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6일) 서울 금천구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동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 사진=연합뉴스 |
이 남성은 동거녀가 데이트폭력으로 신고한 데 대한 앙심을 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차장 cctv를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추론해봤습니다.
어제(26일) 오전 7시 12분쯤 동거녀 살해범 김 모 (33)씨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소재 상가의 한 지하주차장을 배회합니다.
그리고 특정 차량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2분 뒤 김 씨의 동거녀 A(47)씨가 주차장에 들어섰고 차량 문을 열기 위해 다가서자 김 씨는 준비했던 흉기를 꺼내 무자비하게 휘두릅니다.
김 씨는 피습으로 힘들어 하는 A씨 차키를 챙기고는, 자신이 빌린 차량에 태워 주차장을 빠져 나갑니다.
경찰은 이 차량을 특정해 이날 오전 9시쯤 경기도 파주로 진입하는 CCTV영상을 확보했고, 약 150명의 인력을 동원해 범행 8시간 여만에 파주의 한 야산 공터에서 긴급체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차 뒷좌석에 있던 A씨는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김 씨는 범행사실을 인정하며, A씨의 데이트폭력 신고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살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범행의 발단인 데이트폭력과 관련해 조금더 시간을 거슬러 살펴보겠습니다.
범행 발생 4시간 여 전인 이날 새벽 3시쯤 A씨는 PC방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김 씨는 약 2시간 뒤 A씨를 PC방 앞에서 만났고, 5시 24분쯤 인도를 거리를 두고 걸어가다가 5시 37분쯤 A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김 씨는 이를 제지하며 골목으로 데려갔는데, A씨가 전화를 건 곳은 경찰서였습니다.
A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몇 주 전에도 맞았다고 데이트폭력을 호소하며, 위치 추적 요청을 했고, 경찰은 김 씨를 지구대로 임의동행했습니다.
김 씨는 경찰 조사 뒤 6시 11분 풀려났고, A씨는 7시 7분 귀가 조치 됐는데, 먼저 풀려난 김 씨가 데이트폭력 신고를 따지기 위해 지하주차장에 숨어 기다리다가 보복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 사진=연합뉴스 |
경찰이 A씨를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A씨가 팔을 잡아당기는 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해 접근금지 처분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긴급 상황 발생 시 위치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 워치 착용과 임시 숙소 제공 등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보호조치를 위한 위험성 판단 체크도 했으며 A씨가 주거지 순찰 등록만 수락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더 정확한 살해 동기와 A씨의 사망 원인은 앞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겁니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터지는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희생은 막을 수 없을까요.
지난해 남편 혹은 연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여성은 최소 86명이었고, 살해 위험을 당한 여성은 최소 225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데이트폭력 사범은 지난해만 1만 2841명이 붙잡혔는데, 전년 대비 21.7%, 8년 전보다 92.4%가 늘었습니다.
검찰은 처벌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구속수사와 엄정한 구형이 이뤄지게끔 대책을 내놨습니다.
또 앞서 경찰은 지난 22일부터 범죄 피해자 위험성 판단체크리스트를 통해 보복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예상하고 피해자 맞춤형 안전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었고, 결국 이번 사건에서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의 실효성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격이 됐습니다.
일단 오늘(27일) 오후 예정된 경찰의 브리핑 내용을 지켜봐야겠지만, 더이상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데이트 폭력 대책이 정교하게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오지예 기자 calling@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