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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Z세대에게 바이닐이란 음악이자 굿즈

기사입력 2023-06-30 12:20

블랙핑크, BTS 바이닐 앨범 폭발적 구매
앨범 스트리밍 후 바이닐 구매...피지컬 앨범 대부분이 바이닐
무압축 음질과 비주얼도 구매 이유

바이닐(Vinyl) 레코드 열풍이 거세다. 누군가는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 산업 속에서 이만큼 뜨거운 감자는 없다. 바이닐 레코드가 작년 한 해 얼마 많이 팔려나갔는지를 보면 안다.
픽사베이
↑ 픽사베이
10년 전부터 성장해온 바이닐 레코드 시장
팬데믹이 종식되자 해외로 나갈 일이 많이 생겼다. 필자는 이번 달만 해도 호주, 독일, 프랑스 등의 휴가와 출장이 겹친다. 나는 해외의 어떤 도시에 머무를 때마다 모바일 속 지도를 통해 ‘Record Shop’을 검색하는 편이다. 팬데믹 이전에 그리 많지 않았던 레코드 숍이 각 도시마다 더 생겨났다(아니, 실제로 새롭게 문을 연 레코드 숍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종종 들러 LP라 불리는 바이닐 레코드를 ‘디깅(digging)’한다.
과거의 레코드 숍에는 컴팩트한 CD가 주를 이뤘고, 바이닐은 한편에 장식처럼 있었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됐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CD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고, 모든 레코드 숍에서 거래하는 (파일로 스트리밍 또는 저장해서 듣지 않는 물리적 음악 저장 장치인) 피지컬(Physical) 앨범 대부분이 바이닐 레코드다.
나는 최근에 호주 시드니를 다녀왔다. 그곳에서도 몇 군데 레코드 숍을 들락거렸다.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86년작 <컬러 퍼플>과 앨런 파커 감독의 1980년작 <페임>의 사운드트랙 바이닐을 중고로 구입했다. 전자는 1980년에 호주에서 프레싱(제작)된 앨범이고, 후자는 1980년 영국에서 프레싱된 앨범이다. 말 그대로 영화 개봉과 동시에 발매된 초판인 셈이다.
사진 픽사베이
↑ 사진 픽사베이
맞다. 그때는 바이닐 레코드가 카세트테이프와 더불어 피지컬 앨범의 주류를 이루던 시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LP는 CD에게 왕좌를 내주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부피가 크고, 몇 곡 재생 후 뒤집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은 바이닐보다 휴대하기 편하고, 더 많은 곡이 수록되는 CD에 지갑을 열었다. 아무튼 나는 이런 앨범을 각 14호주 달러(약 1만1,000원), 16호주 달러(약 1만2,000원)를 지불하고 손에 넣었다. 시쳇말로 횡재한 셈이다.
CD 이후 음악 시장은 ‘디지털’이라 불리는 새로운 포맷의 음악 듣기에 피지컬 앨범의 권좌를 내주어야만 했다. 아무도 피지컬 앨범을 사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물리적 형태의 앨범을 소유하기보다는 모바일 장치 속에서 편하게 내려 듣고, 손쉽게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바이트 형태의 앨범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다시금 피지컬 앨범에 대한 선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대상은 CD가 아니었다. 음악 역사에 있어 가장 오래된 음악 저장 장치이면서 굉장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바이닐 레코드였다.
아, 이 글은 바이닐 레코드의 놀라운 신장세를 산업적이면서도 라이프스타일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음악 산업에서 여전히 가장 큰 수익률을 차지하고 있는 건 여전히 ‘스트리밍’을 통한 음악 듣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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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판매량, CD를 앞서다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RIAA)의 2022년 공식 통계는 바이닐 레코드 시장이 역대급으로 성장한 해임을 공표한다. 일단 “미국을 기준으로 2022년의 음반 판매 수익은 7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조슈아 P. 프리들랜더(RIAA 연구 및 경제 부문 수석 부사장)의 말이다. 음반 및 음원 추정 소매가로 사상 최고치인 150억 달러를 기록했다는 게 협회 측의 공식 통계다. 그중에서도 스트리밍이 133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부언할 필요 없이 이게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건 한때 한없이 추락했던 피지컬 앨범 분야의 비약적 성장세다. 피지컬 앨범은 2021년을 기점으로 놀라운 부활을 이루어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2022년에는 전년 대비 4% 증가한 1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중에서도 바이닐 레코드의 수익은 2021년에 비해 17%나 증가했고, 12억 달러의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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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 달러에서 12억 달러는 10%도 채 되지 않는양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 도출된다. 1987년 이후 CD에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만 했던 바이닐이 다시 CD 판매량을 눌렀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상승세는 끊임없이 소비자가 바이닐 레코드를 찾는다는 점에서 이 시장이 점차 더 확장되고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지표를 근거 삼아 전문가들은 바이닐 레코드의 판매를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바이닐 레코드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사로잡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밖에 안됐다. 물론 이전에도 마니아들을 통해 바이닐이 거래되긴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신보를 발매하는 뮤지션들이 무조건 바이닐을 발매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이 CD와 음원 형태로 음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주로 CD와 음원 저장을 통해 음악을 소비했다. Z세대는 오로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만 음악을 접했다. 그러니 Z세대에게 있어 바이닐과 CD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경한 클래식 포맷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Y2K(Year 2000)’의 부활이다. 바이닐 레코드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필름 카메라 등의 레트로(새로운 세대에게는 뉴트로) 아이템이 다시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큰 축을 차지하는 데에 기인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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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의 아날로그적 요소마저 힙한 매력
