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보살피는 금강송 테라피
왕의 나무 아래 먹고 자고 쉬다
‘울진의 오지’ 금강송면에 위치한 금강송 에코리움
“꼬불꼬불한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울진의 오지’ 금강송면에는 조선 왕실이 철저하게 보존해온 금강송 숲이 있다. 철도가 닿았던 태백이나 봉화에 비해 지금도 교통이 어려운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도 숲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곳. 수령 200년이 넘은 소나무숲 아래 1박 2일 동안 머무르며 웰니스 여행을 경험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안정과 치유가 있는 여행이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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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소나무 숲 |
웰니스(wellness)란? ‘웰빙(well-being)’에 ‘행복(happiness)’과 ‘건강(fitness)’을 합친 용어로, 웰빙에 ‘활기’, ‘적극적인 건강 지향’의 개념을 더한 단어다.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더욱 각광받았다. ‘웰니스 관광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관광과 달리 건강한 일반인이 여행을 통해 온천·명상·요가·건강식 등을 경험하며 정신적·사회적·신체적인 건강의 조화를 이루는 데 목적을 둔 관광을 말한다.’(출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경북 지역 가운데 울진, 영주, 영양, 영덕, 봉화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로 선정됐다.
일상의 소란을 멈추게 하는 금강송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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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송 에코리움 치유센터 |
숙소는 ‘이 길 맞나?’ 싶게 똬리를 튼 숲속 좁은 길을 굽이굽이 달린 끝에 나왔다. 본관 격인 치유센터로 들어서면 사계절 푸른 실내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층까지 줄기가 뻗어 올라간 녹색 잎사귀가 일단 눈을 쉬게 한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에 선정된 금강송 에코리움(Eco(생태)+Rium(건물))은 세계 최대 금강송 군락지인 금강송면 소광리에 2019년 문을 연 체류형 산림휴양시설이다.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닌, 금강소나무 숲 자체를 천천히 오롯이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쉼과 회복을 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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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인 수련동으로 가는 길은 차 없이 걸어 올라가야 한다. |
‘금강송 숲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침부터 밤까지 온전한 하루를 울창한 숲에서 보내야 합니다.’(안내문구 中)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소나무로 마감한 실내에 놓인 매트리스에 누워 본다. TV도, 컴퓨터도 없다. 취사, 흡연과 음주도 안 된다. 차 없이, 숙소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것부터가 수련의 일부로 느껴진다. 일회용 칫솔, 치약도 없고 수건은 한 장만 제공된다. ‘몸의 압력이 골고루 분산되는 한식 침구가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안내사항 때문인지, 온돌 위에 깔린 이불 위에 눕자마자 눈이 감긴다.
에코리움 리조트의 ‘리;버스(Re;Birth) 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노르딕 워킹, 차훈 명상, 자연 향수 만들기 외에도 1박2일 동안 금강송 테마전시관, 치유센터, 수련동, 금강송 숲길, 유르트(yurt: 둥근 천막), 스파, 황토찜질방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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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금강송 에코리움 본관 건물, 유르트(몽골식 원형 천막), 황토찜질방 |
숲길 끝에 유르트와 찜질방이 보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이차 한 잔을 마신다. 유르트 지붕을 통해 행운이 깃든다고 믿은 몽골 키르기스인들처럼 팔각형의 창으로 들어오는 기(氣)를 느껴본다. 웰니스 첫 날은 황토 찜질과 스파로 체내 독소를 빼고, 유르트의 지붕 천창으로 좋은 기운을 받아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차의 열기로 몸의 독소를 빼내다
“자, 모두 화장을 지우고 오세요!” 애써 화장을 하고 출발했건만 처음 만난 이들 앞에서 갑자기 민낯이라니. 차의 훈기가 올라오는 그릇에 얼굴을 묻은 채 명상용 수건을 뒤집어 쓰고 열기를 가두는 ‘차훈 명상’ 시간이다. ‘차훈(茶熏)’이란 찻잎의 훈기로 진행하는 명상 방법. “수천 년 전부터 중국 곤륜산 자락에서 신선도를 수련하던 수행자들이 불로장생을 추구하며 몸을 연마하던 수련 방법을 현대인에게 맞게 재정립한 양생 수련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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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의 훈기로 명상하는 ‘차훈명상’ |
명상 테라피스트는 찻잎이 잔으로 떨어지는 소리, 찻잎을 손으로 비빌 때 손바닥을 긁는 느낌, 열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얼굴 크기에 맞게 특수 제작된 다완(찻사발) 위로 말린 찻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몽돌 해변의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쌀 씻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핸드폰을 보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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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훈 명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본다. 테라피스트의 설명에 따라 다시 따뜻한 찻잔을 손바닥, 눈, 가슴에 대본다. “코는 폐, 눈은 간, 목은 갑상선, 귀는 심장, 콩팥과 연결돼 있습니다. 그간 미뤄뒀던 내 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마지막 순서로 자신의 몸과 교감한 찻물을 마시거나 얼굴에 발라본다.
“평생 농사만 지었는데, 오늘 친구들과 이런 명상을 해보니까 내가 굉장히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70대 주부) “엄마 아빠랑 같이 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7세 어린이) 그간 아무렇게나 내버려뒀던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 감싸 안아 보는 경험을 하고 나온 참가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보름달처럼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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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훈명상 도구(좌), 금강소나무 솔잎가루 비누 만들기를 통한 자연 향 테라피(우) |
“금강송 솔잎가루가 들어간 오가닉 비누를 만들고, 요가 체험실에 앉아 사시사철 푸른 금강송을 바라본다. 다완에 찻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찻잎의 훈기로 몸 안의 차고 탁한 기운을 정화시켜 본다.”
