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에서 먹고 보고 즐기기
‘돌의 도시’라는 뜻의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Tashkent),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정이 넘치고 사람 냄새 가득한 풍경이 도시의 얼굴을 완성한다. 편리한 대중교통시스템은 물론 갖가지 맛 좋은 로컬음식은 낯선 도시를 친숙한 도시로 바꿔놓는다. 돌이 가진 단단함처럼 도시가 주는 친숙함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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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추효정 |
중앙아시아의 수도거나 아니거나
공항이 나라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는 주요한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타슈켄트공항에 도착해 공감했다. 타슈켄트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를 넘어 예나 지금이나 ‘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일컬어질 만큼 중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심 도시라는 타이틀을 수용하기엔 공항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환전소도, 렌터카 업체도, ATM도, 유심 판매 회사도, 택시 서비스 회사도 전부 한 곳씩뿐인 이토록 소박한 공항에서 이것저것 따지고 비교할 필요 없이 환전부터 유심 구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단순한 동선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에 찌든 여행자에게 최고의 위로다. 그것에서 낯선 도시의 첫인상을 다시 고쳐 쓰곤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앗쌀룸 알라이쿰(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서툰 발음에 현지인들은 웃으며 크게 환대를 보낸다.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해도 이곳 사람들에게 ‘아녀아세오’ 정도로 들릴 것이다. 서로 통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서툰 발음은 둘째치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현지인들은 박수까지 치며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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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소련 국가들 중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 |
구소련 국가들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과 함께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의 위상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덩달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류가 지금까지도 현지인들 일상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그렇기에 ‘한국인’이라는 게 확인이 되면 현지인들 사이에서 아이돌이 된 것마냥 뜨거운 환대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이 매일같이 펼쳐진다. 무척 부끄럽지만 이것 또한 여행이자 추억이겠지.
우즈베키스탄 여정의 시작, 타슈켄트에서 이슬람과 그리스 정교, 러시아 문화가 한데 혼합된 다양한 모습의 일상을 마주한다. 1966년 지진 이후 소련식 건축으로 재건된 이 도시에는 현대적인 건물과 무너져가는 소련 스타일의 아파트가 혼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큰 도로가 아니고서는 신호등이 설치된 곳이 극히 드문 데다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더라도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운전자도 보행자도 무단횡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도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동참하는 것이 타슈켄트여행의 가장 큰 모험이다. 10가지 팁만 숙지한다면 먹고 보고 즐기는 이 도시에서의 여행은 이방인에게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1. 이동이 이렇게 쉽다고?
이동수단만 잘 숙지하면 낯선 도시는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수도이자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표지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타슈켄트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중교통 수단을 터득하는 일. 영어 표지판이나 안내는 없지만 버스 경로나 지하철 노선이 제법 단순하기 때문에 한두 번 타고 나면 현지인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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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을 꼭 타지 않아도 한번쯤 들러보면 좋을 타슈켄트의 역 |
1977년 개통된 타슈켄트 지하철은 구소련에서 건설된 일곱 번째 지하철이자 중앙아시아 최초의 지하철. 구소련에서 건설된 여느 나라의 지하철과 달리 입구에서 플랫폼까지의 거리가 비교적 짧아 깊이가 다소 얕은 것이 특징이다. 총 4개 노선, 48개 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의 저명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역 설계에 참여해 각 역마다의 독창적인 건축과 예술양식을 살피는 것도 재미를 선사한다.
버스와 택시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쉽게 이용이 가능하다. 버스의 경우 ‘이웨이(Eway)’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우리나라의 카카오버스와 비슷한 것으로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버스 정보와 경로를 상세히 안내해준다. 지하철과 버스요금 모두 1회 탑승 1,400솜(한화 약 150원)으로 저렴하다. 택시 애플리케이션은 ‘얀덱스(Yandex Go)’로 통한다. 이것도 카카오택시와 사용방법이 동일하며, 타슈켄트 내 어디서나 3~5분이면 호출한 택시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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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적인 패턴 |
게다가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도심 내에서의 이동은 택시요금이 한화 1,000~3,000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타슈켄트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경향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타슈켄트에서 살아가는 로컬의 일상을 잠시나마 보고 느끼고 싶다면 버스와 지하철에 올라타보길 추천한다.
