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만큼 대중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는 문화 공간, ‘극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팬데믹 이후로 좀처럼 회복세에 오르지 못했던 영화관은 달콤한 판타지 영화들을 주축으로 <서울의 봄>의 흥행 열기를 이어가려 하고 있고, 연말연시 추위도 녹일 만한 따뜻한 뮤지컬 극들 역시 차례로 개막 소식을 알리고 있다.
#환상의 세계로 초대할 영화 개봉작
2024년 상반기 극장가에는 판타지 영화, 애니메이션 개봉작들이 눈에 띈다. 100주년을 맞이한 디즈니의 기념작을 비롯해, <미니언즈><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등을 선보인 일루미네이션의 새로운 영화까지 풍성한 라인업들이 영화관에 훈풍을 불러올지 기대감을 높인다.
↑ (왼쪽부터) 영화 <위시>, <인투 더 월드>, <웡카>(각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 영화 <위시>(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오는 31일 극장가를 찾아오는 <웡카>는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렛 공장』 이전 주인공 ‘윌리 웡카’가 초콜릿 공장을 세우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영화다. 가진 것은 달콤한 꿈과 낡은 모자뿐인 윌리 웡카가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마법으로 가득 찬 기발한 세계관, 그동안 윌리 웡카를 대표했던 조니 뎁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티모시 샬라메만의 윌리 웡카는 주목해볼 부분. 특히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영화에서 노래와 춤까지 직접 소화해내며 화제몰이 중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 영화 <시민덕희>(사진 (주)쇼박스) |
#전 세계가 사랑하는 대형 뮤지컬
6년 만에 한국어버전의 귀환으로 뜨거운 기대를 받고 있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극은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벌 제도, 이방인들의 소외된 삶을 그린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남자,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 성직자 ‘프롤로’, 약혼자를 둔 근위 대장 ‘페뷔스’의 욕망과 사랑을 주축으로, 이 밖에도 이야기의 해설자 ‘그랭구와르’, 이방인들의 우두머리 ‘클로팽’, 페뷔스의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3시간 동안 펼쳐진다.
오랜 시간 동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캐릭터들이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귓가에 맴도는 음악과 시적인 가사, 비보잉, 아크로바틱, 브레이크 댄스가 결합된 역동적이고 화려한 군무가 어우러지기 때문. 또한 파리의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가고일 석상’, ‘거대한 종’ 등 상징적인 대도구들, 조명을 활용한 빛의 표현은 극의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종지기 콰지모도 역에는 정성화, 양준모, 윤형렬이 이름을 올렸으며, 에스메랄다 역에는 유리아, 정유지, 솔라, 파리의 음유시인이자 이야기의 해설자인 그랭구와르 역에는 마이클 리, 이지훈, 노윤이 연기한다. 1월24일부터 3월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사진 (주)마스트인터내셔널) |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16년 웨스트 엔드 초연 이후 흥행과 함께 주요 어워드를 휩쓸면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는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가 5년 만에 한국 무대를 찾는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로 잘 알려진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동명의 원작 영화를 뮤지컬화하며 작곡과 함께, 최정상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만든 ‘스쿨 오브 락’은 거장의 새로운 히트작으로 자리했다. 20여 곡의 넘버는 락부터 클래식, 히트팝 등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배우들이 노래, 연기,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열연, 생생한 라이브는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음악을 통해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간다’는 보편적인 스토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번 무대에선 브로드웨이, 월드투어를 통해 압도적 찬사를 받은 코너 글룰리가 ‘듀이’ 역할을 맡아 원작 영화 속 잭 블랙 못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낸다. 밴드를 통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며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깨닫는 ‘영 캐스트’들은 평균 연령 11.5세의 놀라운 재능을 뭉친 ‘리틀 빅 아티스트’로 캐스팅되었다. ‘스쿨 오브 락’은 1월12일부터 3월2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 4월에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다.
↑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사진 에스앤코) |
#10주년 맞이한 ‘스테디셀러’…꾸준한 인기
뮤지컬 ‘드라큘라’는 브램 스토커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한 드라큘라 백작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그리는 극이다. 지난 시즌까지 약 40만 명의 관객들을 모은 ‘드라큘라’가 한국 라이선스 10주년을 기념하는 5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타이틀롤 ‘드라큘라’ 역에는 초연부터 빠짐없이 무대를 지키며 10주년을 이어온 주역 김준수를 비롯해 전동석, 신성록이 출연한다. 드라큘라의 연인인 ‘미나’ 역에는 임혜영, 정선아, 아이비가, 이 밖에도 ‘반 헬싱’ 역의 손준호, 박은석, ‘조나단’ 역의 진태화, 임준혁, ‘루시’ 역의 이예은, 최서연, ‘렌필드’ 역의 김도현, 김도하가 캐스팅되었다.
