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키스보다 큰 규모, 성수동서 문 열어
유명 스토어이자 브랜드인 ‘키스Kith’가 드디어 서울에 상륙했다.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에 이어 키스까지. 심지어 키스는 본거지인 뉴욕보다 더 큰 규모다. 인파로 붐비는 키스 서울의 입구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주요 브랜드들의 스토어를 다 가진 서울과 키스(kiss)한 그 브랜드들의 입지에 대한 생각이 컸다. 과연 그들은 적절할 때 서울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 키스 서울 전경 |
예전엔 한국에는 없고, 그곳에만 있으니 일단 희소성이 있었다. 또 그곳에 (꼭 구매하지 않아도) 들렀다 오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종의 트렌드세터가 되는 환상도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슈프림 쇼핑백, 스티커 하나를 가져오면 뿌듯하고 충만한, 그런 마음 상태가 되는 걸 보라. 허세라고 해도 좋고, 동경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그곳에서 브랜드들의 스토어를 경험했다는 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향유했다는 의미도 되니까 말이다.
↑ 키스 창립자 로니 파이그가 재해석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8번가 삼바 |
2024년 2월, 서울은 또 하나의 매장 오픈으로 들썩거렸다. 뉴욕발 슈프림에 이어 런던발 슈프림으로 회자되던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서울 스토어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조금 식상해진 마니아들에게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등장은 또 하나의 역사였다.
슈프림에 비해 론칭이 한참 늦었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이 스트리트 브랜드의 명성은 리셀 시장에서 꽤나 유명했다. 이러고 보니 이제 서울은 한참 전에 문을 열었던 스투시 스토어 외에 슈프림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라는 스트리트 패션 3대장의 모든 스토어를 가진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 키스 서울 전경 |
↑ 키스 서울 내부 |
과거 뉴욕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힙 플레이스였던 그런 키스가 드디어 ‘키스 서울’로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대한 규모로 말이다. 서울은 이제 ‘키스 서울’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지금 ‘없는 게 없다’. 10 꼬르소 꼬모, 분더샵, 비이커 같은 해외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편집숍들이 즐비한 데다,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 스투시를 넘어 키스라는 웅장한 성전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 (위로부터)키스 서울 전경, 키스 서울 내 사델스 서울레스토랑, 키스 서울 내 트리츠 매장 |
서울이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발전한 만큼, 과거와 같은 해외에의 동경은 줄어들었다. 한국에도 있는 장소를 굳이 해외까지 가서 일일이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 그런데 말이다. 이 필요 없음의 행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서울에 있어서도 찾아갈 필요가 없지만, 지금 그 브랜드 자체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좌)키스 서울 오픈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코리아 캡슐’ 제품들 (우)2017년 선보인 키스와 코카콜라가 콜라보한 보틀디자인 |
최근 필자가 파리 슈프림 매장에 들렀다 놀란 건, 슈프림도 파리 세일 기간에 세일을 한다는 점이었다. 무려 40%나!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때의 슈프림이 아니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웹매거진 「하이스노비어티(HIGHSNOBIETY)」에는 ‘Maybe SUPREME Really Is Dead’라는 흥미로운 타이틀의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이건 많은 스트리트 패션 마니아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슈프림은 죽었다’는 내용이다. 동시에 이건 슈프림을 위시한 스트리트 패션 자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쫘)키스 서울 오픈 한정 코리아 캡슐 제품 중 후드 티, 티셔츠, 클락스 컬래버레이션 슈즈, (우)키스와 뉴욕 닉스 제프 해밀턴과의 콜라보 가죽재킷인 바시티 |
서울을 찾는 여행자의 새로운 좌표로 등장
팬데믹 이전의 키스와 지금의 키스는 많이 다르다. 현재 키스 서울은 패션 대기업과 미국 본사의 합작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과연 키스 서울은 잘 될까? 업계 관계자들에게 키스 서울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면 반반의 긍정과 부정이 돌아온다. 여기에서 교집합을 형성하는 건 “그래도 1년 정도는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을까?”라는 것. 왜냐하면 키스에서 제품을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키스 서울의 트리츠와 사델스 서울에 대한 수요 역시 클 것이기 때문이다.
↑ 1989년 발매된 BMW M3 E30의 다이캐스트(모형 자동차 )로니 파이그 에디션 |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더 크다. 그건 몇 년만 더 빨리 ‘서울과 키스’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다. 슈프림이 여전히 힘을 가지고, 팔라스 스케이트보드가 맹렬한 에너지를 펼치며, 키스가 패셔니스타들의 성지로 군림하고 있었을 때 서울에 입성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미래를 점치게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줄곧 여행자로서 그래왔듯, 이제 서울을 찾는 여행자들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스토어들의 좌표를 찾아 헤맬 것이다. 이제 당당하게 말해도 좋다. 내가 사는 서울에는 키스 스토어가 있다고. 서울은 그런 도시가 되었다고 말이다.
↑ 뉴욕 키스 스토어를 비행하는 마블의 스파이더 맨 코믹 북 표지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8호(24.07.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