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타이 아이스크림 한 번 먹어 볼래요? 지난달 항저우를 방문했을 때 일행이 건넨 말이다. 마오타이(茅臺)가 뭔가. 중국을 대표하는 술 아닌가. 그런데 술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호기심에 가봤다. 실제로 밖에서 본 매장엔 마오타이 로고가 있고, 마오타이 술병 모양의 마스코트도 서 있었다. 보기엔 그냥 마오타이 술을 파는 곳 같은데.
↑ 마오타이 로고가 선명한 마오타이 아이스크림 매장. 밖에서 보면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오타이주를 파는 매장으로 생각하기 쉽다. / 사진 = MBN 촬영 |
안으로 들어가니 매장에 있는 건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들이었다. 다만, 아이스크림을 담는 용기는 영락없는 마오타이 술병들이었다. 진짜로 술맛이 날까? 속는 셈 치고 먹어봤다. 일단 향 자체는 마오타이 향이 난다. 먹어 보면 진짜로 술맛도 난다. 아이스크림임에도 알코올 도수가 3도 정도 된다고 하니 나처럼 술이 약한 사람들은 두세 개 먹으면 꽤 취할 것도 같다.
↑ 마오타이 병을 닮은 용기에 담긴 마오타이 아이스크림. 맛도 다양하다. 물론 가격은 상당히 비싸서 하나에 우리 돈 1만 원을 훌쩍 넘는다. / 사진 = MBN 촬영 |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마오타이 술병에 적힌 핑인(拼音) 표기와 실제 발음은 왜 다를까 하는 것이다. 마오타이(茅臺)의 올바른 핑인은 ‘MAOTAI’다. 그런데 마오타이 병을 보면 ‘MOUTAI’라고 적혀 있다. 왜 그럴까? 사실 이 ‘MOUTAI’라는 핑인 표기는 청나라 시대인 1800년대 초반 중국에 살던 외국인이 고안한 초기 핑인 표기법이라고 한다. 그 뒤로 현대 중국 정부가 핑인을 재정비하며 마오타이의 핑인도 ‘MAOTAI’라고 바꿔야 맞지만, 워낙 오랫동안 해당 상표로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았기 때문에 지금도 상표로는 ‘MOUTAI’라고 쓰고 읽을 때만 마오타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후베이성(湖北省) 상양(襄阳)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방문단을 마중 나온 후베이성 정부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술의 이름이 바왕쥐(覇王醉)였다. 한자음을 읽으면 패왕취. 이름의 유래를 물어보니 후베이성 관계자가 이렇게 답한다. “후베이성 상양 지역은 삼국지의 무대(그 유명한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초한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천하를 놓고 다퉜던 항우와 유방이 활약했던 곳이다. 항우의 별명이 무엇인가? 서초패왕(西楚覇王) 아닌가. 이 술의 유래는 바로 그 서초패왕 항우도 취하게 한다고 해서 바왕쥐(패왕취)인 것이다.”
항우도 마시면 취한다는 바왕쥐의 알코올 도수는 얼마나 될까? 무려 70도다! 불을 붙이면 정말로 활활 타오를지도 모르겠다. 후베이성 관계자가 본인들의 환영사에 답례를 하라며 본 기자에게 16인용 테이블을 꽉 채운 일행들에게 각각 건배를 권하니 70도 바왕쥐를 16잔 연속 마신 셈이다. 그 뒤로 다음 날 아침까지 내 기억은 사라졌다.
↑ 후베이성 상양의 특산주인 바왕쥐. 상자 겉면에 알콜 도수 70%라고 쓰여 있고, 술병과 술잔엔 중국고도(中國高度) 즉, 높은 도수라고 마치 경고하듯 쓰여 있다. / 사진 = MBN 촬영 |
애플. 삼성전자. 아스트로제네카. 루이뷔통모에헤네시. 도요타.
내로라하는 글로벌 경제 대국의 시가총액 1위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GDP 기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중국 본토의 상하이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마오타이다. 그렇다. 그 술 만드는 회사가 바로 G2 중국의 대장주다. 시가총액이 우리 돈 400조 원을 넘기며 지난 2020년부터 대장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적도 좋다. 올해 1분기 마오타이의 순이익 예상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난 208억 위안, 우리 돈 4조 원 규모다. 호실적의 바탕엔 사업 다각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마오타이 아이스크림은 작년 5월 출시 이후 중국 전역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여기에 추가로 마오타이 커피도 현재 시범 판매 중이라고 하니, 이러다 모든 음식에 마오타이를 섞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 나라의 대장주가 꼭 첨단 기업이나 거대 제조기업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역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은 명품 패션기업 아닌가. 어느 영역의 기업이든 사람들에게 가치를 더하는(value added) 만큼 인정받는 건 당연할 터. 그럼에도 술 만드는 회사가 시가총액 1위라는 것에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건 사실이다. 여기에 공동부유(共同富裕, 다 함께 잘 살자)로 대표되는 시진핑식 공정사회 분위기 속에 한 병에 몇십만 원에서 수억 원짜리 한정판 제품까지 즐비한 마오타이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이 마냥 편하지는 않아 보인다.
↑ 중국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 <징둥>에서 마오타이를 검색해보면 누가 살까 싶은 수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표가 붙은 한정판 마오타이주 상품도 수두룩하다. / 사진 = 징둥닷컴 |
중국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 <징둥>에서 마오타이를 검색해보면 누가 살까 싶은 수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표가 붙은 한정판 마오타이주 상품도 수두룩하다. / 사진 = 징둥닷컴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엔 마오타이의 시가총액 1위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엔 중국 이동통신기업 차이나모바일이 잠시나마 마오타이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곧바로 마오타이에게 다시 시총 1위 자리를 내줬지만 말이다.
마오타이도 이런 위기감을 갖는 듯 하다. 마오타이는 올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마오타이 주가가 지난해 말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자 올해 들어 우리 돈 3천억 원 이상을 들여서 주가 부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주가 상승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마오타이 주가는 역대 최고가를 찍었던 2021년 2월 10일 종가 2천
코로나 리오프닝 이후 중국 소비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건 마오타이에게는 악재다. 반면, 중국 정부가 디지털 경제 육성에 나선 건 차이나모바일 같은 IT‧통신 기업에게는 호재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조만간 중국의 대장주가 또다시 바뀔지도 모르겠다.
윤석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