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들은 충성심이 대단하다.’ ‘진돗개는 다른 동물을 경계하고 수컷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립축산과학원 누리집에 게재된 개 품종별 소개글 일부다. 과연 푸들과 진돗개 반려인 모두가 여기에 동의할까. 이 설명은 일견 맞기도 하지만, 늘 옳지는 않다. 품종이 전부를 설명할 순 없다.
↑ 사진 픽사베이 |
까칠한 성격의 소형견 수리가 동네에서 호감을 보이는 개 셋 중 둘은 뜻밖에도 대형견이다. 하나는 알래스칸 말라뮤트고 다른 하나는 골든 리트리버다. 다른 개들은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안으라고 조르거나 주둥이를 씰룩이며 접근을 차단하는데, 저 두 마리한테는 먼저 달려가 왕왕거리며 알은척을 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수리를 소 닭 보듯 무심히 지나쳐 버리지만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나 체급이 차이 나는 대형견들만 좋아할까 궁금해 하다가 ‘맞아, 말라뮤트가 느긋하고 온화한 성격이랬지’라거나 ‘골든 리트리버가 순하다더니 그래선가?’ 하는 식으로 혼자 정리하고 말았다. 지극히 내가 아는 범위에서 품종별 성격에 대입하는 간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만사 ‘본디 그런’ 것은 없다. 사람도 상황에 따라, 오랜 시간 몸에 익은 습관에 따라 그때그때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지 않나. 그러므로 말라뮤트는 온화하다거나 리트리버는 순하다는 믿음은 옳지 않다. 비숑 프리제는 ‘비숑 타임’으로 대표되는 과한 활발함을 종의 특징으로 꼽지만, 내가 아는 비숑 ‘몽이’는 별명이 ‘개부처’다. 말그대로 ‘개바개’다.
작년에는 개의 성격을 결정 짓는 요인이 품종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였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연구팀은 1만8385명의 반려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개 2155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품종이 개의 행동을 설명하는 타당한 지표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78개 품종에서 개의 행동에 관여하는 11가지 유전자를 찾아 냈지만, 이 유전자가 특정 품종에 집중돼 있지 않다고 했다. 개가 보인 행동들 가운데 품종에 따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행동은 9%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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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위험하다고 알려진 핏불 테리어는 다른 품종보다 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냈다. 연구팀은 개가 보이는 성격은 품종보다는 개체가 지닌 특성, 즉 나이나 성별 같은 생물학적 조건과 더불어 경험과 환경 같은 후천적 요인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에 훨씬 무게를 두었다. 또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다양한 유전자 변이’를 꼽았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수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품종 개량이야말로 ‘개바개’를 설명하는 답이라는 의미겠다.
반려견 행동 전문가들은 개의 성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양육 환경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반려인이 개의 사회화 시기에 얼마나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지, 평소 어떤 태도로 반려견을 대하는지에 따라 개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연구진이 반려인-반려견으로 구성된 132팀을 대상으로 개와 사람의 상호 관계성을 실험했다. 결과는 예측하는 그대로였다. 반려인이 예민하고 비관적인 성향일 때 반려견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지 못했고, 느긋한 성격을 가진 보호자의 반려견은 느긋하고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의 품종 성격을 결정하는 범위는 9%라는 연구 결과를 다시 떠올려 보자. 나와 십수 년을 함께할 반려견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품종에만 의존한다면 배신당할 확률이 92%라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성향의 사람에게 어떤 품종의 개가 어울린다는 항간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책임과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개와도 환상의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9호(23.3.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