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상우는 `위기의 X`에서 현실공감대 200% a저씨로 분해 역대급 열연을 펼쳤다. 제공|웨이브 |
한동안 '단타성' 위주로 존재감을 보여오기도 했지만 권상우 특유의 성실하고 우직한 행보는 그의 인간으로서, 또 배우로서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체로 빛을 발했다. 여기에 '코미디'라는 장르를 만날 때면 그는 어쩌면 '권상우'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며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의 오리지널 시리즈 '위기의 X'(감독 김정훈)를 통해서도 마찬가지. 극중 권상우는 이른바 '중년의 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a저씨'(아저씨) 윤대욱으로 분해 현실보다 더 현실감 넘치는 위기의 순간들을 더없이 실감나는 '현실연기'로 풀어냈다.
주식 폭락, 집값 폭등, 권고 사직, 발기부전, 원형탈모, 여기에 건강이상까지.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을 법한 요소들이 이 'a저씨' 앞에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여기에 사랑스러운 아내와의 사이에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까지 덤으로 더해지니, 중년 가장의 어깨는 무겁다 못해 바스라질 지경. 권상우는 이 '웃픈' 상황을 눈물나게 웃긴 코미디 연기로 그려내는 데 성공, 중년 남성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배우' 권상우에게선 중년의 위기가 언뜻 떠오르지 않지만 그만큼 극중 'a저씨'로 빙의했기 때문일 터다.
"아마 배우 권상우라 극중 상황에 공감을 못할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권상우는 청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벌만큼 번다, 뭐 이런 부분들이요. 하지만 다른 문제예요. 어릴 때부터 데뷔해서 많은 사랑을 받은 시기도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는 허세도, 폼도 없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연기를 하지만 나한테 최고의 작품이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작품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위기감도 있죠. 더 잘나갔을 때는 명품 브랜드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 그랬는데 나이 먹으니까 연락 안 오고….(웃음) 어떻게 보면 일반 직장인보다 더 위기의 순간이 많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a저씨' 역할을 할 때 문제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잘 나가는 배우라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다 위기에 놓인, 똑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거죠."
↑ 권상우는 `위기의 X`를 통해 권상우표 코미디 연기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밝혔다. 제공|웨이브 |
권상우는 "만약 발기부전, 원형탈모란 소재 때문에 주저해 이렇게 좋은 시나리오를 놓친다는 건 배우로서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배우가 작품 하면서 망가지는 건 거리낄 게 없다"고 단언했다.
"멋있는 역할을 안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많이 했어요.(웃음) 이 작품 안에서 내가 봐도 이렇게 해야 재밌을 거 같은데, 표현을 하지 않는 건 배우로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망가져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배우로서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죠. 더하면 더했지, 덜한 건 없어요. 이 캐릭터를 사랑하고 즐겁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작품이면 망가지는 건 아무 상관이 없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편해지고, 놓게 되고 그러면서 오는 여유가 생긴 것일 수도 있어요. 물론 저는 (탈모·발기부전) 다 반대지만.(웃음)"
이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 덕분에 그는 '동갑내기 과외하기', '탐정' 시리즈로 대표되는 권상우표 코미디에 '위기의 X'로 또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호평을 받았다.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딱 두 달 촬영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고 매일 너무 재밌게 촬영을 했고, 그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작품에 나온 것 같아요. 제 나이대(40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모르게 권상우표 코미디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제 무기가 될 수 있는 장르가 생긴 것 같다고 할까요. 사실 코미디가 제일 힘든 것 같은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게 축복이죠. 현장의 즐거움을 더 알게 됐던 작품이었고, 열심히 연기하고 보여드리면 관객들이 알아주는 순간이 온다, 그런 걸 알게 된 현장이었어요."
↑ 권상우는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연기한다"며 감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공|웨이브 |
그의 말마따나 '위기의 X'는 희로애락으로 명명되는 삶의 모든 희비가 켜켜이 쌓여 '인생'을 보여준 작품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권상우에게 박수를 보내는 건 그 '공감'의 힘이 아닐까.
제작발표회 당시 "이번에 잘 안 되면 은퇴할 각오"였다며 어느 때보다 남다른 절박함을 보였던 권상우. 그는 "한두 작품이 잘 돼도 지금 작품이 안 되면 당장 온갖 비난이 쏟아지지 않나"라며 "벼랑 끝에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마다 위기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20대 초반에 화려하게 데뷔해,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그가 배우로 20년 넘게 살아오며 체감하는 변화에 대한 마음도 들려줬다.
"배우로서는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역할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심에서는 점점 멀어지죠.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해요. 마지막회 엔딩 장면 중 '인생에 가속과 감속이 필요하다'는 윤대욱의 대사가 있는데, 지금이 가속과 감속을 조정해야 되는 타이밍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가속은 들어온 작품을 잘 선택하는 것이고, 감속은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참여해도 캐릭터의 좋은 요소를 보여주는 거죠. 그런 속도를 잘 조절해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권상우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겠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