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괴된 학동 건물이 쓰러지는 모습 (MBN 뉴스7 캡쳐) |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0분을 막 지난 시간, 광주광역시 54번 버스는 운전기사 1명과 승객 16명을 태우고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워졌고 버스는 속도를 줄여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높이의 건물이 쓰러지며 잔해가 버스 위로 쏟아진 겁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남짓. 떨어지는 건물 잔해를 피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소방대원이 출동해 구조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버스 안에 있던 승객 9명은 숨지고 8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 가운데 1명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할 때였지만 동아리 후배를 위해 학교에 들렸다 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습니다. 사고 현장 근처에서 곰탕집을 하던 60대 여성도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아들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이고 집을 나섰던 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못 했습니다.
↑ 학동 건물 붕괴 과정 (국토교통부 '광주 해체공사 붕괴사고 조사보고서') |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게 믿기지 않는다."
많은 분이 사고 소식을 듣고 한 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옆에 서 있던 건물이 갑자기 무너진다는 생각을 누가 할까요? 붕괴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국토교통부가 곧바로 대대적인 수사와 조사에 나섰습니다.
사고 발생 두 달 뒤 국토부는 "해체계획서에는 '건물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가면서 구조상 약한 부위부터 철거한다'고 작성돼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해체작업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철거업체는 케이크를 자르듯 건물을 위에서부터 반으로 나눠 뒷면을 먼저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앞면만 남은 건물을 윗부분부터 해체하기 위해 굴착기가 올라갈 수 있도록 10m가량 흙을 쌓았습니다. 먼지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물도 뿌렸습니다.
①이 과정에서 과하게 쌓은 흙과 물은 엄청난 무게로 건물을 짓눌렀는데, 건물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보강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②건물 1층 바닥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며 지하로 흙이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③지하로 흙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건물 2층을 시작으로 전체에 충격을 주었고 이 충격으로 건물이 도로 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결국 공법을 지키지 않은 무리한 작업이 인명피해로 이어진 겁니다.
↑ 학동 사고 관련 현대산업개발 압수수색 (연합뉴스) |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하게 해체공사를 한 업체는 어디였을까요?
학동 4구역 재개발조합은 HDC현대산업개발에 시공을 맡겼습니다.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한솔에 작업을 맡겼는데, 한솔은 직접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솔은 다시 백솔에 공사를 의뢰했고, 영세업체였던 백솔은 대표 조 모 씨가 직접 굴착기로 해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현행법상 이런 재하청은 불법입니다. 다시 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공사 단가가 깎여 부실하게 공사를 할 우려가 커지고 전문성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학동 붕괴사고에서도 하청이 이뤄질 때마다 단가는 토막났고 공사는 '안전한' 방식이 아닌 '빠르고 저렴한'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공사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감리도 제대로 안 됐습니다. 감리자 차 모 씨는 현장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해체계획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심에서 법원은 한솔의 현장소장 강 모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백솔의 대표 조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 감리자 차 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소속의 현장소장 서 모 씨에게는 집행유예 3년, 안전부장 김 모 씨와 공무부장 노 모 씨에게는 각각 집행유예 2년의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했습니다. 유족 측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반발했고 검찰도 항소했습니다.
↑ 서울 잠원동 붕괴사고 현장 (연합뉴스) |
학동 붕괴사고가 발생하기 2년 전,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2019년 7월 4일 서울 잠원동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인근을 지나던 차량 3대가 잔해에 깔렸습니다. 이 차량 가운데 한 대엔 예비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6개월여 앞두고 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차는 잔해 깊숙한 곳에 깔렸고, 남성은 붕괴 3시간 30분 만에 구조됐지만 그 이후 30분이 더 지나서 구조된 여성은 끝내 숨졌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망한 사고에 유족들은 오열했고, 시민들도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습니다.
조사 결과 지지대를 계획보다 적게 설치했고, 사고 전날 무너져 내린 잔해물을 치우지 않고 무리하게 작업을 계속하다가 잔해물의 무게가 2층 바닥에 집중되면서 붕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년 사이 건물이 두 번이나 무너져 10명이 숨진 나라. 안전을 등한시한 공사 관행이 부른 참사였고, 대한민국의 건설 현장의 현주소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 광주 학동 붕괴사고 현장 (연합뉴스) |
학동 붕괴사고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잠원동 사고를 언급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며 "과연 무엇을 더 잃어야 외양간을 고칠지 재판을 하면서 마음이 답답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두 번의 참사를 겪고 나서야 정부와 지자체는 사고를 방지하겠다며 관련 대책이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대책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현장의 실천 여부입니다. 두 사고 모두 있는 규정
공사현장에서 원칙이 지켜지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고쳐지지 않은 외양간 앞을 위태롭게 지나가야만 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