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수율 90%…반드시 되는 건 아냐
↑ 벤치로 향하는 황의조 / 사진 = 연합뉴스 |
축구선수 황의조 씨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유포하고 협박했다는 혐의로 황 씨의 형수 이모 씨가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최근 검찰은 피해자들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선고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습니다. 1심 선고 이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담긴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는 현실에 참담한 심정을 전하며 말했습니다.
"9개월이란 시간 저에게 지옥같은 시간이었지만 9개월은 저에게 '아직 9개월'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불법 촬영 피해자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032건이던 불법 촬영 범죄의 발생건수는 2년 뒤 6865건으로 증가했습니다. 불법 촬영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에,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의 피해자가 여전히 범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고 전한 말을 계속 곱씹게 됩니다. 불법 촬영 범죄자에 대한 엄벌 뿐 아니라, 이 범행에 사용된 도구·휴대전화 등 촬영 기기(저장 매체)에 대한 처리 문제를 조명해본 이유입니다.
불법 촬영 범죄에 사용된 휴대전화는 형법 제 48조에 따라 몰수 대상입니다. 이 형법 48조가 규정하는 몰수는 '임의적 몰수'인데, 범행에 사용된 물건을 몰수할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법원에 있음을 뜻합니다. 즉 불법 촬영 재판에서 검찰이 구형을 할 때 휴대전화를 몰수해달라고 법원에 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야 최종적으로 휴대전화가 몰수되고 폐기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불법 촬영 범죄에 악용된 휴대전화는 항상 몰수될까요? 사실확인 해보았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어땠는지 살펴봤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에 관한 판결문 1,531건을 검토한 결과 약 87%는 몰수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양형위원회는 "일반 범죄와 달리 4/5이상 몰수가 선고되었다. 압수된 카메라 등 촬영 도구나 촬영물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 법원 로고 / 사진 = 연합뉴스 |
약 13%의 판결에서는 휴대전화처럼 범행에 사용된 도구가 압수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018년, 2019년으로 오면서 이 수치는 조금 낮아졌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164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니, 몰수 되지 않은 비율은 8.5% 정도였습니다.
불법 촬영 범죄 10건 중 1건에서는, 범죄에 악용된 휴대전화가 다시 피의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불법 촬영에 사용된 휴대전화를 압수하지 않은 것일까.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봤습니다.
2016년 울산의 한 화장실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한 남성에게 울산지방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하며 휴대전화를 몰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검찰이 '휴대전화 몰수가 누락됐다'며 항소를 제기했는데, 항소심 역시 피고인의 휴대전화 몰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②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경찰 조사를 받기 이전에 스스로 삭제. 복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용이하다고는 보기 힘든 점
③ 피고인이 초범으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고 단정하기 힘든 점
2016년 대전에서 1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성폭행 장면을 불법 촬영한 피고인에 대해 대전지방법원은 휴대전화나 노트북에 저장된 불법촬영물을 폐기할 것을 선고하면서도 범행에 사용된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몰수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이에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몰수해달라고 항소를 제기했지만 항소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검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위 동영상을 폐기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달리 보기 어렵다."
몰수 문제에 있어 '법관의 재량'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임의적 몰수의 뜻, 즉 몰수의 최종적 판단을 법원이 내린다는 말은 몰수를 할지 말지는 법관의 재량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불법 촬영 범죄 피해자는 범행에 사용된 도구가 국가로 귀속돼 폐기되길 바란다면, 법관이 본인과 생각이 같기를 바라야 하는 겁니다.
물론 법관의 재량이 참고할 일종의 기준이 없는 건 아닙니다. 1심 선고와 달리 '휴대전화를 몰수하라'며 판단을 뒤집은 부산지방법원의 판결문을 참고해 법관이 어떻게 몰수 판단을 하는지 단서들을 찾아봤습니다.
▲물건의 실질적 가치와 범죄와의 상관성 및 균형성
▲물건이 행위자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인지 여부
▲행위자가 그 물건을 이용하여 다시 동종 범죄를 실행할 위험성 유무
불법 촬영 범죄에 사용된 휴대전화에 대한 몰수 판단은 법관의 재량에 있고, 이를 판단하게 하는 보편적 기준이 있다고 하나 휴대전화가 항상 몰수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앞선 통계자료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몰수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불법 촬영 범죄에 악용된 휴대전화는 항상 몰수되는가'라는 명제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판단내릴 수 없습니다. 90%의 불법 촬영 범죄 사건에서 휴대전화가 몰수되기는 하지만, 10%의 그렇지 않았던 '법관의 재량'을 보자면 정확한 판단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가 되겠습니다.
이 10%의 가능성이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을 알기에 관계 기관이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법무부는 2년 전, "디지털성범죄에서 범죄 대응력의 약화는 곧 피해 영상물의 유포‧확산으로 직결되어 피해자 보호에 심각한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불법 촬영 범죄에 사용된 휴대전화 등에 "몰수‧폐기할 수 있도록 성폭력 처벌법 등에 필요적 몰수‧추징 규정을 신설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법관의 재량권이 적용되지 않는 몰수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관련 법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법무부는 입법을 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약 3년 전,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주관한 '디지털 성범죄 판례분석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이 나왔습니다. "유포 피해의 경우에는 전파성, 영속성으로 인해 그 폐해가 심각한 만큼 범행에 사용된 기기 및 증거물은 모두 몰수하여 폐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저희 MBN이 취재한 사실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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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확인] 불법 촬영 범죄에 악용된 휴대전화, 수사 후 주인에게 반환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807831?type=journalists
[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