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배불리 먹고 살 것 같아 아이 보내"
가정의 달인 5월이면 유독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던 부모들입니다.
예전에는 특히 친가족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기록해 두지 않았던 터라 이들이 자녀를 찾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해외입양 관련 단체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22만여 명이며, 자녀를 찾으려 유전자를 등록한 부모는 약 4,500명(지난 2월 기준)입니다.
지난 1986년 봄, 이복임(61) 씨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조 산부인과(조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운영하던 조산소)에서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막내를 입양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가 자라면 적어도 '밥은 배불리 먹고 살지 않겠냐'는 말에 이씨는 갓난아기를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단칸 옥탑방에서 연년생인 두 남매와 함께 살던 그녀는 혼자 재봉틀질 해가며 받은 수입으로 겨우 먹고 살 정도로 살림이 빠듯헸습니다.
조산원에서 소개한 집으로 보낸 터라 입양기관을 통하지 않았던 이씨는 당시 입양 서류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았고, 포대기에 아기를 감싸며 아빠와 언니 친구의 신분증을 복사해 접어 넣어두었다고 했습니다.
셋째를 떠나보낸 그녀는 그날부터 다시 재봉틀을 잡았습니다. 바늘이 손을 찌르는 줄도 모를 정도로 펑펑 울기도 했지만, 아이를 다시 찾아오려면 돈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구박받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고 아이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데리고 살았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습니다.
조산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조산소도 흔적 없이 사라질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가족들이 모이는 때마다 그녀는 "여기 한 자리가 더 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다 자라 가정을 이룰 때까지 모든 순간 막내가 떠올랐고, 좋은 음식을 먹거나 웃을 때도 "내가 행복해선 안 된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몰아세웠습니다.
돈 때문에 막내를 보냈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일해온 그녀는 과일 경매 사업이 어느 정
어쩌면 아이 엄마가 됐을지도 모를 서른여덟의 막내를 볼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그녀는 딸을 만나면, 그동안 못 해줬던 것들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전부 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주나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juliet3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