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④
13시간 달려 도착한 두샨베
자전거와 바이크 여행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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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미르 카피르 요새로 향하는 길 |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이 끝이 났다. 파미르가 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히는지, 왜 많은 여행자들의 인생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속하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여행의 마무리에 덧붙여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를 탐험한 여행자의 경험을 소개한다.
가장 추웠던 밤, 부룬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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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미르에서 가장 날씨가 추운 지역, 부룬쿨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거주한다. |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 아홉째 날이 밝았다. 무르갑(Murgab,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도시)을 뒤로하고 문명으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M41도로를 따라 호로그(khorog, 파미르의 수도)로 돌아간 뒤 거기서 왔던 길 그대로 첫날 여정을 시작했던 두샨베(Dushanbe, 타지키스탄 수도)로 이동할 계획이다. 남은 사흘의 시간.
마치 오래 비워둔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마냥 결말의 시작에 벅찬 감정만이 요동을 친다. 원래 있던 곳, 있어야 할 곳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결말의 종막. 그 첫날밤을 장식할 호수마을 부룬쿨(Bulunkul)은 무르갑에서 서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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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부룬쿨 마을 홈스테이 저녁 밥상에 올라온 귀한 생선튀김, 홈스테이 외부 전경, 부룬쿨 마을 상점과 마을 전경 |
파미르의 혹독하고 극단적인 기후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부룬쿨은 파미르를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날씨가 추운 마을로 알려져 있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50~60도를 밑돌 정도. M41도로에서 북쪽으로 약 16km 떨어진 파미르 고원 깊숙한 곳에 부룬쿨 호수를 끼고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50여 가구, 300명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변에 나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곳, 흐르는 물이나 전기의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지마을에서 최고의 보물은 고원에 서식하는 야크(Yak) 무리들이다. 야크에서 짜낸 우유와 버터는 주민들의 에너지원이며, 배설물은 이 마을의 유일한 연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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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크의 배설물은 이 마을의 유일한 연료다. |
마을의 또 다른 원천은 바로 호수다. 파미르 산맥의 군트(Gunt) 계곡 상류에 위치한 부룬쿨 호수는 얕은 담수호로 습지와 모래, 자갈 평원으로 둘러싸인 파미르 산맥의 주요 조류 보호구역이다. 겨우내 꽁꽁 언 호숫물은 5월부터 녹기 시작해 이곳 주민들에게 생선 등의 먹거리를 제공하고, 7~8월에는 수영장으로도 활용돼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홈스테이 저녁 밥상에 올라온 귀한 생선튀김은 마침내 고깃국으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여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맛의 유무를 떠나 홈스테이 가족의 융숭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른 채 순식간에 생선을 해치웠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맛,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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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실쿨 호수 |
일몰과 함께 금세 암흑 속에 잠긴 호수마을, 전깃불 대신 별빛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초여름의 날씨지만 암흑의 밤은 눈 깜짝할 사이 영하로 떨어졌다.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에서 가장 추웠던 밤을 지새우며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부룬쿨의 겨울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찬란한 햇볕 그리고 온천과 요새
파미르의 낮과 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햇볕이 최고조에 이르는 한낮이 되면 지난밤의 추위는 물론 심신을 에워싸고 있는 온갖 고민과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감돈다. 파미르의 찬란한 햇볕 아래 몸을 맡기고 나면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자라난다. 어떠한 고민도 파미르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다시 호로그로 향하는 길목에 마주한 젤룬디 온천(Jelondy Hot spring)이 선사한 실망감도 그렇게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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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젤룬디 온천, 불교사원으로 사용된 카피르 요새 벽면, 고고학적 유적지, 카피르 요새 전경 |
온천은 긴 여정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마지막 장소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모습은 알려진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소련 당시 군트 강 주변에 휴양시설로 조성된 이 온천은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수십 년간 그대로 방치한 것 같은 지저분한 시설과 너무 뜨거워 발조차 담글 수 없는 고온의 물.
이곳 관리자에게 물의 온도가 너무 높다는 항의를 재차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온도를 낮춰준다 한들 이물질 가득한 더러운 온천수는 또 어찌하랴. 구소련 당시 최고의 온천으로 각광받았다던 명성은 소련 해체와 더불어 몰락한 모양새다. 귀곡산장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온천을 밤이 아닌 낮에 방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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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트 강과 주변 마을 전경 |
호로그행 길목에 잠시 정차한 곳이 하나 더 있다. ‘이교도의 요새’라 불리는 카피르 요새(Kafir Fortress)가 호로그(Khorog)에서 동쪽으로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고대에 지어진 요새는 큰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직사각형으로 벽면이 세워져 있다. 한쪽 모서리에 성채가 있고, 성채에는 통치자의 궁전이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요새의 궁전 단지는 한때 불교사원으로 사용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서기 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그림과 불교 내용으로 보이는 비문이 이곳에서 발견됐기 때문. 현재 이곳 요새에는 파괴되고 부서진 일부 벽면만이 남아 있으며, 고고학적 유적지의 기능은 물론 군트 강과 주변 마을을 조망하기 위한 전망대로서도 기능한다.
