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559호 법정. 이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재판 1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원고에게 6,300만 원, 원고의 모친에게 3,000만 원, 원고의 누나에게 1,300만 원을 국가가 배상하라”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송승우 부장판사)의 선고 내용입니다. 원고는 1958년생으로 올해 64살이 된 한일영 씨입니다.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으로 꼽히는 ‘삼청교육대’ 그리고 ‘선감학원’을 모두 겪은 피해자죠. 이번 소송은 이 중 삼청교육대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건데 1심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은 6,300만 원이었습니다.
한 씨의 고난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6학년생 13살이던 1971년이었습니다. 경기도 가평군 집에서 서울 할아버지댁으로 가던 중 경찰관이 와서 한 씨를 끌고 갔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부랑아라고 보고 부랑아 시설로 보내버린 거죠. 한 씨가 끌려간 곳이 바로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있는 경기도 운영 부랑아 수용시설 선감학원이었습니다.
↑ 선감학원 (사진=연합뉴스) |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한 씨를 비롯한 수용 청소년들은 교화라는 명목으로 강제노역과 가혹행위를 끊임없이 당했습니다. 심지어 수용 청소년들 간에도 서로를 감시하고 폭행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정도였죠.
무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갇혀있었던 한 씨는 18세가 된 1976년 썰물 때를 맞춰 바다로 겨우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선감학원 수용 당시 한 씨는 연탄을 이용해 몸에 작은 문신을 하나 새겼습니다. ‘삶’이라는 글자였습니다. 한 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보며 위로를 받아서 새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
아이러니하게도 위로를 받기 위해 새긴 문신이 한 씨에게는 또 한 번의 고난을 불렀습니다. 1980년 8월 당시 계엄포고에 따라 만들어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게 된 겁니다. 선감학원에서 탈출한지 불과 4년, 한 씨의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끌려갈 당시에는 이유조차 듣지 못했지만 훗날 한 씨는 선감학원에서 새긴 ‘삶’이라는 문신 때문에 끌려간 걸로 들었다고 합니다.
↑ 삼청교육대 (사진=연합뉴스) |
경기 연천군 5사단으로 끌려가 이른바 ‘순화교육’이 4주간 진행됐습니다. 역시 견디기 힘든 훈련과 구타 등 가혹행위가 이어졌죠. 그렇게 4주를 버티고 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들어간 대부분 피해자들은 퇴소한 뒤 ‘근로봉사’라는 이름으로 수개월에 걸친 강제노역을 당했고 그 다음에는 ‘보호감호’라는 이름으로 다시 보호소에 수용돼야 했죠.
한 씨는 근로봉사 기간 중 도주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만에 붙잡혔고 무단이탈 혐의가 인정돼 공주교도소에 1년여 동안 수감됐습니다. “삼청교육대로 가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는 한 씨의 말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였습니다.
당시 삼청교육대를 나온 대부분의 사람의 그러했듯 한 씨 역시 사회적 편견 속에 제대로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환갑이 넘은 지난 2020년에야 비로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계엄포고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신체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고 뒤 재판부는 “과거 국가에 의해 헌법질서가 유린되던 암울한 시기에 억울하게 복역한 피고인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이 판결로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시길 희망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 역시 구제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선감학원 피해회복을 위한 공식 사과와 배상, 보상을 위한 특별법 마련을 정부와 경기도에 권고했습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 지난 2022년 10월 2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피해자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선감학원과 삼청교육대 피해와 관련한 배상도 특별법 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 씨가 받은 건 근로봉사 중 도주한 혐의가 인정돼 공주교도소에 1년간 수감된 것이 무죄로 바뀌면서 나온 형사보상금 1억 5,000만 원이 전부였죠.
↑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
한 씨는 결국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 삼청교육대 피해에 대한 배상 소송의 1심 결과가 바로 앞서 언급한 배상금 6,300만 원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앞선 재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계엄포고가 무효이므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삼청교육대 피해’ 배상 1심 선고
정부 측은 한 씨가 출소한 1981년 12월 10일부터 계산하면 형사재판의 공소시효에 해당하는 민사상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한 씨를 삼청교육대 피해자로 인정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결정이 이뤄진 2022년 6월 7일부터 시효가 시작된다고 보고 소멸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한 씨가 청구한 배상액 1억 7,000만 원 중 재판부가 인정한 건 절반도 안 되는 6,300만 원이었습니다. 모친과 누나 몫으로 청구한 액수도 5,000만 원과 2,300만 원이었지만 실제로 인정된 건 각각 3,000만 원과 1,300만 원이었죠. 재판부는 “한 씨가 입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상당한 점과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조직적 관여로 불법행위가 이뤄진 점, 유사한 사건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도 참작해야 하는 점, 피해 당시 한 씨의 나이와 시대적 상황, 오랜 세월이 지나 물가와 통화가치가 크게 변한 점을 종합했다”면서 한 씨가 받아야 할 액수는 2억 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억 원 중 형사보상금으로 받은 1억 5,000만 원을 빼고 이자 성격의 지연손해금 등을 감안해 6,300만 원을 받으면 된다는 겁니다.
↑ 한일영 씨 (사진=연합뉴스) |
한 씨 측은 배상액이 너무 적어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한 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삼청교육대가 4주, 근로봉사 기간이 2달 정도로 대략 3개월 정도니 3개월 치만 가지고 재판부가 계산한 것 같다”면서 “3개월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삼청교육대로 인해 이후 10년 넘게 직업도 제대로 가지지 못했는데 이런 점이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삼청교육대와 근로봉사에 수용된 시기만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평생에 걸쳐 입은 피해도 고려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앞서 다른 삼청교육대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배상액이 적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1981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임 모 씨는 4주 간 순화교육을 받고 이후 근로봉사를 거쳐 2년 넘는 보호감호소 수용까지 당했습니다. 근로봉사 도중 도주한 한 씨에 비해 훨씬 긴 기간 피해를 당했죠. 그럼에도 지난 6월 법원은 임 씨에게 국가가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임 씨 측은 “턱없이 부족한 배상금액”이라며 모욕적인 판결이라고 반발했습니다. 한 씨와 임 씨 모두 항소한 만큼 제대로된 피해 회복을 위한 배상액이 얼마인지는 2심에서 다시 심리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한 씨는 선감학원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국가를 상대로 제기해놓은 상태입니다. 이 재판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죠. 선감학원 아동 인권유린 진실규명추진회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한 씨는 배상액으로 7억 5,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