2. 하즈라티 이맘 광장에서 16세기 탐험을
타슈켄트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본 장면이 있다. 타슈켄트를 소개하는 사진이나 영상에서 주된 배경이 되는 곳, 타슈켄트를 상징하는 명소 중 한 곳, 바로 하즈라티 이맘 광장(Hazrati Imam Complex)이다. 여행의 짜릿한 쾌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는 바로 비현실처럼 느껴졌던 장소에 실제 발을 들이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아닐까?
16~20세기에 걸쳐 세워진 역사 및 건축적 기념물이자 종교 중심지인 하즈라티 이맘 광장은 천년 이상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타슈켄트 구시가지에 자리한 광장은 ‘위대한 이맘’이라는 그 의미처럼 마침내 위대하게 현실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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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즈라티 이맘 광장 |
이슬람 문화권에서 계몽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카팔리 알 샤시(Kaffali Al Shashi)가 이곳에 묻혔다. 1541년에 세워진 그의 묘는 하즈라티 이맘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곳 주변에 높이 56m인 두 개의 아름다운 첨탑과 두 개의 돔으로 이뤄진 카즈라티 이맘 모스크(Khazrati Imam Mosque)가 자리하며, 돔 내부는 금박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태양 광선이 모스크 내부로 침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창문 또한 모스크의 독창성이다.
하즈라티 이맘 광장의 또 다른 건축물은 각각 16세기에 지어진 바락칸 마드라사(BarakKhan Madrasah)와 무이 무보락 마드라사(Muyi Muborak Madrasah)다. 두 곳 모두 당대 우즈베키스탄의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철학과 과학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으며, 특히 무이 무보락 마드라사 도서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보관 및 전시되고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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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 내부 |
광장 밖 차량의 경적소리로 번잡한 도시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마드라사가 세워진 때로 돌아간 듯 관광객이 아닌 교육기관의 일원인 것처럼 그렇게 16세기 탐험을 만끽한다.
3. 로마 가톨릭 교회도 있다
타슈켄트의 로마 가톨릭 교회 건축이 시작된 건 1912년부터다. 완전한 복원까지 1세기에 걸친 긴 역사가 자리한다. 저스틴 보나벤투라 프라나이티스(Justin Bonaventura Pranaitis) 신부의 주도 아래 폴란드 유명 건축가 루드비크 판차케비치(Ludwik Panchakevich)가 설계에 나섰다. 당시 교회 건설 노동자들은 타슈켄트에 복무하는 가톨릭 군인이 대다수였으며, 이들 중에는 고도로 숙련된 엔지니어와 조각가, 벽돌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17년 건축가 판차케비치가 사망한 후 가톨릭 사제들의 의해 공사는 계속되었지만 1920년대 들어 볼셰비키 혁명과 권력 충돌 등의 이유로 공사는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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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성심 대성당 |
십수 년이 흘러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교회 건물을 복원하기로 결정한 건 197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5년 후 1981년 가톨릭 교회는 우즈베키스탄의 건축 및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1992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의해 이곳 가톨릭 교회는 타슈켄트의 가톨릭 교구로 이전되었으며, 건물의 완전한 복원은 1993년에 시작되어 2000년에 마무리되었다. ‘예수 성심 대성당’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2000년 10월22일 마리안 올레스 대주교에 의해 봉헌되었다.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의 주일 미사는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4개 언어로 진행된다.
