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명 넘는 피해자들, 잘못된 치료에 여전히 치아 교정
손배 소송 이겼지만…병원 파산선고로 돈 안 줘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5시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고 있는 한 형사재판을 보러 법정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래도, 업무가 끝나가는 시간인데다 관심을 끌만한 사건이 아니었는지 법정 안은 재판부와 검사, 피고인측 외에는 썰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한때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투명치과 먹튀 사건'입니다.
이날은 투명치과 강 모 원장의 15차 공판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안 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투명치과 사건은 지난 2018년 강 원장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는 '투명치과'에서 벌어진 사기 의혹 사건입니다. 일반 교정보다 훨씬 싼 투명교정을 해주겠다며 이른바 반값 이벤트 등을 내세워 환자들을 모집한 한 뒤 치료비는 선납으로 받아놓고, 교정치료는 중단해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건이죠.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피해자만 920명, 피해액은 36억 원이 넘습니다.
재판보다 눈에 띈 건 텅 빈 방청석에 홀로 앉은 한 남성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재판 도중 강 원장을 옹호하는 증인의 말이 나올 때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요. 이 남성은 32살 이성영 씨, 바로 투명치과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씨는 지난 2016년 투명치과 직원인 지인의 소개로 병원을 찾게 됐었다고 합니다.
이 씨를 응대한 건 한 상담실장이었다고 합니다. 상담실장은 이 씨에게 100만 원 씩 분납을 요청했고, 이에 이 씨는 먼저 1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씩 모두 210만 원을 내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 영업 당시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했던 투명치과 (사진=연합뉴스) |
그리고 치료 2년 째인 2018년, 치과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투명교정은 철사교정보다 효과가 적은데 병원이 억지로 권유했다', '투명교정을 하면 안 되는 환자한테도 권유했다' 등의 얘기가 퍼지기 시작했죠. 안 그래도 무리한 회원유치로 진료예약 잡기가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던 시기였는데 언론보도 이후 기존 의사들까지 그만두기 시작하면서 약속된 진료는 끊임없이 연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환자들은 병원으로 몰려와 상황을 묻거나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도 병원을 찾아갔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많이 와 있었어요. 중학생도 있고 고등학생도 있고. 거기서 시험공부를 할 정도였어요."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이 씨는 결국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고,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전에 돌입했습니다. 이 씨는 "사정이 있어 빠진 경우를 빼곤 모든 공판을 다 참관하고 있다.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돈은 날렸지만, 교정치료에 부작용이 있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 조용호 씨는 달랐습니다. 지난 2017년 미성년자였던 조 씨의 두 자녀는 모두 투명치과에서 교정치료를 받았습니다. 조 씨는 당시 인당 450만 원 이상 하는 교정치료를 인당 300만 씩에 해준다는 상담실장의 말에 아이들 치료를 맡기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될수록 조 씨 아이들의 상태는 더 나빠졌습니다. 교정이 되기는 커녕 부정교합이 심해져 입을 다물었을 때 이가 서로 제대로 맞물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 조용호 씨의 첫째 아이 치아 상태. 투명치과에서 교정 진료를 받은 뒤 다른 치과에서 찍은 사진으로 중간에 발치된 치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조용호 씨 제공) |
"나중에 다른 병원에 찾아가 봤더니 왜 발치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흘러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됐지만, 조 씨의 두 자녀는 지금도 교정치료를 다시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공판이 진행중인 형사 재판과 달리 민사소송은 대부분 끝난 상태입니다. 환자들이 대부분 승소했죠.
↑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연합뉴스) |
이성영 씨를 비롯한 피해 환자 103명은 2018년 강 원장을 상대로 돌려받지 못한 진료비와 함께 정신적 위자료까지 달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년 뒤인 2019년 법원은 진료비만을 돌려주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유석동)는 "장기간 제대로 된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병원이 이행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며 진료비를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진료가 조금 지체될 뿐 진료를 완전히 멈추지 않았고 진료를 끝낼 의지가 있다"는 강 원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죠. 다만, 법원은 재산상 손해 외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며 정신적 위자료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호 씨도 이 소송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 역시 진료비를 돌려받으라는 선고를 받아냈습니다. 소송마다 패소한 강 원장은 항소했다가 다시 취하함에 따라 선고는 모두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진료비를 돌려받은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강 원장이 현재 돈이 없다며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강 원장은 오히려 지난 2020년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결국, 남은 건 강 원장에 대한 형사재판입니다. 앞서 얘기한 공판으로 돌아가보죠. 지난달 27일 이날은 투명치과 병원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강 원장 측이 신청한 증인이었죠.
전 직원 : 그렇지 않습니다. 투명교정과 철사교정 중 어떤 게 좋다고 알려주지만 선택은 환자가 했습니다.
강 원장 측 변호인 : 병원의 시스템은 어땠는지 평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 직원 : 업계1위였고, 다른 병원들도 다 따라할 정도였습니다.
강 원장 측은 줄곧 사기 혐의를 부인해왔습니다. 병원 사정이 나빠져 진료가 밀린 건 맞고 그것 때문에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코 진료비를 뜯기 위해 사기를 저지른 건 아니라는 주장이죠. 교정방식도 환자가 선택한 것이고, 병원 시스템도 선진적이었다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언이었을 겁니다.
전 직원 : 어…병원 규모도 크고,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했고….
검사 : 규모는 따라할 수가 없는 것이고, 환자를 생각하는 건 모든 병원이 마찬가지겠죠. 정확히 무슨 시스템을 따라했다는 거죠?
전 직원 : ….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최창훈 부장판사는 이번 공판을 끝으로 모든 증인 신문을 마치고 다음 달 13일 결심공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 날은 피고인인 강 원장의 마지막 진술을 들은 뒤 검사가 형량을 구형할 예정입니다.
형법 전문가인 이종찬 변호사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계약을 한 시점에 피고인이 계약을 이행할 의지가 있었는지, 그리고 능력이 있었는지가 관건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는 강 원장이 과거 2010년 국세청으로부터 부과된 추징금 37억 원과 2014년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벌금 48억 원이 확정되는 등 재무상태가 악화된 상태였고, 이에 범행을 계획하게 됐다고 적시된 반면, 강 원장 측은 2013년 이후 병원 매출이 상승 추세였던 만큼 재무상태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