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려고 느지막이 일어나 식당으로 가는 도중 보행로 한쪽에서 꽃을 파는 여성분과 마주쳤다.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분명 2~3일 전에 팔던 꽃들과는 다른 종류로 보였다. 조금 발걸음을 늦추고 사진을 한 장 찍으면서 살펴보니 종류도 다양하고 꽃들은 꽤 싱싱해 보였다. 알록달록 꽃송이들이 베이징도 이제 5월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 길거리에 놓고 파는 꽃들이지만, 종류도 다양하고 싱싱하다. 무엇보다 가격이 무척이나 싸서 종종 사게 된다. / 사진 = MBN 촬영 |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겠지만, 중국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꽃을 파는 사람들과 몇 송이씩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판다고 시든 꽃을 싸게 파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꽃 품질도 좋고 종류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가격이 무척 싸다. 여러 종류의 꽃을 한 움큼 집어도 웬만해선 우리 돈으로 5천 원을 넘지 않는다.
잘 차려진 꽃가게라고 해서 특별히 더 비싸지도 않다. 가게에 들어가 맘에 드는 꽃들을 잔뜩 사서 3개의 꽃다발로 포장까지 다 했는데도 우리 돈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중국에서도 비싼 꽃과 화분들이 즐비하지만, 가볍게 꽃 한 다발을 살 때 정도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지난 3월에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의 성도 쿤밍(昆明)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엔 아시아 최대 화훼시장이 있다. 이름은 더우난(斗南) 꽃 시장. 화훼단지 정문을 지나 조금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건물들이 여러 개가 나오는데, 그 건물들이 전부 꽃 시장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더우난 꽃 시장은 24시간 내내 문을 연다고 한다. 낮에는 소매, 밤에는 도매를 주로 한다. 내가 더우난 꽃 시장을 방문했을 때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겼는데도 건물 안은 꽃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뒤엉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하루 평균 방문자만 2만 명. 2021년 한 해 동안 총 102억 6천만 송이의 생화가 판매됐고, 거래액은 112억 위안(약 2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곳이다. 꽃 시장이 위치한 더우난 지역 주민 7만 명 중 절반이 넘는 4만 명이 화훼산업에 종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 아시아 최대 화훼시장인 쿤밍 더우난 꽃 시장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이렇게 꽃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 사진 = MBN 촬영 |
시장에서 만난 꽃 판매업자 양 씨는 “지난해는 코로나19 탓에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뜸했지만,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뒤 올해는 시장이 활기를 띄고 있다”며 “작년보다 손님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내가 꽃 시장을 방문하기 직전인 춘제(春節·음력설) 연휴 기간 더우난 꽃 시장에서 팔린 꽃은 7천800만 송이, 매출액은 1억 위안(약 190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 장사가 잘되길 바라는 양 씨의 희망에 한 몫을 보태고자 나도 꽃 몇 송이를 샀다.
사실 더우난 꽃 시장의 규모와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활기찬 모습보다 더 놀라웠던 일은 꽃을 사고 나온 뒤에 벌어졌다. 상가 앞에는 <배달>이라고 쓰인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처음엔 유명 관광지 주변에 모여 있는 기념품 상점들인지 알았다.
호기심에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무엇을 배달해주냐?”고 물었더니 “지금 당신이 시장에서 산 꽃을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바로 보내준다”고 했다. 내가 다시 “나는 베이징에 사는데 베이징으로도 배달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며 “집 주소만 적으면 중국 어디든 72시간 안에 꽃이 시들지 않게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잘 믿기지 않았다. 쿤밍에서 베이징까지는 직선거리로도 2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비행기로 4시간 가까이 걸렸고, 기차로는 10시간, 승용차는 30시간을 쉼 없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아닌가. 더군다나 내가 꽃을 몇백, 몇천 송이를 구매한 전문 업체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 송이, 우리 돈 만 원 정도 어치를 샀을 뿐이다. 이것도 정말 배달이 된단 말인가?
속는 셈 치고 내가 사는 베이징 집 주소를 적고 50위안, 우리 돈 9천 원 정도 배달료를 낸 뒤 조금 전 산 꽃을 맡겼다. 정확히 이틀 뒤 꽃은 베이징 집에 도착했다. 샀을 때 그대로의 싱싱함을 유지한 채.
↑ 2천km를 달려 온 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싱싱하다. 중국의 물류 시스템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사진 = MBN 촬영 |
더우난 꽃 시장에서 팔린 꽃은 전 세계 40여 개 나라로 수출된다고 한다. 도로에만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꽃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춘 채 비행기나 고속철도를 통해 꽃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배달하고
더우난 꽃 시장 관계자가 말한다. “이곳의 꽃 중 상당량이 한국으로도 팔려 가고 있다”고.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예쁜 꽃을 싸게 살 수 있기에 좋았지만, 이 꽃들이 우리나라의 화훼농가와 경쟁자라고 생각하니 순간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윤석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