4. 그늘을 찾아서, 그늘이 있어서
포털사이트에 우즈베키스탄의 최적 여행시기를 검색하면 4~5월 또는 9~10월이라고 나온다. 이를 철썩 같이 믿고 타슈켄트에 발을 들인 건 5월 중순 무렵이었다. 정보만 놓고 보면 최적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타슈켄트에서 실제로 겪은 체감온도는 이와 달랐다. 일주일 체류기간 동안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선 날이 허다했다. 아시아 대륙 내부의 우즈베키스탄은 사막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고온 건조한 날씨를 나타내며, 이는 고온 다습한 끈적거리고 불쾌지수 높은 우리나라의 여름 기후와는 양상이 다르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면 피부가 타 들어갈 듯 강렬한 햇볕이 도시 전체를 장악하는데, 그 아래에서 단 몇 분 서 있거나 걷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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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르 티무르 스퀘어 공원의 그늘 |
그럴 땐 그늘이 아니고선 숨을 쉴 수 없다. 수시로 그늘을 찾아 떠나고, 하루 동안 한번 이상 도심의 공원에 가야 하는 이유다. 타슈켄트 두 개의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아미르 티무르 스퀘어(Amir Temur Square) 공원은 그늘 아래서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분수가 있는 기념비적인 이 광장에는 중앙에 세워진 1300년대 통치자 티무르의 기마상이 공원을 아우른다. 이곳의 날씨를 바꿀 순 없지만 어디서나 그늘은 찾을 수 있다. 그늘이 있어서 참 다행스러운 여행이다.
5. 플롭은 보는 맛이 최고인 요리
‘플롭(Plov)’은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요리다. 육류나 채소를 넣은 볶음밥의 일종인 플롭은 차림새만 보면 굉장히 평범해 ‘왜 국민요리일까?’ 싶은 궁금증을 일으킨다. 한데 플롭이 특별한 건 요리 과정에 있다. 프라이팬에 재료를 볶아 요리하는 일반적인 볶음밥과는 달리 카잔(Kazan)이라는 거대한 금속 냄비에서 만들어지는 플롭의 요리 과정은 단연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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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금속 냄비에서 볶는 우즈케비스탄의 국민 요리 ‘플롭’은 일종의 볶음밥이다. |
그 과정은 타슈켄트 타워 인근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플롭 센터’라 불리는 ‘베시쿠존(Beshqozon)’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곳 오픈 주방에서는 매일 350kg 무게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플롭을 요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을 고기와 채소로 우려낸 육수인 지르박(Zirvak)에 넣고 액체가 모두 증발할 때까지 끓이는 방식이 독특한데, 이곳 사람들은 이 방법이 쌀이 눅눅해지지 않고 부드럽고 풍미 가득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플롭을 요리할 때 오일의 양 또한 맛을 좌우하는 포인트가 되는데, 한국인의 입맛에선 오히려 과도한 오일 사용이 폴롭의 맛을 반감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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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350kg의 플롭을 요리하는 ‘베시쿠존(Beshqozon)’ |
개개인의 입맛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경험상 오픈 주방이 선사한 흥미로운 요리 과정에 비해 정작 입에 넣은 플롭은 그것 이상의 감동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먹는 맛은 제쳐두고 보는 맛에만 치중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다.
