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이 일상이 된 시대, 젊은 세대의 인기 아이템 구매 행태는 일종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자신의 취향거리를 구매하는 MZ세대, 알파세대의 구매 전술 키워드를 살펴봤다.
↑ (사진 포토파크) |
‘잘파세대 (Zalpha generation)’의 등장
농심 먹태깡, 연세우유빵, 버터맥주, 아사히 생맥주, 점보도시락, 제니 가방…. 언뜻 보면 교집합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상품들의 단 하나 공통점은 바로 입고하자마자 매대에서 빠르게 사라진다는 ‘품절템’이라는 것이다. 요즘 이러한 품절템을 구하기 위해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구매에 나서는 ‘오픈런’과 ‘웨이팅’도 흔한 풍경이 됐다.
오픈런이란 본래 ‘공연이나 연극 등을 폐막 날짜를 정해 놓지 않고 무기한으로 하는 일’(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을 뜻했지만, 오늘날에는 ‘매장이 오픈하면 바로 달려간다’는 뜻의 신조어로 더 넓게 활용된다. 2020년을 전후로 국내 명품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명품 구매를 위해 백화점으로 향하는 구매자들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샤넬의 경우 사전 접수 제도를 통해 입장 순서에 따라 선착순으로 구매할 수 있었고, 이에 백화점 개장 시간 전부터 일찌감치 정문 앞에 대기해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롤렉스,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의 명품 브랜드 역시 오픈 전 대기 현상이 일어나며, 본격적으로 ‘오픈런’이란 단어가 쓰이게 되었다(최근 샤넬은 사전 접수 제도를 폐지했다).
그 밖에도 새로운 시리즈의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스마트폰 판매 매장에 줄을 서거나, 카페의 한정판 사은품을 구매하기 위해, 또는 유명 맛집이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굿즈 같은 서브컬처 신에서도 발매 날짜에 맞춰 매장 앞에서 대기하는 오픈런 행렬이 점차 등장했다. 특히 소비에 익숙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굿즈를 구매하는 데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에겐 오픈런과 웨이팅은 필수적이며, 그들은 구매 과정까지도 하나의 ‘놀이’ 문화로 인식한다. 유행과 트렌드를 빠르게 습득하고, 한정판 상품을 얻는 것에서는 희열감을 느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 포토파크) |
시장에서 볼 법한 빨간 바구니 안에 과일 대신 티셔츠를 담아서 파는 브랜드가 있다. 마치 만물상처럼 트럭(다마스)을 몰고 전국 순회를 다니며, 좌판 위에는 진짜 과일 대신 과일이 그려진 티셔츠를 판매하는 독특한 콘셉트로 화제를 모은 패션 브랜드 ‘김씨네과일’. 플리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관심을 받으며 본격적인 패션 의류 판매를 시작한 이들은 어느덧 팝업스토어까지 열며 화제가 된 브랜드이다. 김씨네과일이 빠르게 주목받은 데는 재미있는 판매법과 이에 열광한 구매자들의 힘이 컸다.
이들은 SNS를 통해 판매 일정 공지를 올리면 트럭을 몰고 예고된 지역에 가서 티셔츠를 판매했다. 셔츠는 별다른 포장 없이 (마치 시장에서 과일을 사듯) 봉투 안에 넣어주기도 하고, 여러 장 구매 시 과일 상자에 티셔츠를 담아준다. 자른 종이상자 위에 매직으로 쓴 ‘자두 자두 졸려(자두 셔츠)’, ‘정신체리세요(체리 셔츠)’ 등의 제품명 역시 재미있다. 판매 일자며, 장소 등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이를 구매하기 위해선 언제 다마스가 뜰지 수시로 SNS를 확인해야만 했다.