국내에서도 친숙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강렬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음악과 4중 턴테이블이 어우러진 무대가 특징으로, 마치 ‘MSG’를 맛보는 것처럼 임팩트 높은 장면들과, 로맨스 장인들로 불릴 만큼 캐릭터들의 드라마틱한 서사들이 어우러진다. 이러한 요소들이 10년 동안 끊임없이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인 셈. ‘드라큘라’ 10주년은 3월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 뮤지컬 ‘드라큘라’(사진 오디컴퍼니(주)) |
익숙한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 대신 강렬한 이미지와 음악, 무대 연출을 통해 뮤지컬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화제작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뮤지컬 ‘더데빌: 파우스트’가 다섯 번째 시즌의 개막을 알렸다. 2014년 초년 이후 10년이란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더데빌: 파우스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프로 하는 극이다.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주가 대폭락 사태를 맞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주식 브로커 ‘존 파우스트’와 그를 두고 벌이는 ‘빛’과 ‘어둠’의 내기라는 이야기로 재탄생한 극은, 각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라는 주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작품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X-White’와 ‘X-Black’은 각각 인간 내면의 빛과 어둠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선 존 파우스트는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 ‘그레첸’은 끝까지 어둠에 대항하는 아름다운 존재이자 양심으로 존재한다. 러닝타임 110분 동안 이어지는 긴장감 있는 내기는 인간의 선택이라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공연 말미 커튼콜에서 배우가 직접 작품의 주요 오브제인 사과를 관객에게 선물하는 순간은 이 극의 별미로 꼽힌다. ‘더데빌: 파우스트’는 3월3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뮤지컬 ‘더데빌: 파우스트’(사진 PAGE1, 알앤디웍스) |
#기대해볼 신작 러시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의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하는 말로, 작품은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인 테너 ‘이인선’에게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한국 최초로 오페라 공연을 연출하고 주인공을 맡은 테너이자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의사였던 그의 삶을 모티프로 삼은 것.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의사가 되는 것밖에 몰랐던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은 우연히 ‘오페라’를 알게 되어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인물이다. 항일 운동 모임 ‘문학회’의 리더인 ‘서진연’과 건축학도 ‘이수한’은 애국심 고취를 위해 오페라 공연에 뛰어들게 되고, 이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이 낯선 ‘서양 창극’을 공연하기 위해 뭉치게 된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어둡고 비극적인 시대 속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성적인 세브란스 의전 의대생에서 낯선 오페라에 빠져드는 윤이선 역은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가 맡아 무대를 빛낸다. 서진연 역의 김지현, 박지연, 홍지희, 이수한 역의 전재홍, 신성민 등 역대급 초연 캐스팅이 모여 막강한 시너지를 뿜어낸다.
극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오페라와 뮤지컬의 음악적 요소들을 합쳐 탄생한 음악, 이례적으로 12인조 현악기로 구성된 18인조 오케스트라의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연주, 1930년대 배경과 인물들의 정서를 표현해낸 무대·의상 등 각 구성의 레이어드를 촘촘히 쌓아 올렸다. 이를 통해 완성도 높은 초연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2월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사진 오디컴퍼니(주)) |
신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가 오는 27일부터 새롭게 관객을 찾는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 ‘키키’가 자신의 병을 인지하고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성격장애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잘 인지하거나 발견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경계성 인격장애’ 혹은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불리는 성격장애는 그 정도가 다를 뿐,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직접 겪거나 주변에서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키키는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완전히 치료되지는 못한다 해도 자신을 맞닥뜨리고 이해하고, 조금 더 사랑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과정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에는 각 캐릭터의 세대와 성별을 규정하지 않고 6개 배역에 나누어 출연한다. 키키 외 모든 역할은 이야기 속에서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서른 개가 넘는 역할을 유연하게 연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키키 역에는 이수정, 이휘종이 출연하며 키키 부모 역할인 ‘베스’ 역은 김수정, 남경주가 맡는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솔직하고 밀도 높은 연출과 스토리로 관객과 평단에게 동시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올린 제작진이 다시 뭉친 극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뮤지컬 분야에 선정되어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성을 검증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1월27일부터 2월25일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 CKL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사진 공연제작소 작작)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3호(24.1.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