마지막 이동의 끝, 다시 두샨베에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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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은 호로그 공원 |
날짜를 따져보니 딱 일주일 만이다. 첫 방문 때와 달리 호로그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였나 싶을 만큼 모든 게 크고 넓고 분주한 거대도시의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았다. 벌써 문명을 마주한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호로그는 일주일 전 모습 그대로인데 이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각에 너무 큰 변화가 생겨버렸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변화다.
일주일간 운전대를 잡았던 네크루스(Nekrus)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에 작별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성급히 우리 일행 곁을 떠났다. 어디서나 퇴근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호로그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숙소 주인의 도움으로 두샨베까지 이동할 셰어택시를 예상보다 쉽게 구했다. 14시간의 이동을 한날에, 한 번에 끝내기로 했다. 두샨베로 향하는 길에서 같은 듯 다른 점은 여정 초기 이틀에 나눠 이동했던 거리를 한달음에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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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샨베행 셰어택시를 타고 마침내 포장도로를 달리다 13시간을 달려 두샨베에 도착했다. |
오전 7시쯤 출발해 두샨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저녁 8시경. 예상보다 1시간을 앞당겨 도착했다.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을 준비하며 일주일간 묵었던 그린하우스호스텔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마침내 집에 온 것 같은 안도감이 번져왔다.
이후 며칠간 호스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의 관심은 온통 자신만의 교통수단을 가지고 파미르를 여행한 용감한 여행자들에게 꽂혀 있었다.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마무리하며, 각각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파미르를 여행한 두 명의 여행자, 이들의 용기와 경험, 에너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고립된 곳에서 고립되지 않은 순간을 달립니다”
오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 링거(Stuart Ringer)
“인구가 적은 고립된 지역일수록 라이딩은 외로움과의 싸움입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흥분되는 일이죠. 영국을 떠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고독’을 즐기기 위해 1만3,000km를 달려왔어요.” -오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 링거(Stuart 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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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art Ringer(Instagram@roadtrip_mc) |
영국 출신 스튜어트와는 두샨베 그린하우스호스텔에서 만났다. 첫인상에서 포스가 남달랐던 그다. 꽤 경력 있는 오토바이 여행자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가 열한 살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을 줄은 예상치 못한 스토리다. 현재 그의 나이 59세, 오토바이와 함께한 지 반백 년이 가까운 세월이다. 그 세월 동안 영국에서 캄보디아까지, 파타고니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여기에 호주와 뉴질랜드 등의 라이딩 경험을 합치면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으로 약 20만 km. 그리고 마침내 오토바이 여행의 정점을 찍기 위해 스튜어트는 파미르 하이웨이를 선택했다.
“파미르는 그야말로 ‘좋은 도전’이 될 것 같았어요. 인구가 적은 고립된 지역일수록 라이딩은 외로움과의 싸움입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흥분되는 일이죠. 영국을 떠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고독’을 즐기기 위해 1만3,000km를 달려왔어요.”(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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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art Ringer |
파미르 여정 중에 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랑가르 홈스테이에 묵었을 당시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스튜어트를 보고선 광활한 파미르가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과 마주한 와칸밸리(Wakhan Valley), M41도로,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사이 국경 폐쇄로 다시 두샨베행을 택하기까지 거의 동일한 경로로 이동한 덕분에 그와의 우연한 만남은 마치 필연 같았다.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최악의 비포장도로를 만날 때면 파미르 고원 어디선가 혹독한 추위와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달리고 있을 오토바이 여행자를 떠올리곤 했다. 과연 스튜어트에게도 혹독한 기후나 도로 사정이 최악의 순간으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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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art Ringer |
“때때로 도전적이긴 했지만 험난하진 않았어요. 파미르는 고도가 높고 일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를 띠는데, 그것이 오히려 라이딩을 돕는 배경이죠. 오히려 가장 큰 도전은 정신적인 문제에서 옵니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고립되고 광활한 고원에서 자칫 문제가 발생하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죠. 그러고 나면 당장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게 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거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하죠. 실수하면 끝이거든요.”(스튜어트)
스튜어트에게 오토바이를 타는 순간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과도 같다. 그것이 그가 전 세계 20만 km를 달리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라이딩 과정에서 주변에 자리한 모든 자연과 생명을 오롯이 느끼고 경험하며 그것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순간을 향유하는 것. 추우면 그 찬 공기를 느끼고, 더우면 그 열기를 느끼는 것. 도로 표면의 모든 변화와 경사, 몸을 에워싼 땀과 먼지를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이 오토바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스튜어트는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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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art Ringer |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로 난 강의 매우 좁은 지점 그 반대편 강둑에서 유목민 무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말이죠. 야크와 당나귀를 몰고 있던 유목민 무리에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었어요.