6. 서울에서 먹은 라그만은 가짜였다
서울 동대문에 일명 ‘우즈벡 타운’이라 불리는 거리가 있다. 외국 도시에 세워진 코리안 타운처럼 우즈벡 타운도 서울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형성된 곳이다. 이 거리엔 우즈베키스탄 주요 도시명을 따서 식당이 자리하는데 다른 음식은 몰라도 라그만(Lagman)을 맛본 기억만큼은 생생히 남아 있다. 맛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에. 빨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은 거의 기름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우동 면 같은 두꺼운 국수에선 밀가루 맛이 너무나 강했으며, 고명처럼 올려진 두툼한 양고기는 너무 질겨서 고무를 씹는 맛 같았다. 그 식당은 나름 평점도 높았고,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주인이자 셰프로 있는 식당이었기에 음식의 퀄리티를 따지기보단 라그만이라는 음식 자체가 형편 없는 맛인가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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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사라이 라그만 식당에서 먹은 국물요리 ‘라그만’ |
안 좋은 기억은 또 한번의 시도나 경험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법. 타슈켄트를 여행하며 라그만이라 쓰인 식당을 무시하듯 지나쳤다. 하지만 반전도 있는 법. 하즈라티 이맘 광장을 찾은 날,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주변 식당 중 옵션은 하나뿐이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카라사라이 라그만(Karasaray Lagman)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라그만만 취급하는 라그만 전문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식당 안은 거의 빈 테이블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테이블을 채운 사람들 모두가 현지인들이었다. 분위기만 봐선 뭔가 서울 종로 로컬 맛집을 한방에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좋은 기운을 받으며 맛본 라그만은 서울에서의 기억을 단박에 정반대로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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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먹은 라그만의 맛을 바꿔놓은 카라사라이 라그만 |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국물과 두꺼운 국수에선 전혀 밀가루 맛이 나지 않고 오히려 수타면처럼 쫀득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푸짐하게 올려진 양고기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듯이 사라졌다. 게다가 고추를 썰거나 빻아서 만든 매콤한 소스가 곁들여져 살짝 칼칼한 국물 맛은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라그만과 극적인 화해를 달성한 뒤 타슈켄트의 다른 식당에서도 여러 번 라그만을 먹어봤지만 카라사라이 라그만 식당만큼의 감동은 얻지 못했다. 단연코 타슈켄트에서 최고의 음식이라 칭하고 싶을 정도의 맛.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카라사라이 스트리트에 자리한 라그만 전문 식당이 영원하길 빈다.
7. 주식과 간식 그 사이, 솜사
한 나라의 수도나 대도시를 여행할 땐 도심과 조금 떨어진 지역에 숙소를 잡는 편이다. 도심 호텔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저렴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로컬 동네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로컬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이나 상점, 마트 등을 둘러보다 보면 이 도시의 물가나 생활환경, 인프라 등을 파악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도시의 살아가는 이야기쯤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먹는 이야기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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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디르 오븐에서 굽는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간식 ‘솜사’ |
이번 타슈켄트 여행에서 파악한 것 중 핵심은 단연 국민 간식이라 불리는 ‘솜사(Somsa)’의 맛과 가격이다. 사실 간식이라고 하기엔 주식처럼 먹는 로컬이 꽤 있기에 간식과 주식 그 사이쯤이 맞을 것 같다. 겉은 페스트리 빵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양파와 각종 향신료를 넣고 볶은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이 채워져 있다. 드물긴 하지만 고기 대신 감자가 들어간 솜사를 파는 식당도 있다. 타슈켄트 어디를 가더라도 솜사를 파는 식당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솜사 전문 식당을 찾는 일.
솜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서민적인 음식 중 하나로 테이블 두어 개 놓고 삐걱거리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먹는 게 그 맛을 풍부하게 한다. 식당 앞 ‘탄디르’(Tandyr, 중앙아시아 점토 오븐)에서 솜사를 굽는 식당주인의 미소 또한 맛에 진한 양념을 더한다. 솜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단 육즙이 굉장히 뜨거워 먹을 때 주의해야 한다. 그 뜨거움을 솜사와 함께 서빙되는 토마토소스로 살짝 잠재운 뒤 먹는 방법을 로컬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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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사 |
솜사 식당마다 속을 채운 고기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지만 솜사 하나에 대략 7,000솜(한화 약 800원) 정도다. 솜사 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 먹을 경우 가격이 2배가량 된다. 그렇다고 맛이 두 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8. 초르수시장에 가면
