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이번 달부터는 이른바 대장동 사건 재판의 2라운드라고 불리는 재판들이 하나둘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문기 모른다” 발언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판을 비롯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대표 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공판이 열렸고, 이달 말에는 다른 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공판도 열리죠.
특히 지난 7일부터 시작된 김용 전 부원장 공판은 의미가 큽니다. 바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변심으로 시작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대장동 사건이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입을 닫고 있었던 유 전 본부장은 1년이 흐른 지난해 가을부터 마음을 바꿔 검찰에 적극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을 계기로 김용·정진상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두 측근이 구속됐고 재판까지 오게 됐죠.
마침 김 전 부원장 재판에서 유 전 본부장은 첫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지난 9일 재판에서는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검찰 측의 증인신문이 열렸습니다.
↑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뇌물 수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신문이 시작되자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왜 마음을 바꿔 진술에 협조하게 됐는지 물어봅니다.
유동규 : 저는 10년간 이재명을 위해 산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세뇌시켜왔습니다. 이 대표가 재판에서 지면 광화문에서 분신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검사 : 그러다가 왜 사실대로 말하게 됐죠?
유동규 :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하나씩 생겼는데 변호사 부분이었습니다. 나를 생각하는 부분이 전혀 아니었어요. 아예 보내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도 그 상태(세뇌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변호사 부분은 이른바 ‘가짜 변호사’ 의혹입니다. 이재명 대표 측에서 유 전 본부장을 위해 변호인을 보내줬는데 사실은 유 전 본부장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감시하려고 했다는 의혹이죠. 유 전 본부장은 이런 점 때문에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주장한 겁니다.
↑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
유 전 본부장의 변심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그런데 검찰의 신문이 모두 끝난 뒤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조병구 부장판사)은 유 전 본부장의 변심 이유를 아주 자세하게 되묻기 시작했습니다.
유동규 : 변호사 부분이 상당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제가 느낄 정도로 제 변호를 위해 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제가 아는 정보 내용들을, 아는 상황들을 물어봤습니다.
재판장 : 그게 어떤 건지 사례나 나눈 이야기 같은 걸….
유동규 : 평소에는 접견도 안 오고 재판도 거의 안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재명 대표와 대장동 사건 관련해 무슨 일이 나면 왔습니다. 제가 필요할 때 오는 게 아니라 언론을 보면 ‘아 변호사가 오겠구나’ 예측할 정도로 그런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또 그다음에 온 변호사는 제가 검찰 조사받고 있는데 자신 꼭 들어와야 한다고 했고, 못 들어오게 하니 화도 냈습니다.
재판장 : 본인 조력을 위해 변호인을 보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 전 본부장이) 아는 정보를 다른 데 전달하려는 걸 보고 본인 변호보다 다른 분을 위해 그리한 거 같아 실망했다는 건가요?
유동규 : 조금씩 쌓이다가 기폭제가 된 겁니다. 나를 갖고 이렇게 하나라는 생각을 조금씩 가졌는데 그해 말쯤에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내가 계속 여기(구치소)에 있어야 한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처음에 자신에게 온 A 변호사가 평소에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다가 이재명 대표나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보도가 나오면 그때서야 찾아왔다, 다음으로 온 B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 자신이 조사 때 동행을 거부했음에도 마치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 자리에 꼭 동석해야 한다고 화까지 냈다는 점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된 거라고 주장한 겁니다.
이에 재판장은 당시 상황과 유 전 본부장 진술 내용이 안 맞지 않냐고 되묻습니다.
유동규 : 전혀 없었습니다.
재판장 : 그럼 그때 A 변호사가 와서 감시하는 것처럼 오고 가기만 했다는 게 맞나요?
유동규 : 처음에는 의심 안 했습니다. 그런데 캠프에서 왔다고 하더니 나중에 보니까 경기도 고문변호사인가 자문변호사인가 그렇더라고요. 구치소에서 뉴스 나와서 보는데 이재명 대표 관련 대장동 무언가 나오잖아요? 그럼 그때 A 변호사가 항상 오더라고요.
재판장 : (김용 측) 변호인 지적하기로 B 변호사 전화는 나중에(변심 이후 시점에) 했다는데.
유동규 : 그 시점부터 의심이 시작됐습니다. 그때 점점 바뀌는 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조사 내용을 보시면 아는데, 전부터 다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조금씩 변해갔다고 생각합니다.
변심했다고 바로 적극적으로 진술한 게 아니다, 이후로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짜 변호사의 영향으로 조금씩 진술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재판장의 질문은 유 전 본부장에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지로 향합니다.
유동규 : 못 들었습니다.
재판장 : (수사기관의) 회유나 협박은 없었다는 거고요?
유동규 :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유 전 본부장이 지난 대선 이후 꾸려진 새로운 대장동 수사팀을 언급하자 재판장은 다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재판장 : 새로 온 검사에게 조사받으면서 이전과는 달랐다던데 어떻게 달랐나요?