남자들은 커다란 터번을 썼고, 여자들은 일반적인 검은색의 부르카(Burka,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감는 이슬람 여성 복장) 대신 수가 놓여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죠. 그들이 제게 손을 흔들자 저도 곧장 손을 흔들며 화답했어요.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일상의 대화를 나눴을 겁니다. 마치 이웃을 만난 것처럼요.”(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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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art Ringer |
2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에서 스튜어트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강을 마주한 채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 그때다. 서로의 인사가 세상을 여행하게 하고 조금은 색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고 그는 믿는다.
“중요한 건 일단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예요”
자전거 여행자, 앤서니 탄(Anthony Tan)
싱가포르 출신 앤서니가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건 2023년 6월 중순부터다. 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파미르로 향하고 있었고, 그를 만난 건 키르기스스탄의 한 시골마을에서였다. 약 한 달간의 파미르 탐험을 끝낸 그의 여정은 우선 천운이 따랐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국경이 다시 개방된 직후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서 출발해 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어 두샨베까지 이어지는 꿈의 여정을 두 바퀴에 의지한 채 실행에 옮긴 그에게 가장 먼저 두 나라의 국경 상황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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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hony Tan(Instagram@anthttm) |
“국경이 폐쇄됐다가 다시 개방이 되고 나면 검문소를 지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군인들이 검문이나 소지품 검사 등을 할 때 엄청 까다롭게 굴기 때문이라는 얘기였죠. 일단 처음 맞닥뜨린 키르기스스탄 국경은 예상보다 상태가 양호했어요. 절차도 생각보다 간단했죠. 그리곤 곧장 타지키스탄 국경으로 넘어갔는데 낡고 오래된 상태를 보아하니 확실히 두 나라의 시설 격차가 느껴졌어요. 그것에서 긴장감이 들었죠.
아니나 다를까 출입문을 통과할 때 군인이 담배를 달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거예요. 돈이나 담배와 같은 일종의 뇌물을 요구하는 군인을 만날 수 있다는 후기를 눈앞에서 경험하게 됐던 거죠. 담배가 없다는 말에 군인이 돈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다행히 그걸로 끝이었어요. 자전거 여행자라 그들에게 돈을 뜯어낼 만한 대상이 아니었나 봐요.”(앤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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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hony Tan |
어렵사리 두 나라의 국경을 차례로 통과한 후 맞닥뜨린 파미르는 그에게 광대하고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거대한 풍경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분은 한마디로 표현이 쉽지 않다. 황홀하면서도 두려움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최고와 최악의 상황이 한데 맞물려 둘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했다. 비포장도로 위에서 바퀴 2개를 굴릴 때마다 몰아치는 흙먼지와 모래 바람, 강한 역풍이 계속해서 그를 에워쌌지만 그럼에도 운은 계속 따랐다. 여정 내내 단 한 번도 비구름을 만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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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hony Tan |
“부정적인 상황은 반드시 긍정적인 사고를 불러옵니다. 강한 역풍을 만났던 카르구시(Khargush) 방향에서 남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야 했을 때 여정을 함께한 일행과 내가 교대로 앞장서서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했습니다.
도로 위에서 이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 안에 부정은 긍정으로 점차 바뀌어갔어요. 자전거 여행에서 도로 사정이나 기후 조건은 여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일단 앞으로 가야 해요.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유죠.” (앤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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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hony Tan |
앤서니는 여정 가운데 대부분의 밤을 텐트에서 잤다. 끼니도 직접 해결했다. 그는 자전거 여행의 최대 장점으로 자연 속에서의 캠핑을 꼽았다. 그는
‘자신만의 교통수단을 가지고 이동하는 곳곳마다 집을 짓고 잠을 청하는 일은 여행을 넘어 삶의 유연성과 가능성을 향유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텅 빈 고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그에게 때론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난을 극복하고서 맛보는 성취는 그 어떤 자부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체득했다.
“자전거로 파미르를 여행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두렵거나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몸소 알게 되어 기쁠 따름이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집 근처 인근에서 먼저 시작해보세요. 두 바퀴는 생각보다 빠르고, 두 다리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앤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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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hony Tan |
파미르를 횡단했던 오
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와 자전거 여행자 앤서니와의 만남에서 다시 깨닫는다. 여행은 결국 살아가는 이유를 깨우치는 과정이고, 파미르 여행은 살아가는 이유와 더불어 환경을 깨우친 소중한 순간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글 추효정(여행작가) 사진 추효정, Stuart Ringer, Anthony Ta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