선베드에 누워 금강송의 사계절을 느끼다
리조트 내에 있는 금강송테마전시관에서는 금강소나무의 역사와 함께 4D 스크린 영상으로 금강송을 만나볼 수 있다. 해변을 연상시키는 공간에 놓인 선베드에 누워 벽면 가득 펼쳐지는 금강송의 사계절을 감상한다. 꽃잎이 휘날리는 봄을 지나 물고기가 노니는 계곡을 비추는 여름의 금강송. 몽환적인 소나무숲 사이로 나타난 산양이 안개 사이에서 풀을 뜯고, 겨울이 되어 눈 덮인 숲속을 금강송은 꼿꼿하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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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으로 보는 금강송 |
시공간이 휘어진 숲 속에서 금강송이 빽빽하게 서 있는 숲속에 누워 있는 느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개설되며 백 년 이상 된 금강소나무 숲들이 사라진 봉화나 태백에 비해 금강송 에코리움이 있는 소광리는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해 숲이 잘 보존됐다는 것이 해설사의 말이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의 뮤즈는 소나무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도 금강송이 등장한다. 소박한 집 한 채 너머 곧게 서 있는 소나무에 기대 있는 노송(老松). 후대 제자들을 바라보는 스승 김정희의 마음이었을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은 일본의 국보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도 금강송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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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송을 벨 때도 산신의허락을 구하는 벌목 고유제를 지냈다. |
금강산에서 유래해 태백 지역과 울진, 봉화, 영덕 등 영동 지방에서 곧은 줄기로 자라나는 금강소나무는 한국에서만 자생한다. 거북선을 만들 정도로 재질이 강해 ‘강송’, 나무의 속이 짙은 갈색이라 ‘황장목’, 집산지인 봉화군 춘양면의 이름을 따서 ‘춘양목’으로도 불렸다. 조선 왕실이 ‘산지기’까지 두며 금강송을 보호한 이유는 결이 곱고 단단하여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궁궐 건축과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기 때문. 큰 규모의 궁궐을 지탱하기 위해선 곧고 튼튼하며 뒤틀림이 없는 금강송이 필요했으리라.
금강송은 단면을 잘랐을 때 안쪽에 보이는 심재가 넓고 나이테가 선명하다. “일반 적송(육송)보다 줄기가 좀 더 붉으며 곧고 길게 자랍니다. 단단하고 결이 고와 관재나 고급 건축재 등으로 쓰이죠.” 해설사는 왕의 생전에는 궁궐로, 사후에는 재궁으로 쓰임을 다했던 금강송은 현재도 문화재 복원에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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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재궁(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도 금강송을 썼다. |
소나무 계의 다이아몬드, 금강소나무 트레킹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오전 10~12시 숲길 트레킹에 나섰다. 소나무 가지 사이 걸려 있는 아침 햇살, 하늘로 쭉 뻗은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푸른 하늘. 멀리서 보면 녹슨 것처럼 보여서 애국가 속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금강소나무의 겉피가 눈에 띈다. 일제에 수탈되어 텅 빈 산을 채워준 리기다 소나무, 솔잎이 2장씩 모여 나는 이엽송도 객들을 맞는다. ‘야생동물이 출현하므로 지정된 트레킹 코스만 이용하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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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리움 리조트 내에 금강송 숲길 트레킹 코스가 있다. |
금강송 테마전시관에서 출발, 10여 분 걸었을까, 숲 사이로 수련 데크가 나타난다. 숲길 해설사는 데크에 앉아 눈을 감아보라고 말한다. 폐 속 깊이 8만 그루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가득 들어온다. 대한민국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로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진 금강소나무숲은 다른 수종보다 공기 중에 더 많은 피톤치드를 배출한다.
통유리 바깥으로 금강송이 바라다보이는 치유센터 테이블에 앉아 저염 건강식으로 조식을 먹었다. 어제 만들어둔 금강송 비누를 들고 숙소를 나온다. ‘스트레스가 많다’는 처방에 맞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향통차도 처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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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소나무 숲길 트레킹에서 만난 금강송 |
편의점과 와이파이도 없이 걸어 다녀야 하는 이곳의 불편한 휴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약 피케팅’을 부를 만큼 인기를 불러모으는 원인이었다. 그만큼 디톡스가 필요한 현대인들이 많다는 반증일까. 밤에는 별을 보며 잠들고, 아침에는 소나무를 보며 깨는 이곳. 숲길을 걷다 보면 또 금강소나무들이 맞아주겠지. 훼손되지 않은 소나무 가지를 벌린 채로.
Info
금강송 에코리움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십이령로 552(소광리 293-3)
※ 영주터미널과 울진/분천역에서 금강송 에코리움까지 프라이빗 픽업 샌딩(유료) 서
비스를 진행한다. 최근 동서울 터미널에서 금강송 에코리움 근처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하루 4번 운행하는 버스가 개설됐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 덕거리 정류소까지 3시간 30분 소요(금강송 에코리움은 1월 한 달간 휴장 예정이므로 문의 후 방문할 것).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박찬은, 경북문화관광공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