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 모습 (MBN) |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났습니다. 공장 내부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소방대원들은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수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이 번지는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었고 고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는 화마와 싸우던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번에 불이 난 육가공 공장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졌습니다. 샌드위치 패널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등 단열재를 넣어 만든 건축 자재입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건물을 세울 수 있어서 공장이나 창고를 만들 때 자주 사용하는 건축 자재입니다.
샌드위치 패널은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큰 단점도 있습니다. 불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2020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건물이었습니다. 2022년 평택에서도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9년부터 올해 2월 2일까지 전국의 샌드위치 패널 건물에서 난 불은 16,329건입니다. 100명이 숨졌고, 930명이 다쳤습니다. 매년 샌드위치 패널로 된 건물 화재로 약 20명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모습 (MBN) |
샌드위치 패널 건물 화재와 인명 피해가 반복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샌드위치 패널이 불에 잘 타지 않는 성능을 갖추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검증하는 시험을 받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개별 업체가 모두 시험을 받으면 자재 공급이 어려워지고, 문을 닫는 업체가 나올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또 성능을 시험하는 기관이 부족해 검사를 받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표준모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표준모델 제도는 대표를 선정해 검사하는 방식입니다. 여러 개의 업체가 소속된 협회에서 성능 검사를 통과하면 성능이나 시공방식 등이 같은 협회 소속 업체들의 제품은 따로 검사를 받지 않아도 검사를 통과했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 샌드위치 패널 난연성능검사 결과 (경실련 시민안전위원회) |
표준제도 도입으로 안전한 제품이 유통됐을까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안전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샌드위치 패널 업체 10곳의 제품을 수거해 난연성능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10곳 가운데 1곳을 빼고는 다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준을 충족하려면 시험체 두께의 20%를 초과하는 용융과 수축이 없어야 하는데 1곳을 제외한 모든 업체의 시험체에서 기준 이상의 변형이 일어났습니다. 검사에 구멍이 뚫렸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정부는 일부 업체의 표준모델 인정을 한 달 동안 정지 시키거나 인정을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후속 처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실련은 표준모델 제도가 개별 업체들의 제품 성능시험 없이 협회의 인증만으로 판매를 가능하게 해 불량 자재의 유통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인증을 제대로 받은 제품만 유통될 수 있게 해야지 후속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물론 다른 의견 있습니다. 평가 기준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거죠.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준을 만들어 이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준을 다시 검토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건축 규제는 소급 적용 되지 않는 게 많습니다. 즉,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건물은 기준에 맞춰서 다시 짓거나 바꿀 필요가 없는 거죠.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적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적용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비교적 느슨한 규제를 받은 건물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불이 난 문경 공
아직도 공사 현장에 유통되는 샌드위치 패널의 안전성이 논란에 휩싸이는 건 큰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치렀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못한 거죠. 하루라도 빨리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고 이를 깐깐하게 적용해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