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눈에 띄는 트렌드, 뉴리티지
‘뉴New와 헤리티지Heritage’의 결합
팝업, 뉴트로 속초, 할매니얼 간식의 인기까지
‘취향’과 ‘놀이’ 결합한 헤리티지 인기
눈 감았다 뜨면 새로운 게 생겨나는 세상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이유로 많은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유산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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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과거의 현대적 계승의 명분, 헤리티지
겨울 한파가 들이닥치기 얼마 전 군산에 여행 삼아 다녀왔다. 날씨 좋은 주말의 군산 거리는 인파들로 가득했다. 경암동 철길마을에 나보다 더 위 세대들이 교련복과 오래 전 교복을 빌려 입고 삼삼오오 모여 추억 사진 한 장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밀레니얼과 Z세대로 분류되는 현재 소비의 축인 새로운 세대들도 많이 보였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듯해 보였다.
모던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자라난 세대들이 국자에 설탕을 듬뿍 붓고, 연탄불에 휘휘 저으며, 소다 가루를 첨가해 부풀어 올리는 과거의 간식(물론 <오징어 게임>이 더 확산시킨 탓도 있겠지만), 달고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짧은 군산에서의 여행에서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대두되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뉴트로’의 기운이 여전하다는 것을. 더욱이 2024년의 새로운 트렌드로 전문가들이 꼽은 ‘뉴리티지’의 확산 조짐이 명확하게 감지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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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짧은 군산에서의 여행에서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대두되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뉴트로’의 기운이 여전하다는 것을. 더욱이 2024년의 새로운 트렌드로 전문가들이 꼽은 ‘뉴리티지(New-ritage)’의 확산 조짐이 명확하게 감지됨을 말이다.
누군가의 옛 것은 누군가의 새 것이 되기 마련이다. 뉴트로가 딱 그랬다. 복고주의라 불리는 레트로의 경계를 넘어, X세대까지 경험해왔던 것들이 MZ세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되어버린 상황. 그래서 아날로그 시절 물건들이 웃돈 얹어 거래되는 기현상까지 일어났지 않은가. ‘뉴’와 ‘헤리티지’가 조합된 뉴트리지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며 폭발적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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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 대포항의 모습[사진=픽사베이] |
팬데믹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명목 하에 개인을 속박했던, 그래서 물리적 단절의 시간을 홀로 버텨내야 했던 시기들의 유일한 통로는 온라인이었다. ‘디지털 아카이빙’ 속 수많은 콘텐츠들은 바로 지금 등장하는 그 어떤 콘텐츠들보다 더 흥미로웠다. 철 지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유튜브를 통해 다시금 유행했고, 2000년대를 풍미한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 <순풍 산부인과> 등이 압축된 짤로 돌며 밈이 되기도 했다. 어떤 유튜버가 업로드한 전통 간식 약과는 전국적 유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SNS에서는 지역별 전통시장이 일종의 핫플로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기도 했다. 속초, 강릉, 제주 등 유명 관광지의 전통시장에 들러 본 경험이 있을 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주말 기준으로 주차장은 자리가 없고, 사람들은 떠밀려 다닌다. 어떻게 보면 강원도 속초는 뉴트로의 대표적 도시가 됐다. 거기에는 조선소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거대한 카페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고, 오래된 지역 서점이 새로운 명소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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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 아이[사진=픽사베이] |
팬데믹이 해금되면서부터 뉴리티지는 폭발적 트렌드로 확장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말한 약과는 현대와 만나면서 쿠키 위에 통째로 얹혀지는 등 더 폭발인 유행 간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먹거리 트렌드를 선도하는 붕어빵도 뉴리티지의 일환이다. 과거 군고구마와 함께 겨울 먹거리의 대표 주자였던 붕어빵이, 앙금으로 팥은 물론 슈크림, 고구마, 치즈까지 담아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흑임자, 인절미 등과 같은 굉장히 전통적 먹거리도 새로운 세대의 각광을 받았다. 오죽하면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새로운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이다. 심지어 과거의 먹거리가 되려 현대 음식보다 조금이나마 더 건강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그러니까 인절미를 좋아한다고 조롱당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소하고 쫀득거리는 식감이 자신의 취향에 부합된다면 서슴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인절미!’라고 말할 수 있는 세대라는 점이다. 이 취향은 뉴리티지의 트렌드화를 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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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절미, 붕어빵, 약과가 ‘할매니얼’ 간식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
문화의 30년 주기설
‘세대(Generation)’는 “인간이 태어나서 자식을 잉태하기까지 걸리는 대략 30년 주기를 뜻하는 ‘세(世)’와 먼저 태어난 사람과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 교대한다는 뜻의 ‘대(代)’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사전적으로도 30년이라는 시기에 중점을 둔다. X세대가 1990년대의 유산이라면, 그 30년 후인 2020년대가 현 세대라는 말이 된다.
