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취재 백블] 코너에서 자세하게 풀어드립니다.
"전체 30학급 중에 선생님 4분 나오셨어요. 아침에 와보니 다 병가내셨어요. 비상 상황이죠."
9월 4일, 이른바 '공교육 멈춤의 날' 아침.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분에게 상황을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이 등교는 했지만 수업과 활동이 불가능해 교실마다 동영상을 틀어놓고, 출근한 소수 교사와 교감·교장, 행정실 직원들이 그저 아이들이 안전한지만 둘러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맨 처음 한 선생님이 이 날을 제안하실 때만 해도 교사들도, 교육부도, 누구도 이런 풍경이 될 거라고 예상치 못했을 겁니다.
↑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 단상에 국화 대신 카네이션이 놓여있다. |
8월말~9월초 열흘 동안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에 3차례 전달된 공문 속 하나의 메세지. "집단행동하지 말라, 징계하겠다"
정부는 공문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 장·차관은 수차례 "수업을 중단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그 대상에는 연·병가를 내는 교사와 그걸 결재해주는 교장, 용인해주는 교육감까지 포함했습니다.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에 추모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슬프고 힘들어 병가를 내는 건 위법"(교육부 관계자)이라고도 했습니다.
교육부의 거듭되는 경고에 재량휴업을 검토했던 학교는 논의를 멈췄고, 9월 4일 국회 앞 집회는 일단 취소됐으며, '징계'라는 무게감 앞에서 교사들도 술렁였습니다.
그 사이 서울 양천구와 전북 군산에서 교사가 또 숨졌습니다. 알려진 이유는 비슷했습니다. 시스템상 '을'의 처지에 놓여 '교육자'라는 본질이 사라져버린 현실. 처음 서이초 사건에 전국의 교사들이 강한 동질감을 느끼며 주말마다 폭염 집회를 불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사들은 교육부의 경고를 협박과 탄압으로 받아들였고, 거센 반발 분위기는 49재를 이틀 앞두고 전국 교사의 절반이 국회 앞에 집결하는 모습으로 표출됐습니다.
교사들의 분노뿐 아니라 국민 공감대가 확인된 자리. 이 자리를 기점으로 교육부 태도가 180도 바꼈습니다. 3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호소'는 다음날 '눈물'로, 결국은 '징계 철회'로 끝났습니다.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임시 봉합입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교육계 곳곳의 촘촘한 갈등이 확인됐습니다. 진보와 보수, 교사와 관리자(교장·교감), 정부와 교원단체. 교육부의 오판이 사태를 키웠다고 탓하는 게 아닙니다. 확인된 갈등을 꿰매는 일, 이제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 4일 서울 서이초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추모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한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에서 '9월 4일 재량휴업일 지정 찬반' 설문을 하자 이런 글을 학부모 소통 공간에 올렸습니다.
"교원들이 학생들을 방치하고 집회에 참석한다고 하네요. 학생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선생들한테 선생님이라고 존경하라고 해야 하나요? (4일 연·병가 교사) 명단이 공개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학생 방치..라는 말은 이 글 첫 줄에 언급된, 4일 아침에 통화한 경기도 모 초교 관계자 발언에서도 나왔습니다. "차라리 재량휴업을 했더라면 학생들이 이렇게 방치되진 않았을텐데" 라고요. 쓰임은 달랐지만 비슷한 차원에서 위 학부모의 말에 공감하는 분도 일견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고 등교한 학생들의 학습권이 당일에 보장되지 않은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가 하루 멈춰 선 현상보다 지금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공동체가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하루 숨 고르기라면, 사회 구성원으로서(특히 교육 3주체로서) 그 정도는 양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 4일 휴업 교사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학부모 글과(좌) 공교육 멈춤의 날을 지지한다는 학부모 글(우). |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단 주장에 공감해 9월 4일 가정체험을 택했다는 다른 학부모는 이런 호소를 했습니다. "작년에 저희 아이도 수시로 욕하고 주먹질하는 한 명 때문에 피해를 본 게 이만저만 아니었거든요. 선생님이 제재를 못하시니까 결국 반 전체가 피해를 입더라고요. 다 그 애 눈치만 봐요."
교권 강화는 교사 개인의 영달 문제가 아닙니다. 초등 6년과 중등 3년, 도합 9년의 의무교육에 고등 3년까지, 검정고시 등을 제외하면 보통은 성인이 되기 전 12명의 담임교사를 만납니다. 학교란 공간에서 아이들은 사회를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교사 1명이 수십 명 아이들의 교육자이자 중재자이자 멘토 역할을 합니다. 선생님이 문제 행동을 막지 못해서 끌려다니면, 피해는 다른 아이들에게 돌아옵니다.
명단 공개를 요구한 학부모가 꼭 교사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지 않더라도, 교권 침해 현장에 노출된 자녀의 학부모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공교육 멈춤의 날이란 '취지'에는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입니다.
물론 교사들의 절박함을 십분 이해해도 평일 수업에 지장을 주는 '방법론'을 두고 찬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4일 후폭풍의 일부는 교권 강화에 지지하며 체험학습 등을 신청한 수많은 학부모들과 어쨌든 현장에 남은 학교 관계자들이 나눠서 감당한 사실을 선생님들이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봅니다. 그리하여 재차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기를, 사회의 안녕을 바라는 시민으로서 바라봅니다.
이제는 국회가 교권 보호 법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9월 4일 다난한 하루를 거쳐 여러 갈래로 표출된 갈등을 교육적으로 봉합하는 일은 결국, 어른들의 몫입니다. 그 어른들이 떠올려야 할 진리는 역시, 역지사지일 것입니다.
↑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교권 보호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교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