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교야구 꿈의 무대는 '고시엔'입니다. 지난달 열린 고시엔에서는 게이오 고교가 무려 107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현지 언론은 우승 키워드를 '두발 자율화'·'자율훈련'·'문무양도'로 정리했습니다. 머리를 삭발하고 지옥훈련에 주력하며, 학업을 등한시하는 일본 고교 야구 풍토에 정반대의 콘셉트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분석입니다.
법조 소식을 전하는 <서초동에서>를 고시엔 얘기로 시작한 것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때문입니다. 이 후보자는 일본 사학의 명문으로 꼽히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연수를 두 차례나 다녀오며 일본 법관 등과 활발하게 교류한 '지일파'로 꼽힙니다. 게이오대의 학풍은 일본 근대사상의 아버지로 꼽히는 설립자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의 영향을 받아 현실에 기반을 둔 실용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게이오고의 고시엔 우승 비결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후보자 국회 인준을 통과한다면 법원에 산적한 개혁 과제를 직면해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에서 시작한다면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후보자가 경험한 게이오대의 실용적인 학풍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예를 들어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법원장 후보자 추천제'는 쉽게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장이 법원장 인사를 할 때 일선의 추천을 최대한 존중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선의 법관들은 추천제의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겁니다. 보수언론들이 이 제도가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며 취임 뒤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는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지방 법원의 한 판사는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등 관리책임자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분명히 진일보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추천제 폐지를 검토하는 것보다 법원장들에게 사건처리 속도내기와 튀는 판결 방지 등을 개선하는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수단을 쥐여주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균용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보수 버전으로 봐도 된다”
한 지방법원장의 얘기입니다. 법원 구성원 사이에서는 강한 보수 성향 때문에 이 후보자가 김명수 표 개혁을 모두 원점으로 돌리고 양승태 코트 시즌2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헤겔식으로 얘기하면 역사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진보합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