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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그 기자는 왜 갑자기 미술관으로 숨었을까…<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책GPT]

기사입력 2024-02-10 11:00

◇ 프롤로그

세상에서 가장 값싼 비행기 티켓이 있다면 ‘책’이라고, 이미 개발된 타임머신이 있다면 ‘음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좋은 책은 펼치는 순간 낯선 풍경과 시선으로 떠나게 하고, 좋은 음악은 듣는 순간 잊고 살던 시절을 어제인 듯 선명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 미술관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어떤 그림은 시대를 뛰어넘어 타인의 세계로 통하는 하나의 새로운 창이 됩니다. 그 오래전 세계는 낯선데도 어딘가 익숙합니다. 근처의 어느 미술관이라도 달려가 멀게만 생각했던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이서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출처=웅진지식하우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출처=웅진지식하우스)

이 작품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작년 말 ‘올해의 책 BEST3’로 선정한 이후 새해인 지금까지도 에세이 부문 각 서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미국 서점 아마존에서는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뉴요커‘ 기자에서 미술관 경비원으로

저자는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 경비원인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좀 특이합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남부럽지 않은 직장, 잡지사 ‘뉴요커’에서 전도유망한 기자로 일하며 치열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각별한 사이였던 형 톰의 시한부 암 진단입니다. 병은 질투 나도록 건강하고 똑똑했던 형을 순식간에 그의 곁에서 앗아가고, 끔찍한 상실 속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갈 힘을 잃은 그는 일을 그만둡니다. 이대로 살수도, 이렇게 죽을수도 없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던 패트릭이 택한 곳은 미술관입니다.

“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 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


그 후로 10년간 경비원으로서 반복한 일상, 마주친 사람들, 함께한 그림들이 말해준 것이 내용의 주를 이룹니다. 책을 읽는 내내 패트릭의 설명을 들으며 지구 반대편 미술관 투어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하는 가장 단순한 일

미술관 경비원으로서의 저자의 생활은 ‘꿀보직’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루 종일을 걸려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 직업은 한 동료의 입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있잖아, 정말 나쁘지 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 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가끔씩 관객의 돌발 행동을 제지하고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것 외에는 큰 업무가 없는 그의 일상은 일견 순례자와 같고, 미술관은 형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도원 같습니다. 상실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건 수백 년 전 인류의 위대한 걸작 속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 속 저자는 미술관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이 인류의 걸작과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이란 예컨대 형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마주한 피에타 그림같은 겁니다.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
↑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 <무덤의 예수와 성모>

"특징 없는 금색 배경 앞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 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중략) (어머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최애’로 언급되는 또다른 작품 중 하나는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입니다. 지평선 너머 항구와 황금빛 들판을 배경으로 나무 아래서 농부 몇 명이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이 떠오른 건 형이 누워있던 병실에서였습니다.
피터르 브뤼헐
↑ 피터르 브뤼헐 <곡물 수확>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하던 형이 어느 날 갑자기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는 뚜렷한 의사를 표현했고, 그 길로 가족 모두가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치킨 너깃을 한 아름 사들고 돌아와 나눠먹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당시를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인생 가장 행복했던 소풍을 즐긴 때’로 기억합니다.

세계적인 걸작 속 풍경이 사실은 누구나 겪어봤을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고 수 세기 전 작가가 부러 노력해 그를 작품의 맨 앞자리로 보내 조명했다는 사실이, 그 시선에 내 삶이 포개어진다는 사실이 그를 위로합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이밖에 다양한 작품이 짤막한 주석과 함께 언급되는데, 모두가 책에 수록된 건 아니라 하나하나 이미지를 직접 찾아본다면 더 몰입해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 예술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그를 바라보는 경비원

매년 7백만 명이 방문하는 메트에서 전시품만큼 눈이 가는 건 이를 마주하는 관람객들의 표정. '관람객을 관람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읽는 재미중 하나입니다. 특징 없어 보이는 단순 관광객부터, 누구는 딱 봐도 뉴요커,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공룡을 찾으러 다니는 '공룡 사냥꾼' 유형도 있습니다.

그중 아메리카 전시관 분수대 앞에서 아이에게 소원을 빌며 던질 동전 두 닢을 쥐여주는 어머니의 말이 저자의 가슴을 울립니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어느 순간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였다고 말합니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미술관을 헤매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삶을 헤매며 의미를 찾는 예술가들, 혹은 그들의 그림 속 인물 같아 보입니다.

◇ 요점이란 예술이 끝내 내놓지 않는 것

저자는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고찰하는데, 대다수가 예술에서 배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배우려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떤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 작품이 어느 시대 작품이고, 작가가 어떤 학파인지를 공부하며 밑줄 긋기보다 작품이 스스로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다음 단계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치열하게 이어지는 일상 속, 슬퍼서건 기뻐서건 '세상이 그대로 멈췄으면 하던 순간'을 표현하는 일이 '예술'이고 저자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대로 눈을 맞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 마치며

슬기로운 경비 생활 속 흘러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슬픔은 점점 옅어지고, 그는 기나긴 애도의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옵니다. 사랑하던 아내 사이에는 두 아이도 생깁니다. 이제 스스로의 감정에 하루종일 발담굴 여유 없이 책임져야 할 생명이 있지만, 그 사실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식들의 평생을 책임지는 일을 '완벽하지도, 완성되지도 않을 프로젝트'라고 표현합니다. 눈코 뜰새없이 매일 이어지는 고된 육아는 그간의 예술적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이제 그는 미술관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건 전직장, 미술관에 관람객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경비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우리의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전합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에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떤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

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가까운 이의 상실로 아파본 적이 있다면, 예술에 가까워지고는 싶지만 막연한 어려움에 망설였던 경험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좋은 이야기꾼 패트릭 브링릭과 함께 비행기 없이 떠나는 집구석 뉴욕 미술관 여행,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동행을 추천드립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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