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미 앨라배마에서 발생한 백인 소녀 피살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흑인 남성 월터 맥밀란. 무료 변론으로 무죄판결을 이끌어 내 그의 억울함을 풀어준 건,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의 헌신과 직업적 열정이었습니다.
뜻밖의 사건이나 송사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나 검사·판사가 이렇게 모두 제 일처럼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죠.
무엇보다 일각이 여삼추 같을 사건 당사자들은 빨리 재판을 끝내고 일상을 회복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법부는 이런 국민 마음을 모르나 봅니다.
전국 법원의 민사 1심 사건 중, 2년 안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은, 2017년 5천여 건에서 지난해 만 4천4백여 건으로 무려 3배가 됐거든요. 이 기간 형사 1심 장기 미제 사건도 2배가 됐죠.
사건이 크게 늘었거나 다른 불가피한 요인이 있었나? 아니었습니다. 되레 법원에 들어온 민사 1심은 코로나 영향 등으로 2017년 35만 3천5백 건에서 지난해 34만 3천 건으로 줄었습니다.
비판 여론에, 서울중앙지법이 재판 지연이 심각한 기업 전담 재판부 4곳에 '장기 미제 중점 처리 법관' 2명을 추가 배치했는데, 그동안 뭘 하다가 대법원장 임기 만료 달랑 한 달을 남기고 이제서야 법관을 추가 배치한 걸까요?
게다가 판사 3명이 재판하는 합의부 4곳에 2명을 배치해봤자 결국 3명이 하던 걸 3.5명이 하는 꼴이죠?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사실 재판 지연 논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래 판사들이 법원장을 추천하게 하다 보니 윗 판사들이 아래 판사들 눈치 보느라 일을 빨리하라고 재촉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판사들 사이에선 '1주일에 3건만 재판하자'는 짬짜미까지 자리를 잡았다니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 제3항은 판사가 아닌 국민이나 기억하게 생겼습니다.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때로 정의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소송이 길어져 지연이자 폭탄을 떠안고, 이혼 판결이 늦어져 원치 않는 상대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민초들은 놔둔 채 일신의 워라밸을 쫓겠다고요.
정의를 구현하는 게 아니라 질질 끄는 그들, 그러니 그 판결 결과까지 신뢰를 못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금방 할 수 있는 걸 왜 이제서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