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연상시키는 이 책에서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린다 콜리 교수는 헌법이 근대 세계를 탄생시켰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 린다 콜리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펴냄 |
법은 국가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다. 중동 메소포타미아 통치자 함무라비의 법전을 새긴 석판은 기원전 1750년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도 기원전 7세기 정부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고대 문헌은 단일 인물의 작품이었다. 권력자에게 제약을 가하거나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행동 수칙 제시와 처벌에 치중했다.
1755년 코르시카는 선구적 헌법을 제정했다. 이 시기 섬에 도착한 파르칼레 파올리는 나폴리로 강제 추방된 반군 지도자의 아들이었다. 고향으로 귀환 당시 30대의 진급 가망이 희박한 군인이었지만, 군사적 기량이 뛰어났던 그는 코르시카에서 반군 총사령관에 선출됐다. 11월 요새 도시 코르테에서 그는 이탈리아어로 10쪽의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코르시카의 적법한 주인으로서 국민의 의회가 소집되었다”고 선언한 조각난 말 속에는 급진적인 정치적 변혁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 종이는 파올리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했다. 정치 군사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3개 기구로 구성된 국가평의회 의장에 올랐다.
1766년부터 법에 따라 25세 이상 남성들은 의원 선거 출마·투표 자격을 부여받았다. 18세기 세계의 어느 곳보다 폭넓은 민주주의가 이 섬에 안착한 것이다. 성문 헌법의 부상은 1776년 미국 독립 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도화선이 됐다. 18세기는 가히 폭력과 전쟁의 시대였다. 봉기와 혁명이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공화주의의 부상 및 군주제의 쇠퇴가 이뤄졌고, 국가를 지탱한 요새가 필요했다. 전쟁이 촉발한 위기로부터 정권들은 정부 질서의 재정비를 위한 수단으로 헌법을 사용했다.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 모으고 재정적·인적 수요를 정당화하는 문서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독일에서 군사 훈련의 확대 필요성이 어떻게 불가피하게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왔는지 강의했다. 그에 따르면 한 국가의 남성들은 세금과 징병을 수락한 대가로 선거권 부여 등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병역을 의무화함과 동시에 성인 남성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도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건 여성이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성문 헌법이 사고와 문화적 관행에도 영향을 끼쳤음에 주목한다. 인쇄술의 발전도 영향을 끼쳤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초안이 작성된 미국 헌법을 세상 물정에 밝은 출판업자들이 앞다퉈 출간하고, 다른 여러 국가의 헌법과 묶어 발행하기 시작했다. 인쇄술 덕분에 각국의 헌법은 널리 유포됐고, 헌법 초안 작성가들은 여러 나라의 사상 제도 법률을 연구하고 자신들의 사상, 관습과 결합할 수 있었다. 저자는 “헌법은 오류를 면치 못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창조한 취약한 창조물”이라면서도 “어떤 단일 서적도 이토록 큰 야심을 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 마크 포사이스 지음 / 오수원 옮김 / 비아북 펴냄 |
이 밖에도 수사학에서는 ‘3’의 힘이 강력하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피, 수고, 눈물, 땀 외에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모든 사람이 이 어구를 “피, 땀, 눈물”로 줄여 기억한다. 여기에는 ‘삼항구’라는 수사적 기법의 강력한 힘이 개입되었다.
콜린스 영어사전을 편찬한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포사이스는 위대한 고전, 정치 연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5호(23.9.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