↑ 지난 10월 진행된 삼화페인트X김씨네과일 가을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굿즈(사진 삼화페인트공업) |
A씨나 김씨네과일처럼 SNS를 주요 유통 경로로써 적극 활용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브랜드가 신제품 판매 소식과 프로모션 계획 등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SNS를 사용하고, 고객이 ‘팔로잉’하는 순간 고객과 브랜드와의 접점이 생겨난다. 나아가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브랜드라면, 호기심을 넘어 이들은 일종의 ‘덕심’(오타쿠가 변형된 ‘덕후’와 마음 ‘심’의 합성어)으로 정서적 유대를 맺고, 장기적인 관심을 표하거나 기꺼이 구매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해당 전시가 100%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다 보니 오픈런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리움미술관 온라인 예약·예매 사이트’의 경우 매일 18시, 2주 뒤 날짜의 10~17까지 선택이 가능하다(관람일 14일 전부터 가능). 그런데 해당 전시의 경우 예매창 접속과 동시에 대기자들이 몰리며 ‘서비스 접속대기 중’ 팝업창이 뜨거나, 주말, 오후 시간대의 경우 일찌감치 매진이 되는 등 인기 아이돌 콘서트 ‘광클’(빠르게 클릭) 예매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가 진행된 리움미술관(사진 리움미술관)(매경DB) |
↑ 롯데월드몰에 오픈한 런던베이글뮤지엄(사진 롯데백화점)(매경DB) |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람들 사이에선 다중시설 이용을 자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거리 두기를 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타인과 한 장소에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늘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는 답답함과, 안전상의 이유로 ‘사전 예약’과 ‘비대면’ 서비스가 점차 도입되었다. ‘모바일 메신저’가 자기 순번이 되면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네이버는 ‘네이버 예약’이 연동된 곳은 어디서나 바로 예약이 가능하게 서비스 중이며,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 운영사인 와드 등 역시 전문 예약 대행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 (사진 캐치테이블 화면 갈무리) |
↑ 농심 먹태깡(사진 농심) |
편의점 브랜드 CU가 지난해 선보인 ‘연세우유 생크림빵’의 경우 ‘반갈샷’(반을 갈라 단면을 찍어 상품 속 내용물을 인증하는 사진) 열풍을 일으킨 상품이다. 연세우유 생크림빵을 반으로 잘라 빈 곳 없이 꽉 찬 생크림의 단면 사진이 화제가 되며 디저트 업계에서 해시태그 ‘#반갈샷’은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해당 시리즈가 MZ세대 고객들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각종 SNS에서 바이럴되면서 CU의 전체 디저트 매출 또한 크게 신장했다고 알려졌다. 실제 지난해 초 CU가 연세우유 크림빵을 첫선을 보인 이후 한 해 동안 CU의 디저트 매출은 전년 대비 120.6%나 늘어났다.
오픈런이나 웨이팅 자체도 하나의 인증샷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 자신의 SNS에 구매 인증과, 해당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었던 ‘꿀팁’을 함께 소개한다. 웨이팅을 하는 동안 걸리는 시간, 웨이팅 동안 즐길 거리 등 ‘나의 관심사’를 타인과 공유하는 셈. 한 가지 예로, 강남에 오픈한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이용 게시글들을 살펴봤다.
이용객들은 먼저 ‘웨이팅 테이블링’ 이용법을 안내한다. ‘웨이팅이 있는 핫플레이스’ 장소로, 태블릿에 대기 등록을 하면 테이블링을 통해 입장 순번이 정해지며, 대체로 평일 기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사전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이후 카카오톡으로 호출 메시지가 오면 매장 앞에 줄을 서서 입장이 가능하며(일행 전원이 도착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웨이팅 동안에 인기 메뉴 조합을 살펴보는 팁이나, 근처 이용 가능한 숍, 카페 등을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김씨네과일 가게 역시 SNS 후기를 통해 입소문으로 알려진 케이스다. 소형 트럭을 타고 전국 방문 판매를 하는 희소성 있는 상품의 구매 과정을 리뷰하며, ‘인싸템’으로 트렌디함을 인증했다.
↑ 파이브가이즈 강남 내부 모습(사진 매경DB, 송경은 기자) |
‘MZ들의 놀이터’로 꼽히는 더현대 서울. 이곳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중 2023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슬램덩크’를 빼놓을 수 없다. 연초에 개봉한 ‘슬램덩크’ 극장판 애니메이션 상영에 맞춰 더 현대 서울에서 2주간 팝업스토어가 열렸고, 한정판 유니폼, 피규어 등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 첫날에만 약 1,000여 명이 모였다. 이용객 중에는 슬램덩크 만화를 추억하는 30~40대까지 포진해 있어, 다양한 세대들이 모인 걸 알 수 있었다.