이외에도 바이닐 회귀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담론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소비 주체에 대한 문답들이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X세대가 바이닐 판매를 촉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에게 LP는 추억이자 향수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선뜻 지갑을 열 수 있을까? 이는 인식론적 오류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바이닐 레코드는 올드 뮤지션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인기를 얻고 있는 현재의 아티스트 레코드라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국내 내한 공연으로 인기 몰이를 했던 해리 스타일스의 바이닐은 전석 매진을 기록한 공연 티켓만큼이나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 활동하지 않는 과거 뮤지션들의 앨범도 ‘클래식’이라는 미명 하에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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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많은 수량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건 사실상 빌리 아일리시, 브루노 마스는 물론 BTS와 같은 현재의 팝 뮤직 앨범이라는 의미다. 이건 Z세대가 바이닐 레코드를 굉장히 많이 소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음반 산업계의 데이터에 따르면 “바이닐 레코드를 구매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소비자 층은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라고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뜻 지갑을 여는 Z세대에 힘입어 바이닐 레코드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바이닐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Y2K(Year 2000)’의 부활이다. 바이닐 레코드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필름 카메라 등의 레트로(새로운 세대에게는 뉴트로) 아이템이 다시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큰 축을 차지하는 데에 기인한다는 말이다.”
바이닐의 프리미엄 가치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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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레코드가 각광받는 시대를 두고 떠도는 담론 중 두 번째는 일종의 프리미엄이다. 바이닐 레코드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가장 저렴한 것이 약 20달러(약 2만3,000원)이다. 팬데믹을 겪는 동안, 또 바이닐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레코드를 제작하는 비용이 상승했고, 또 공급 일정도 많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아무튼 앞서 말한 레코드 가격은 가장 저렴한 제품의 예이고, 3만 원에서 5만 원, 혹은 그보다 높게 책정되기도 한다. 이 비용은 지난 시대의 영예를 차지했던 CD 가격의 두 배에 달한다.
또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월 구독료(평균 10달러 정도)의 두 배 이상이다. 심지어 스트리밍은 그 비용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음원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닐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건 소유의 프리미엄이다(심지어 한정반들은 고가로 리셀되기도 한다). 일단 대부분 레코드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특별히 ‘한정반’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지 않더라도 초판을 판매하고도, 다음 프레싱까지 꽤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레코드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사진 픽사베이)
↑ 대부분 레코드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사진 픽사베이)
바이닐 레코드의 영예로운 컴백에서 거론되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 음질’에 있다. 바이닐은 아날로그 녹음일 수밖에 없다. 스트리밍 오디오 파일은 대부분 원래의 정보를 압축하는 형식이다. 이 압축은 원래 사운드의 일부를 제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니 풍부한 오리지널 사운드를 감상하는 데에 방해물이 될 때가 있다(물론 현대의 스트리밍 플랫폼, 특히 애플 뮤직의 경우는 이 제거를 최소화한 무손실 음원을 제공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에서 바이닐은 조금 더 우월하고 명징한 사운드를 가진다. 바이닐은 오디오 시스템. 즉, 청자가 보유한 턴테이블, 심지어 소리골을 긁는 바늘, 앰프, 스피커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사운드를 제공한다. 하지만 현 소비자에게 바이닐 사운드는 일종의 색다른 ‘재미’를 전할 때가 많다. 낡은 중고반일 경우 먼지나 흠집으로 인해 자글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심지어 바늘이 레코드 위를 미끄러져 지나갈 때도 많다. Z세대 레코드 소비자들에는 이것마저도 바이닐만의 흥미로운 매력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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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일종의 굿즈
더욱이 CD 재킷에 비해 훨씬 큰 바이닐 레코드의 패키지는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자긍심을 주기도 하고, 동시에 SNS 시류에 걸맞는 유행 아이템으로 사용하기도 좋다. 레코드 숍의 주인장들 역시 자신들이 판매하는 레코드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들은 굉장히 저렴한 턴테이블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현대의 바이닐 레코드는 음악 감상을 위한 물리적 음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패션 액세서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레코드를 재생하기 위한 하드웨어보다 바이닐 그 자체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명확한 예는 K-팝 문화에서도 도드라진다. 블랙핑크나 BTS의 바이닐 레코드가 단지 듣기 위해 존재할까? 물론 바이닐 레코드 컬렉션에 열정을 쏟는 이들이라면 좋은 시스템을 장만하고 정말 듣기 위해 앨범을 구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K-팝을 포함해 동시대 음악 소비자들의 형태는 두 가지로 함축된다. 첫째, 스트리밍으로 무한 반복하여 그 앨범을 듣는다. 둘째,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바이닐을 일종의 굿즈처럼 소비하고 소장한다. 어쩌면 이게 현재의 바이닐 시장을 움직이는 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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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움직임과 더불어 나와 같은 바이닐 소비자들의 형태가 크게 힘을 보탤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영화 사운드트랙 바이닐을 애정한다. 그래서 국내의 온오프라인 레코드 숍은 물론, 아마존과 같은 해외 유통 플랫폼을 통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영화 음악 바이닐 레코드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봉 25주년 한정판 바이닐, 이탈리아 클래식 무비 의 사운드트랙, 근래 개봉한 영화 의 앨범도 구매했다.
취향에 따라 바이닐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다양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중고부터 최신 발매반에 이르기까지. 이 다양성은 점차 바이닐 레코드의 시장을 확장하는데 일조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큰 범주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당신에게 바이닐 레코드는 어떤 의미일까?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소비자 입장에서 현대의 바이닐 레코드는 음악 감

상을 위한 물리적 음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패션 액세서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레코드를 재생하기 위한 하드웨어보다 바이닐 그 자체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일러스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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