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사면 할부 값 때문에 몇 달은 긴축 재정을 하고,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지만 참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꿈에 나와 지갑을 열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옷질'을 해온 지 어언 10여 년. 소싯적에는 남성지 기자가 돼 옷더미 속에 파묻혀 사는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사 기자가 돼 패션과는 거리가 먼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등을 주로 만나며 '일은 일·취미는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흥미로운 취재원이 나타났으니 바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입니다.
한 장관이 검사장이던 시절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해 막힘없는 언변은 당시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신발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더블몽크(double monk)'라고 불리는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 기자가 과거 소장했다가 중고로 판매한 더블몽크 신발 |
이 신발은 발등에 끈 대신 버클로 돼 있는 구두인데, 제가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났던 취재원 가운데 이 신발을 착용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의 고위 공직자가 이를 신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 "더블몽크를 신은 공무원은 처음 본다. 패션 감각이 좋은 것 같은데 혹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까지 던졌습니다. 한 장관은 "자신이 입고 걸치는 것은 모두 직접 고른다”고만 답했습니다.
이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최근 SNS에서 본 한 옷가게의 게시물 때문입니다. '한 장관이 직접 구매 뒤 착용한 코도반 검정 벨트는 독점 판매하고 있는 제품으로, 현재 품절 상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장관은 취임 후 스타일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연예인은 입은 옷이나 소품이 품절됐다는 뉴스가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제 기억에 정무직 공무원의 패션에 이렇게 대중의 관심이 쏠렸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지난 1월 한 장관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두른 페이즐리 스카프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스카프도 모두 판매가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벨트와 스카프의 특징은 대량 생산해서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는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타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우연히 구경하다가 구매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러한 제품을 착용하고, 또 직접 구입까지 했다면 한 장관은 본인의 스타일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추론이 가능해 집니다.
이러한 관심이 왜 낯설게 느껴질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동안 사회 리더들의 스타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엄격한 '잣대'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한 대선후보를 돕던 인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남성 후보가 패션 감각을 선보일 수 있는 아이템은 '넥타이'뿐이라며 조금 더 감각적인 타이를 매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넥타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더군요. 색채가 화려한 해외 명품 넥타이는 구설에 오를까 걱정이 되고, 국내 중소기업의 제품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과거 미국의 유력 언론이 존 케리 당시 미 대선 후보에 대해 에르메스 타이를 즐겨 매는 베스트 드레서라고 언급한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한국과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커다란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패션 관련 유튜브 '풋티지브라더스'를 운영하는 강재영 유니페어 대표는 "한국은 유독 정치인들이 좋은 물건을 사용하고 멋을 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사회 리더들이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면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미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어쩌면 한 장관의 사례는 달라진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회 전면에 등장한 MZ세대는 더 이상 '나를 위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셀럽들이 똑같은 옷을 입어도 대중의 반응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한 장관의 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한동훈'이라는 인물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 한 장관은 '윤석열 내각'에 깜짝 발탁된 뒤, 청문회를 거치며 존재감을 부쩍 키웠습니다.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는 소식과 함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쏟아지니 그의 스타일이 더욱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한 장관은 단순히 멋을 내는 차원이 아니라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이미지를 연출하는 영리함도 엿보입니다. 지난 2020년 한 장관은 채널A 강요미수 사건과 관련해 수사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 앞에서 검찰이 자신을 기소해서는 안 되는 이유 등을 설득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서초동에 회자됐던 얘기에 따르면 한 장관은 평소에 쓰던 안경이 건방져 보일까 봐 조금 더 무난해 보이는 안경으로 바꿔쓰고 회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일부에서 '신드롬'이라고까지 부르는 대중의 높은 관심은 결국 '양날의 검'이 될 겁니다. 법무부 장관의 업무 영역은 매우 넓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법무부가 검찰과 극한 대립을 하며 검찰 관련 업무에 관심이 쏠리지만, 출입국 관리를 비롯해 교정 관리 업무·범죄 예방 정책 등도 모두 법무부 소관입니다. 업무 각각의 중요성에 비해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은 편입니다. 이러한 분야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 장관에 대한 높은 관심은 적지 않은 동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법무부의 업무 영역
[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