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치팬덤·분노의존 정치' 원인…"정치인 상대 악마화 언행 자제해야"
↑ 피습 당한 이재명 대표/사진=연합뉴스 |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유세 도중 총기 습격을 당해 다치는 일이 벌어지면서 과거 국내 정치인들의 피습 사례들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여야 당 대표나 대선 후보들이 전국 단위 선거 직전 괴한 피습에 노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올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와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불과 3주 간격으로 습격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연초인 지난 1월 2일 부산 방문 도중 습격범이 20∼30cm 길이 흉기를 들고 목 부위를 공격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배 의원은 도심인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국회의원 배현진이 맞느냐'고 물으며 다가온 10대에게 돌덩이로 여러 차례 머리를 공격받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습니다.
↑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실 피습 현장 상황 CCTV 공개/사진=연합뉴스 |
2022년에는 3·9 대선을 앞두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를 위한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 유튜버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다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cm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는 '커터칼 피습'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민주화 이전 군부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적의 목숨을 노린 더 험악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1969년 6월 20일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질산(초산) 테러를 당했으나, 질산이 자동차 창문에 던져져 다행히 김 전 대통령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동해상으로 끌려가 살해당할 뻔하다 5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외 흉기나 둔기를 사용한 '테러' 수준의 습격은 아니더라도 대선 후보나 유력 정치인들이 폭행당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2018년 5월 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는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에 지지자를 자처하며 다가온 30대 남성 김 모 씨로부터 주먹으로 턱을 가격당했고, 열흘 뒤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는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문제 관련 토론회 중에 지역 주민으로부터 얼굴과 팔 등을 폭행당한 바 있습니다.
↑ [그래픽] 주요 정치인 피습 수난사/사진=연합뉴스 |
불특정 다수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대중 정치인은 직업 특성상 늘 피습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의 양극단화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과 대척점에 선 상대를 향한 혐오 정서가 갈수록 커지면서, 이런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과 관련해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간 진영 간 혐오가 깊어지며 정치적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치적 폭력과 혐오는 숙의와 대의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너뜨려 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상대를 향한 증오 발언을 쏟아내는 '혐오 정치'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최근 들어 정치인 피습 사건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팬덤 정치 및 분노에 의존한 정치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정치인들이 분노 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자업자득 측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도 증오의 정치, 분노의 정치를 굉장히 활용하는 정치인인데 그러다 보면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더 분노하게 된다"며 "우리 정치권도 그런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발달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치 팬덤이 발생하고, 이들이 정치 행위에 감정적으로 나서면서 정치 테러가 급증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에서도 정치 팬덤들이 상대를 증오하는 정서적 양
그는 "서로가 서로를 악마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 정치 테러는 더욱 빈번해지고 극단화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언행을 자제하고, 강성 지지자들의 극단적 행동을 부추기는 행동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