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 사진=연합뉴스 |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생전 특정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교권 침해를 당한 기록이 오늘(9일) 공개됐습니다.
고인이 된 교사 A씨는 지난 7월 실시한 초등교사노조의 교권 침해 사례 모집에 자신의 사례를 직접 작성해서 제보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글에는 고인이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당시 반 학생 중 4명의 학생이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고 같은 반 학생을 지속해서 괴롭힌 정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특히 교사 A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B 학생의 경우,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의 목을 팔로 졸라서 생활 지도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B 학생이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쳐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을 안 하고 버티거나, 친구를 발로 차거나 꼬집기도 했습니다. 4월에는 B 학생 학부모와 상담했지만 부모는 "학급 아이들과 정한 규칙이 과한 것일 뿐 누구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선생님이 1학년을 맡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조용히 혼을 내든지 문자로 알려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B 학생이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은 계속됐습니다.
급기야 2학기부터는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는 행동이 이어지자 A씨는 B 학생을 교장 선생님에게 지도를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B 학생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A씨는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A씨는 학부모에게 학생에게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 했을 뿐 마음의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해당 학부모는 12월 2일 국민신문고와 경찰서에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교육청 장학사의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폭위에서는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처분을 받으라는 1호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아동학대 조사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 해당 사안을 '정서학대'로 판단해 사건이 경찰서로 넘어가고,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A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아동학대 조사 기관은 교육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며 조사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교권 상담 신청도 했는데 신청 내용에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할지 몰라서 메일 드렸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A씨는 제출한 글에서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떠올라 계속 울기만 했다"며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내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말미에는 "서이초 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A씨는 글을 쓴 지 약 한 달 반 뒤인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전교사노조 측은 이 사건과 관련해 "시교육청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며 "A씨가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A 씨를 상대로 악성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들의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시교육청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박지윤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bakjy7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