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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중국] 열하(熱河)까지 가 청 황제 알현…내년엔 서울서 한중 정상회담 개최되길

기사입력 2023-10-23 09:00

10월 초순 베이징 북동쪽에 위치한 청더(承德)를 가는 길. 비가 그치고 난 청더의 하늘은 너무나 깨끗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청더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덕(德)을 이어받는(承)다는 뜻이다. 캉시띠(康熙帝)의 아들 용정띠(雍正帝)가 아버지의 덕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기존의 르어허(熱河)에서 지명을 바꿨다고 한다.

청더는 비수산좡(避暑山莊)으로 유명하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황제들은 여름이면 자신들의 고향보다 무더운 베이징을 떠나 이곳 청더에서 집무를 보곤 했는데, 그러다 캉시띠가 아예 황실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바로 비수산좡이다. 캉시띠에 이어 아들 용정띠를 지나 손자 치엔롱띠(乾隆帝)에 완성됐는데,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넓이다.

고속철도역에서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곳이 청더임을 알리는 고풍스러운 누각이 서 있다. / 사진 = MBN 촬영
↑ 고속철도역에서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곳이 청더임을 알리는 고풍스러운 누각이 서 있다. / 사진 = MBN 촬영


청나라 황실 여름 별궁 속 르어허…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곳


작은 유람선 수십 척이 동시에 다닐 만큼 큰 호수를 중심으로 이뤄진 비수산좡에서 한국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르어허(熱河)다. 이 역시 말 그대로 뜨거운 하천이라는 뜻인데, 이곳 주변만 유독 겨울에도 다른 곳보다 물의 온도가 높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여느 연못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르어허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선 한국 사람이라면 왠지 증명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연암의 가 바로 이곳 지명에서 나온 것이다. 주변보다 수온에 높아서 겨울에도 따뜻함을 유지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 사진 = MBN 촬영
↑ 연암의 <열하일기>가 바로 이곳 지명에서 나온 것이다. 주변보다 수온에 높아서 겨울에도 따뜻함을 유지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 사진 = MBN 촬영


청 황제 생일 축하 사절단…황제가 베이징에 없자 다시 청더로


설렁설렁 둘러봐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이곳을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250년 전에 나보다 먼저 여행을 왔다. 우리는 열하일기로 인해 운치 있는 기행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사실 연암 일행이 청더를 찾은 이유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정조 4년인 1780년 팔촌 형 금성위 박명원을 따라 치엔롱띠의 칠순 잔치 사절로 청나라에 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연암 일행은 1780년 6월 24일 압록강 국경을 건넌 뒤 중국 동북지방을 지나 베이징에 도착했는데, 와서 보니 황제는 베이징을 떠나 여름 별궁인 청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청나라 황실은 만주가 고향이다. 베이징의 더위가 참기 힘들었는지 청더에 이런 황실 공원을 만들어놓고 여름마다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 사진 = MBN 촬영
↑ 청나라 황실은 만주가 고향이다. 베이징의 더위가 참기 힘들었는지 청더에 이런 황실 공원을 만들어놓고 여름마다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 사진 = MBN 촬영


주인이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냥 선물이나 놓고 안부 전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었겠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당시 하늘 아래 최고 권력자인 청나라 황제 아닌가. 조선의 사절단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시 청더로 가서 치엔롱띠를 알현한 뒤 8월 20일 베이징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에 기자가 베이징에서 청더를 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휴대폰으로 고속철도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탄 게 전부이다. 열차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아 짐을 올려놓고 앉아서 한숨 돌리고 나니 청더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불과 52분밖에 걸리질 않았다.

하지만, 250년 전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여름에 행낭을 지고 산 넘고 물 건너 걷고 또 걸어서 베이징에 왔더니 만나려는 황제가 없어 다시 청더로 가야 하는 건 그야말로 고행길, 수난길 이었을 터. 그 긴 기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생생하게 기록에 남긴 연암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뿐이다. 물론 연암은 조선의 공식 사절단 일행은 아니었고, 형의 배려로 동행했기 때문에 이런 견문록 작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결속…한반도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외교전


지금의 대한민국 외교는 한미일 동맹이 핵심이다. 그러는 사이 이웃 나라이자 최대 교역국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단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 여부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최고 통치자에 오른 직후인 2014년 7월 국빈 방한을 마지막으로 9년째 우리나라를 찾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우리나라 대통령은 모두 5번이나 중국을 찾았다고 한다. 단순 셈법으로도 우리가 좀 손해 보는 느낌이다.

비수산좡의 한가로운 풍경.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쟁취하려는 국제사회 외교는 이렇게 한가로울 틈이 없다. / 사진 = MBN 촬영
↑ 비수산좡의 한가로운 풍경.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쟁취하려는 국제사회 외교는 이렇게 한가로울 틈이 없다. / 사진 = MBN 촬영


얼마 전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진행된 2023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재호 주중대사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을 묻는 감사위원들의 질문에 “내년 중에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답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방중에 앞선 시 주석의 방한이 돼야 할 것이다. 정재호 대사도 ”저희는 시 주석이 먼저 방한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시 주석은 지난달 23일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방중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시 주석의 우선 방한’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중국 측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일단 중국 권력서열 2위인 리창 총리가 참석하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올해 안에 개최를 목표로 일정을 조율 중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내년엔 한중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길 기대해 본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며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비수산좡의 풍경. / 사진 = MBN 촬영
↑ 가을이 점점 깊어지며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비수산좡의 풍경. / 사진 = MBN 촬영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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