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십 분이지만 이 한 그릇을 내기 위해 두세 배, 아니 그 이상의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음식들이 있다. 하루 꼬박 육수를 우리고, 국수 반죽을 직접 치대서 자르고, 몇 년 동안 숙성하는 재료에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맛. 조미료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진짜 맛을 찾아서.
내 마음속 맛의 고향, 강남구 ‘고향집’
청국장이란 메뉴는 콤콤한 냄새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구수한 맛에 한번 빠지면 그 중독성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청국장 제대도 한다’는 소리 듣는 논현동 고향집, 이곳은 1980년대부터 줄곧 비슷한 자리를 지키며 운영하는 전통의 노포식당이다. 주 메뉴로 알알이 씹히는 고소한 콩과 큼지막한 두부가 푸짐하게 든, 짜지 않고 진한 청국장은 그야말로 단골각이다.
이곳에서 청국장 먹는 팁은 우선 밥을 나눠 반은 청국장 한두 국자를 푸짐하게 넣고 무생채, 콩나물과 싹싹 비벼 먹는 것이다. 먹는 동안 남은 밥을 온기가 가시지 않은 뚝배기에 넣어 두면 된장 술밥처럼 보글보글 끓여져 청국장 본연의 맛이 쏘옥 배인 죽이 완성된다. 제육보쌈도 인기 메뉴다. 잡내 없이 깔끔하고 촉촉한 식감은 한 수 위다. 함께 나오는 꼬들꼬들한 무말랭이와 싸 먹으면 오도독한 식감이 예술, 한 쌈 하다 보면 눈이 번쩍, 양손이 바빠진다. 가시를 발라낸 황태에 특제 양념 파를 눈송이처럼 올려 숙성한 후에 구워 낸 황태구이는 매콤한 맛에 밥 도둑 인정. 미역국, 청국장, 보쌈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려주는 점심메뉴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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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집’ |
김치찌개의 정석, 서초구 ‘장꼬방 묵은김치찌개전문’
한국인의 소울 푸드 김치찌개. 어떤 김치로 끓였느냐가 관건인데 오랜 시간 잘 숙성된 묵은지로 끓인 찌개는 조미료 없이도 충분히 그 깊은 맛이 우러난다. 장꼬방의 김치찌개가 바로 그런 맛. 전북 진안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로 담근 김치는 별다른 재료 없이도 맛내기가 충분하다. 김치국과 찌개의 중간 정도의 밋밋해 보이지만 국물 맛이 얼큰하고 개운하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찌개지만 담백하고 시원한 스타일. 한 수저 넘길 때마다 손맛 좋은 가족들을 소환하게 되는 추억의 맛이다. 두툼한 계란말이는 찰떡궁합. 더 푸짐하게 먹고 싶다면 초벌로 직화 구운 간장베이스 양념 돼지고기, 장꼬방구이를 추가해보자. 3첩 반상에 배는 부르고, 마음도 꽉 찬다. 포장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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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꼬방 묵은김치찌개전문’ |
칼국수를 골라 먹는 재미, 서초구 ‘앵콜 칼국수’
면을 좋아한다면 앵콜 칼국수는 필수 코스. 손두부집인 백년옥에서 운영해 별관으로 불리기도 하고 미슐랭 빕구르망에서 선정된 적 있는 입소문 난 유명식당이다. 칼국수 한 그릇 제대로 먹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다. 특제 육수를 삶은 국수에 부어주는 옛날 칼국수도 맛있지만, 매콤한 게 당길 때면 얼큰 수제비가 별미. 두툼한 면과 걸쭉한 국물 맛, 푸짐하게 얹어주는 깨와 김가루 고명도 고소하다. 겨울철엔 팥 칼국수, 매생이 칼국수, 들깨 칼국수 등이 인기다. 취향에 따라, 계절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면의 종류도 칼국수와 수제비, 칼제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피가 두툼해 투박하지만 속이 꽉 찬 왕만두를 함께 곁들이면 더욱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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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콜 칼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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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최유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3호(24.1.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