영국의 학자 제임스 레이머는 “유행이 30년이 지나면 흥미롭게 느껴지고, 그보다 더 지나면 고풍스럽고 매력적이게 느껴진다”며 “100년이 지나면 낭만적으로, 150년이 지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30년 전까지 피지컬 뮤직 앨범으로 판매되던 바이닐 레코드의 2020년대 유행 역시 뉴트로와 더불어 뉴리티지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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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뉴리티지 트렌드는 청춘들이 포착한, 특히 취향에 부합되는 것들로 선택한 물건, 음식, 공간 등의 유행을 뜻하기도 한다. 많은 수의 취향이 응집된 것이라면 그건 곧장 ‘핫’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두며 대중적으로, 상업적으로 유행한다. 소수의 취향이지만, 그 자체의 특이성이 돋보인다면 그건 ‘힙’이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유행을 만들어낸다.
Z세대의 뉴트리지, 헤리티지에 흥미와 재미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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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시아가 스키웨어 팝업스토어[사진제공 발렌시아가] |
새로운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취향’이었다면, 여기에 ‘놀이’라는 또 다른 중요 요소가 추가되어야만 한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 헤리티지다. 그 유산이 뉴리티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현재 세대가 큰 의미를 부가하는 ‘흥미’ ‘재미’가 덧붙여져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과거 현대자동차를 부흥하게 한 차종 포니로 ‘포니의 시간’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SNS에 이 전시회는 아주 핫한 어떤 것으로 퍼져 나갔다. 만일 그곳에 포니의 역사만 존재했다면 인기 전시로 랭크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곳에는 관람객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가 포진되어 있었다.
지난해 수많은 전시와 팝업 스토어가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열렸다. 돌이켜보면 대부분 단순함을 뛰어 넘어 일종의 ‘플레이그라운드’로서의 체험형 전시이자 팝업들이었다. 2023년 하반기 성수동을 뒤덮은 명품 브랜드 버버리 이벤트도 대표적이다. 한 장소를 선점하지 않고 여러 곳에 다양한 섹션을 두었다. 제품을 파는 스토어, 신제품을 전시하는 공간, 심지어 카페까지. 버버리의 행사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의 손에는 버버리 쇼핑백이 들려져 있었다. 행사로서는 꽤나 흥행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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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탬버린즈 더현대 서울 팝업 스토어[사진제공=탬버린즈] |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팝업 스토어에 공간의 크기와 관계없이 하나쯤의 놀이 혹은 체험 이벤트는 존재했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SNS에서의 유행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것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시작에서부터 점차 영역을 넓히고, 또 원래 있던 트렌드에 약간의 살을 붙이며 진화해간다. 어떻게 보면 뉴리티지 트렌드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크고 작은 트렌드의 총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뉴트로, 팝업 스토어, 플레이그라운드, 전시회 등등. 이 탓에 2024년에도 뉴리티지는 지속되고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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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이제 브랜드들은 헤리티지를 대중에게 선보이며 자신들의 유구한 역사성, 셀러브리티들과의 관계성, 디자인의 독창성, 제조 공정의 지속가능성 등을 모두 보여준다. 여기에 소비자 계층의 취향을 고려하고, 새로운 소비자 군이 좋아할 만
한 놀이 문화를 곁들인다. 지금의 유행을 선도하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뉴리티지. 이제 누가 더 역사적인 걸 더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가에 승부의 핵심이 달렸다. 이런 창조성이 많아질수록 소비자들은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