유동규 : 이전 검사는 뭔가 정해놓고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재판장 :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가요?
유동규 : 솔직히 말해 이전 수사팀 때는 ‘너는 범인 돼야 해’라는 느낌으로 제가 무엇을 말한들 (소용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심경에 변화가 생겨서 몇 가지 사실을 털어놨는데 검사가 화를 내면서 뭐라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뭘 말해도 소용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대선 전 문재인 정부 시절 1기 수사팀은 진실을 말해도 자신만 범인으로 몰아가는 느낌이었다면 대선이 끝난 뒤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꾸려진 2기 수사팀은 달랐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는 뉘앙스를 어느 정도 밝힌 겁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유동규 :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보도 아니고 굳이 왜. 우리는 플리바게닝(형량 거래) 제도도 없잖아요. 판사가 판결하지 검사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검사가) 유혹할 순 있지만 넘어가면 제가 바보죠.
재판장 : (김용 정치자금 수사 당시) 검사들도 (유 전 본부장) 본인이 말하면 특혜를 준다거나 본인이 원하는 게 있냐 같은 말을 했나요?
유동규 : 이야기할 때도 오히려 추가기소되면 이런 건으로 될 수 있을 거다 생각했습니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선택해서 뭔가 한다는 건 도저히 생각 못했습니다.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주변은 전혀, 형제라는 사람들도 나 몰라라 방치하는 현실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이 부분(김용 정치자금)부터 자백한 겁니다. 윗분까지는 지금 상황까지 벌어질 상황이 없었는데 이후 하나하나 저만 공격하고 낙인찍는 모습에 제가 오죽하면 JMS 광신도 같이 있다가 탈출해서 언론에 하는 넷플릭스를 보고 제가 그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판장의 끈질긴 질문에도 유 전 본부장은 검찰의 회유나 협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배신감에 자백한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재판장의 질문은 끝났습니다.
↑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진=연합뉴스) |
왜 재판장이 이토록 집요하게 유 전 본부장의 ‘변심 이유’를 캐물은 걸 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용 전 부원장에게 유 전 부원장에게 돈을 줬다는 증거가 유 전 본부장의 진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1차 공판에서 검찰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긴 했습니다. 범행의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김 전 부원장에게 자금이 필요했던 이유, 최초로 자금을 조성한 남욱 변호사의 자금 조성과정이 주된 증거였죠.
- 이재명 캠프 조직점검 문건
- 선거자금이 필요하다는 내용 담긴 선거 조직 계획 문건
- 비용이 많이 들었을 걸로 예상되는 각종 선거 활동 문건
남욱이 자금을 조성한 증거
- LEE list(골프) 메모지 (골프접대로 가장한 날짜와 자금 액수 적힌 메모)
남욱이 유동규에게 돈을 준 증거
- 남욱이 유동규와 만난 시점의 위치추적 기록
문제는 가장 핵심이 되는 ‘유동규→김용’ 자금 흐름을 보여줄 물적 증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 등의 진술에 근거한 자금을 담은 박스 사진과 전달 위치 사진 등을 제시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부원장에게 돈을 줬다는 증거가 유 전 본부장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남욱 변호사가 자금을 조성해 유 전 본부장에게 준 증거는 있지만 김 전 부원장 측은 그 돈을 유 전 본부장이 챙긴 것이지 김 전 부원장은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이 곧 김 전 부원장의 범행을 입증할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재판장 입장에서는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을 엄격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검찰 신문 과정에서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본부장에게 돈을 전달한 과정을 묻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것과 달리 재판장은 유 전 본부장의 돈 전달 과정보다는 돈 전달 사실을 진술하게 된 의도, 나아가 진술하기로 변심한 의도에 집중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재판장은 유 전 본부장의 변심 이유를 물으면서 ‘신빙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는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부원장에게 돈을 준 과정을 아무리 상세하게 설명하더라도 재판장에게 더 중요한 건 유 전 본부장이 진술을 하게 된, 변심을 하게 된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형사재판을 많이 한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진술 증거를 인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술의 의도이지 진술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술 내용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왜 이런 진술을 하게 됐는가를 먼저 납득해야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거죠.
유 전 본부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 변호사 때문에 이재명 대표에게 실망해 진실을 털어놓게 됐다는 유 전 본부장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다면 진술 내용도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검찰의 회유나 협박 또는 다른 이유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재판부가 판단한다면 진술 내용의 신빙성도 의심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시각입니다.
↑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유 전 본부장의 진술 의도에 대한 신빙성은 비단 김용 전 부원장 재판에만 영향을 주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정진상 전 부실장, 나아가 이재명 대표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때문에 이 대표와 김 전 부원장, 정 전 부실장 등은 유 전 본부장의 진술 의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이틀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