↑ 지난 1월,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슬램덩크 팝업스토어 대기줄(사진 매경DB, 이지안 기자) |
↑ GS25 플래그십스토어 ‘Flip Sid’(사진 GS리테일) |
편의점은 식료품 판매점 이상으로 핫플레이스이자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통해 힙한 브랜드를 가장 처음 체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에서 구매가 어려운 프리미엄 주류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편의점에서만 파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꺼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1020세대에게 편의점은 일상에서 다양한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 것.
최근에는 편의점 GS25가 삼성 갤럭시와 함께 콜라보를 진행, 오는 8월20일(일)까지 성수동에 위치한 플래그십스토어 ‘도어투성수’에서 갤럭시 신제품 2종(갤럭시 Z 폴드5 및 갤럭시 Z 플립5)과 콜라보 디저트를 만나볼 수 있는 ‘갤럭시 스튜디오 With GS25(이하 Flip Side Market 도어투성수)’를 선보이고 있다. 성수동 갤럭시 스튜디오는 △Flip Side Market 성수 △Flip Side Market 더 가든 △Flip Side Market 도어투성수로 이뤄졌다. 이곳에서는 폴더블 제품과 함께 셀피 촬영, 디저트 구매 등 다채로운 라이프 스타일 경험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 강서힐스테이트에서 시범 운영된 당근마켓 당근존(사진 당근마켓)(매경DB) |
중고거래는 이제 익숙해진 구매 형태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의 브랜드가 있다. 각 특성이 조금씩 상이한데, 동네에서 손쉽게 구매를 하고 싶다면 당근마켓을, 브랜드 상품 리셀을 통해 재태크를 하고 싶다면 번개장터를 이용하는 식이다. 이제는 중고거래가 확대되면서 해당 앱 유저들의 검색, 구매 이용률을 통해 최신 구매 트렌드를 살펴볼 수도 있다.
2011년 론칭한 번개장터의 경우 스니커즈, 명품을 비롯한 브랜드 패션 상품과 디지털기기, 골프, 바이크 등의 취미 용품을 거래하는 ‘패션 및 취향 중고거래 앱’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연간 거래액만 해도 약 2조5,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중고거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갔다. 번개장터가 지난 8일 발표한 취향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주목해볼 패션 트렌드는 바로 ‘백팩 붐’이라고. Y2K 유행과도 맥을 이루며, 잔스포츠나 이스트팩처럼 90년대 학생들의 책가방으로만 생각되던 친숙한 브랜드들이 레트로 돌풍을 타고 요즘은 완전한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Y2K의 핵심은 ‘개성표현’이다 보니, 백팩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 바로 키링 아이템이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으로 사랑받은 캐릭터 ‘모남희 키링’은 젊은 여성들에게 ‘키치템’으로 꼽힌다. 번개장터에서는 올 상반기 검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6만815%라는 천문학적 증가량을 보이기도 했다. 모남희 키링은 패턴부터 봉제, 부자재 작업까지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수량이 한정돼 있어 품절이 잦고, 빠르다고 한다. 또 아기들을 위한 애착인형으로 유명한 젤리캣의 ‘젤리캣 키링’은 ‘블랙핑크 지수 키링’으로도 입소문나기도 했다. 구매자들은 ‘번장 리셀(번개장터 리셀의 줄임말)’으로 얻은 키링을 자신의 가방에 건 뒤 구매 인증샷을 올린다.
↑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오프라인 리셀숍 ‘브그즈트 랩’(사진 번개장터) |
번개장터가 번개케어 유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론칭 후 7개월간 거래 브랜드를 살펴본 결과, 주로 거래된 상품은 카테고리별로 ▲스니커즈 ▲가방 ▲지갑 ▲주얼리 ▲시계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거래가 이루어진 브랜드는 ▲나이키 ▲애플 ▲루이뷔통 ▲조던 ▲샤넬 순이었고, 가장 높은 거래액을 보인 브랜드는 ▲샤넬 ▲루이비통 ▲애플 ▲디올 ▲조던 순이었다. 번개장터 최재화 대표는 “번개케어는 고객들이 중고거래 시 느끼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해소한 중고거래 토털 케어 서비스로,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및 일러스트 포토파크, 매경DB, 각 브랜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3호(23.08.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