달과 같다. 무슨 메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금메달"이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여한 하를란은 여기서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공개적으로 발언했습니다.
하를란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힘든 일"이라며 "우리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다 고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메달이 조국에 기쁨,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이번 하를란의 발언이 스포츠가 아니라 실제 전쟁에서 자국의 선전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어 '정치적 표현'의 범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불허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IOC 헌장 50조는 시위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동을 올림픽 경기장과 시설 등에서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스포츠의 정치 중립을 강조하는 조항입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