여행에서 시장 탐방은 필수 코스다. 타슈켄트의 자랑이라고까지 언급되는 초르수시장(Chorsu Bazaar)은 이래저래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닮아 있다. 우선 지하철 초르수역이 시장과 바로 연결된다. 먹거리부터 의류와 생필품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시장상인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 울려 퍼진다. 그러나 상인들 사이 서로의 영역을 사수하려는 무언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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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남대문시장을 닮은 초르수시장 |
호객행위도 꽤 난무한다. 좁은 골목길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 집 건너 한 명씩 나타난다. 중요한 건 초르수시장도 남대문시장 못지 않게 도시의 역사를 구성하는 주요 페이지라는 사실이다. 우즈베키스탄을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초르수시장은 중세시대 실크로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장식으로 덮인 바자 천장의 중앙부분에는 직경 약 300~350m의 파란색 돔형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 구조는 무거운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사회주의 모더니즘의 냉엄함을 표현함과 동시에 이슬람의 영향력과 보여주는 건축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건축, 종교, 예술, 음식, 사람을 하나로 포용하는 초르수시장, 그곳에 가면 여행이 여행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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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르수시장 |
9. 양기보드 벼룩시장에 가면
구소련 국가여행에서 벼룩시장은 또 하나의 필수코스다. 러시아 도자기나 소련 기념품, 서적, 기타 빈티지 소품 등 골동품 수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벼룩시장에서의 잡동사니 보물찾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타슈켄트의 벼룩시장은 한때 소련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타슈켄트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양기보드(Yangibod) 지역에 자리잡은 이 벼룩시장은 주말에만 문을 연다. 초르수시장이 잘 차려진 깔끔하고 고급스런 한정식 같은 차림새라면 양기보드 벼룩시장은 투박한 듯 날것 그대로의 멋이 풍기는 가정식 차림새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한데 그 모습이 너무나 투박해 벼룩시장에 첫발을 들였을 때 ‘너무 무질서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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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르수시장에 비해 투박한 양기보드 벼룩시장 |
판매하는 물건인지 내다버린 물건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무질서하게 늘어놓은 잡동사니가 사실 양기보드 벼룩시장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이곳에서 가장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건 사실 길 한 귀퉁이에 세워진 다양한 문짝의 판매 여부였다. 겉으로 봐선 재활용품센터 같아 보였는데, 이곳의 주인과 손짓발짓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시도한 끝에 결국 판매 상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나중에 더 정확히 알게 된 건 우즈베키스탄 가정집의 대문이나 창문은 문짝이 제각기 다 다르다는 사실. 양기보드 벼룩시장에선 뭐든 판매의 대상이 된다. 길가에 버려진 것 같은 물건도 판매상품일지 모른다. 또 그것이 이 도시의 일상에 중요한 물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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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시장에선 뭐든 판매의 대상이 된다. |
10. 랜드마크에서 사람으로
플롭을 먹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타슈켄트 타워는 외딴 섬에 홀로 붉을 밝히는 등대처럼 우뚝 서 있었다. 1985년 완공된 375m 높이의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라는 타이틀을 글로 읽고 나서야 타워의 진가가 피부로 느껴졌다. 타워에는 지상 97m 높이에 전망대가 자리하는데, 3대의 고속 엘리베이터가 초당 4m의 속도로 탑 꼭대기까지 데려다 준다는 그것의 진가를 몸소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현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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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슈켄트 타워 |
타슈켄트를 여행하면서 랜드마크라 일컬어지는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수많은 현지인 인파에 놀란 적이 적지 않다. 유명 맛집도 어느 시간대에 가더라도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관광 명소라고 해서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관광객만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여느 도시와는 달랐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가진 진가는 이러한 다름에서 출발한다. 타슈켄트는 오랜 역사 동안 정치적, 종교적 다양한 부침을 겪어온 도시다. 투르크 문화의 영향을 시작으로 실크로드로 재건한 경제적 힘, 이후 코칸드 칸국에 의해 정복되고 러시아 제국의 의해 함락되는 등의 흥망성쇠는 타슈켄트의 2000년이 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눈요깃거리의 랜드마크가 아닌 이 도시가 살아온, 살아가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그것도 다민족 인구를 이루고 살아가는 현지인들과 더불어서. 타슈켄트 여행은 결국 사람, 우리의 이야기. 그것이 여행자 개인의 역사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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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의 도시’라는 뜻의 타슈켄트 |
[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