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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기 '과도한 집회 금지'…사법부의 역할은 어땠나 [법원 앞 카페]

기사입력 2024-01-14 09:00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노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경우 신청인의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

지난 9월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심야 노숙집회를 금지한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밝힌 이유입니다. 지난 11월에도 디엘이앤씨(DL E&C) 산재사망대책위원회가 낸 심야 노숙집회 신청을 경찰이 불허하자 역시 법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지난해 경찰이 심야시간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방침을 정하자 이를 문제 삼는 법원의 판단이 계속 나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행정부의 집회 금지 방침에 사법부가 제동을 거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확산되자 당시 행정부의 적극적인 집회 금지를 사법부도 인정했기 때문이죠.

최근 당시의 코로나19 감염사태와 집회·시위 금지,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두고 사법부 내에서 사법부의 역할을 성찰하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코로나 초창기엔 법원도 수긍

사법정책연구원은 지난 9일 발표한 ‘감염병 예방을 위한 집회 및 시위 금지 제한에 관한 연구’ (송현정 연구위원)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당시 집회 금지와 법원의 판단을 분석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 서울시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광복절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집회금지 장소인 광화문광장 건너편에 경찰이 대기하...
↑ 지난 2020년 8월 서울시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광복절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집회금지 장소인 광화문광장 건너편에 경찰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지난 2020년 코로나19 감염이 본격 확산되면서 정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도 집회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 시작했죠.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전면 침해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라는 중대한 사회적 문제가 앞선 결과였습니다.

이에 경찰과 지자체 등은 각각 다음 법령을 근거로 집회 금지 처분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시법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감염병예방법

질병관리청장,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모든 조치를 하거나 그에 필요한 일부 조치를 하여야 하며, 보건복지부장관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제2호, 제2호의2부터 제2호의4까지, 제12호 및 제12호의2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

- 흥행, 집회, 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

2020년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던 시기에는 사법부도 행정부의 판단을 대부분 인정했습니다. 당시 집회 주최 측이 행정부의 집회 금지 처분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낼 때마다 대부분 기각했죠. 당시 법원의 판단 근거들은 이랬습니다.

현재 코로나19는 다수의 모임을 통한 집단감염 사례가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고,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지지 아니한 사례의 비중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는바, 재난상황의 심각성과 현황, 사회적 손실 등에 비추어 보면, 현 시점에서도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의 필요성이 감소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 2020. 8. 14. 서울행정법원


당시 집회 금지 처분을 법원이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가 광복절 집회였습니다. 금지 처분이 내려져 법원으로 온 집회가 9건이었는데 법원은 이 중 7건이나 집회 금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사법부의 결정이 일관적이지 않아 논란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2020년 광복절 직전 두 보수단체는 서울 광화문 일대 비슷한 장소에서 똑같이 각각 100명씩 집회를 신고했다가 불허 처분을 받았는데 법원은 한 집회의 경우 허가해줘야 한다고 본 반면 다른 집회는 불허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는 좀 과하다' 제동 걸기 시작한 법원

지난 2020년 '드라이브 스루' 집회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20년 '드라이브 스루' 집회 (사진=연합뉴스)

그러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집회 금지 처분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기 시작한 건 2021년 하반기부터였습니다. 백신 접종이 활발해지고 이른바 ‘위드 코로나’ 상황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무조건 집회를 금지하는 건 권한 남용이라는 판단이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때부터 법원은 코로나19 상황과 집회의 자유 사이 균형을 맞출 ‘조건’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예로 2021년 9월 300명을 신고한 집회가 금지당하자 법원은 금지 처분을 취소하면서 이런 조건을 달았습니다.

이 사건 집회 장소의 현실적인 공간적 제약으로 1.5~2m의 거리두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 인원의 최대 규모는 30명 정도로 보이는 점, 그 밖에 방역수칙 준수 관리의 실효성,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적정한 범위의 행정력의 방역활동, 일반 시민들의 통행로 확보 등을 조화롭게 고려하면, 이 사건 집회의 경우는 최대 참석 인원을 총 30명 한도로 정함이 타당하다.

- 2021. 9. 28. 서울행정법원

집회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이런 조건을 단 경우가 2018년과 2019년에는 한 건도 없었고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에도 4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43건, 2022년에는 42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법원이 적극적으로 집회 시위 금지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연구원은 앞서 이번 연구에서 이런 사법부의 흐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하면서 공연 등 여러 실내활동은 전면 금지 대신 인원 제한 같은 방식으로 허용한 반면 유독 집회만 분별없이 금지한 면이 존재한다”며 집회의 자유와 감염병 예방이라는 공익 사이에 균형을 갖췄다는 겁니다.

"집회 전문 재판부 도입해야"

하지만, 연구원은 법원이 조건을 달면서 결정을 내리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집회 금지 처분 관련 소송의 경우 본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미 집회를 할 타이밍이 지나버리면 의미가 없는 만큼 본 소송보다 시급하게 법원 판단을 받는 집행정지 심판이 더 중요하죠. 하지만, 집행정지 심판은 충실히 심리하기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이에 연구원은 집회·시위 전문 재판부 구성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집회 전문 재판부를 만들면 촉박한 집행정지 심판에서도 더 충실한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겁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사실상 종식된 지금도 심야노숙 집회나 대통령실 앞 집회를 둘러싼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원은 또 앞서 본 집시법의 집회 금지 조건에 ‘공중보건에 직접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넣는 것도 제안했습니다. 이미 해외에서도 도입한 방식이라는 이유입니다. 나아가 감염병예방법에 나오는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같은 추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집회 금지 조건을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연구원은 보고서 결론에서 “사법부는 위기상황에서 행정부의 과도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방지하고 행정부의 자의적인 권한 행사에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야 한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

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적용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습니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최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명시해야하고, 그렇지 못한 채 행정부가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죠. 코로나 시국에도, 지금도 통용되는 사법부의 의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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