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인 ‘이사라’ 역을 맡은 배우 김히어라가 학창 시절 학폭 가해자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사진=넷플릭스 제공 |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의 가해자 역할을 맡은 배우 김히어라가 중학교 재학 당시 실제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김 씨는 “모범생으로 살진 않았다. 놀았던 건 맞다”면서도 “방관자로 살았던 것 같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악명 높은 일진 모임의 멤버였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불량 써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점, 학교폭력 의혹을 가장 처음 제보한 제보자가 입장을 선회한 점 등을 놓고 사건은 점차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는 건 스포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 프로배구 간판스타였던 이재영·다영 자매는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지며 소속팀에서 방출된 바 있습니다. 그 여파로 아직도 국내 코트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해외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KBO 최고 투수로 올라선 안우진은 뛰어난 기량에도 과거 휘문고 시절 학교폭력 가해 이력으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출전이 가로막히는 등 태극마크를 박탈당하고,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들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투수 안우진이 학폭 논란으로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것을 두고 선배인 추신수는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국민 정서를 언급했다가 되레 팬들의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 학창 시절 폭력(학폭) 가해 논란에 휩싸인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지난 2021년 10월 16일 오후 그리스 리그 PAOK 테살로니키 구단에 합류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출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이처럼 우리나라는 유독 학교 폭력에 대해 엄격한 사회적 잣대가 적용됩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교폭력에 유독 엄격한 한국 사회에 대해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측면이 내재되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임 교수는 “학교폭력에 대한 정부나 사회의 법적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어 “학교란 사회를 출발하는 곳이자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아야 할 곳이지만 부모 세대들은 그렇지 못한 경험을 했다”며 “(자녀가) 성취지향적이고 경쟁적인 사회 속 삐끗하면 안 되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치열한 무한경쟁 환경’,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켰다는 전문가의 분석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학폭을 바라보는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과거 집단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일선 학교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건 다행인 일입니다.
↑ 사진=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 캡처 |
다만, 학교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거나, 혈기왕성한 청소년 시절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학창 시절 단 한 번의 실수가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족쇄를 채우는 건 지나치게 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는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학창 시절, 학교 폭력 같은 잘못은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아닌지 챗GPT에 물어봤습니다.
챗GPT는 “학교폭력은 언제나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챗GPT는 “학창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장과 성숙함의 과정을 거치며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단순한 ‘잘못’이 아닌, 다른 학생에게 심리적이거나 신체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잘못’을 넘어서 ‘범죄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챗GPT는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정신적, 감정적, 물리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피해자는 평생 동안 그 영향을 겪을 수 있다”며 “(가해자는)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그 행동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사람의 평판과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실수와 행동이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라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서 배움을 얻고 성숙함을 향해 나아가며 지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며 자정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챗GPT는 지속된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예방’과 ‘조치’를 당부했습니다. “학교와 사회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지원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며 “모든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 / 사진=연합뉴스 |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볍지 않습니다.
지난 12일 푸른나무재단이 발표한 ‘2023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 10명 중 4명가량이 자살과 자해 충동을 경험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전국 초·중·고생 7,2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전체 학생의 7.0%가 학교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피해 학생 39.2%는 학교폭력에 대해 ‘고통스러웠다’고 밝혔고, 10.7%는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33.8%는 자살과 자해 충동을 느꼈다고 집계됐는데 지난 2021년 조사 대비 12.0% 상승한 수치입니다.
피해 학생들은 ‘가해 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18.2%)와 ‘피해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14.7%), ‘서로의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14.5%) 등을 피해 극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꼽았습니다.
↑ 대입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서울 양천구 목동종로학원에서 자습을 하고있다. / 사진=매일경제 DB |
정부는 올해 4월 관계부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하며 학교폭력 처벌 강화에 힘을 모았습니다.
이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대상이 되는 2026학년도부터 학교폭력 조치 사항이 전문대를 비롯한 모든 대입 전형에 의무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대학들은 학교폭력 가해 이력이 있는 수험생에 대해 지원자격을 제한하거나 조치사항별로 점수를 차등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학교폭력 가해 기록이 대입을 넘어 취업에도 영향 미칠 수 있도록 생활기록부 보존 기한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학교 폭력를 엄격히 다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해자에 대한 단죄라는 처벌적인 관점에 매몰돼 학폭 논란이 어떠한 문제 제기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과거 폭력과 주먹다짐 위주의 학교 폭력이 최근 언어 폭력이나 따돌림 등의 사이버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일방적인 폭로들 가운데 거짓 주장이 있을 경우 가해자로 지목당한 당사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