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친모 잠적…아빠 혼자 딸 출생신고하는 데 8개월 걸렸다

현행법 "혼인 관계 없이 낳은 자녀의 출생 신고는 母가 해야"
미혼부,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출생 신고 위한 소 제기
법원 "공적서류 등으로 친모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

↑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미지.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교제하던 베트남 국적의 여성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으나 미혼부라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던 남성이 법원의 결정으로 8개월 만에 자녀의 등록부를 갖게 됐습니다.

4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대구가정법원 김형태 판사는 A 씨가 제기한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 재판에서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A 씨는 회사 동료인 베트남 국적 여성과 2년여간 교제를 이어오던 중 지난해 9월 딸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출산 며칠 후 갑자기 집을 나가 잠적했습니다.

결국 A 씨 홀로 딸의 출생신고를 위해 관할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A 씨가 출생신고를 할 자격이 없다면서 신고를 거부한 겁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하면, 혼인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모(母)가 하게끔 돼있습니다.

다만 ▲모의 소재불명 또는 정당한 사유없이 모가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거나 ▲모의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어 특정할 수 없는 등의 경우에는 법원의 확인을 받은 후 부(父)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A 씨는 8개월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딸의 출생신고를 시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출생신고를 위한 소를 제기했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공단 측은 친모의 이름 등 인적사항 일부는 알려졌지만, 친모가 갑작스레 소재 불명 되는 등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발급에 협조하지 않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딸의 친모를 특정할 수 없거나 공적서류 등에 의하여 특정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함을 확인했다"면서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A 씨는 무사히 딸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김동철 공익법무관은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출생등록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입법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올해 초 헌법재판소는 미혼부에 의한 출생신고를 불허하고 있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2025년 5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게 됩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