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 환경부 초록누리 홈페이지에 게시된 탈취제 위반제품 (사진=초록누리 홈페이지) |
인터넷으로 ‘초록누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한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 사이트죠. 여기 들어가보면 안전기준을 위반해 판매나 제조금지 조치를 당한 상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10월 이곳에 한 탈취제가 위반제품으로 등록됐습니다. 지금도 등록이 된 상태라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소재 전문 기업인 V 업체가 출시했던 탈취제였습니다.
이유는 발암물질인 ‘폼알데하이드’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약 2년 만인 지난해 말 이 제품을 위반제품으로 등록한 게 잘못됐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사실이라면 업체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겠죠.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999년 설립된 V 업체는 2018년 의류와 섬유, 신발에 쓰는 스프레이형 탈취제를 개발했습니다. 업체에서 자체 개발한 물질을 이용했는데 마침 2020년 들어 코로나19 감염위기가 커진 시기 해당 물질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기능이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출시 전 V 업체는 한 시험연구원에 안전성 검사를 의뢰했고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정성을 감독하는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은 출시된 해당 탈취제에 문제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별도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환경청은 직접 온라인 쇼핑몰에서 탈취제를 구매해 시료를 채취한 뒤 이를 국가공인 시험기관 세 곳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세 곳 다 해당 제품에서 기준치를 넘는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A 시험기관 검사결과 – 26mg/kg
B 시험기관 검사결과 – 24mg/kg
C 시험기관 검사결과 – 25mg/kg
안전기준 – 12mg/kg 이하
세 기관 검사에서 모두 기준치의 두배가 넘는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오자 환경청은 2021년 9월 해당 탈취제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고 이미 시중에 나온 탈취제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겠다고 사전통지했습니다.
↑ 한강유역환경청 (사진=연합뉴스) |
V 업체는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업체는 환경청에 “같은 양 보관분으로 시험해봤더니 폼알데하이드가 기준 이하로 검출됐다, 다만 문제가 된 제품 용기에서 폼알데하이드가 용출된 걸로 확인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환경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같은 해 10월 제조·판매금지 및 회수명령을 확정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초록누리 홈페이지에도 해당 탈취제 사진과 함께 조치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환경청 조치가 부당하다고 여긴 업체는 이듬해인 2022년 1월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서울행정법원·서울가정법원 (사진=연합뉴스) |
2년 가까이 진행된 재판 끝에 법원은 업체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업체 청구를 받아들여 “제조금지와 회수명령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재판에서 업체 측은 환경청이 의뢰한 검사 방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에 필요한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재판부는 업체 주장대로 검사가 잘못됐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등 법률에 따른 시험 방법 중 이번 탈취제에서 문제가 된 폼알데하이드 같은 ‘알데하이드’류 안전기준을 시험하는 방법으로 ‘고성능액체크로마토그래피법’,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법’ 등이 있습니다. 자세히 언급하면 어려울 수 있으니 간단히 말하자면 검사 대상의 시료를 희석한 여러 절차를 거쳐 해당 특정 검사 기기로 검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검사법들을 시행할 때는 이런 조건이 법령에 명시돼 있습니다.
- 산화성 물질이 제품에 함유된 경우 시료와 동일한 양의 티오황산나트륨을 넣어 시료용액을 준비한다.
즉 검사 대상에 '산화성 물질'이 들어 있을 경우 별도 처리를 하지 않으면 검사 결과가 왜곡될 수 있어 보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산화성 물질이라는 건 시험 과정에서 산화, 촉매 반응 등 화학반응을 일으켜 폼알데하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래 제품에는 없던 폼알데하이드가 오히려 안전성 시험 과정에서 만들어져 검출돼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티오황산나트륨’은 산화성 물질이 시험 과정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시험 결과 제품에 '원래 들어있던' 폼알데하이드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재판부는 한 시험연구원에 의뢰해 해당 탈취제에 산화성 물질이 있는지, 있다면 전처리를 하고 안전성 검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탈취제에는 ‘염화구리’라는 산화성 물질이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염화구리는 가축 전염병 소독제 등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물질입니다.
'산화성 물질'이 있는 게 확인됐으니 이제 '티오황산나트륨'으로 전처리한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티오황산나트륨 미첨가 - 66~68mg/kg
티오황산나트륨 첨가 - 검출 안 됨
정확한 조건에 맞춰 검사한 결과 탈취제에는 기준치 이상 폼알데하이드가 나오지 않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럼 환경청이 의뢰한 기관들은 이 조건을 안 지킨 걸까요? 환경청 의뢰로 검사를 한 기관 중 한 곳은 “티오황산나트륨 전처리를 한 사실이 있는지 사실조회가 어렵다” 즉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한 기관은 “환경청으로부터 산화성 물질 관련 정보를 제공받지 않아 전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정확한 조건으로 시험하지 않았거나 조건을 지켰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대로 검사를 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검사를 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 확인된 거죠.
환경청 측은 검사 당시 해당 제품에 산화성 물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환경청은 법원이 의뢰한 시험 결과에 수긍할 만한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막연한 의심만을 제기하며 다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법령이 정한 표준시험절차를 따르지 않아 오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시험분석 결과만으로 탈취제에 기준치를 초과한 폼알데하이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환경청의 처분이 잘못됐다고 판결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앞서 언급한 초록누리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V 업체 탈취제가 안전 기준 위반 제품으로 공개돼 있습니다. 환경청이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업체가 환경청의 잘못된 검사로 억울한 조치를 당했는지
해당 업체 측 관계자는 억울한 점이 많다며 환경청의 잘못된 검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인허가권을 가진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인 만큼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 역시 간접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