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투수가 타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공을 초구라고 부른다. 투수에게 초구는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하는 대상이며, 이제 이런 생각은 거의 종교적인 믿음 수준이 됐다. 하지만 반대로 초구에 대한 타자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루키 시절에 로저스 혼스비(명예의 전당 헌액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2루수)가 해줬던 ‘Get a good pitch to hit(좋은 공을 골라 쳐라)’는 말을 자신의 ‘타격 제1원칙’으로 꼽았다.
자신의 저서 ‘타격의 과학(2011, 이상미디어 출판)’에서도 그는 타석에서의 신중한 접근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초구부터 성급하게 배트를 내는 타자를 시쳇말로 ‘극혐’한다.
↑ 두산 베어스 외야수 안권수는 올 시즌 초구를 적극 공략하며 KBO리그에 순조롭게 적응 중이다. 몸을 날리는 허슬 플레이는 안권수의 또 다른 생존 비결이다. 사진=김재현 기자 |
그리고 일본 아마야구에서 성장해 독립리그과 실업팀을 거쳐 KBO리그로 온 ‘야구 미생’ 안권수(두산)는 적극적인 초구 공략을 선택했다. 그게 방랑했던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KBO리그에 뿌리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즌 전 백업 멤버로 평가받았던 안권수는 올 시즌 47경기에서 타율 0.326와 OPS 0.783을 기록하며 두산 외야 한 축을 든든히 지키는 주전으로 거듭났다.
이런 안권수에 대해 김태형 두산 감독은 “타격감도 좋고 본인이 확신을 갖고 타석에 임하는 것 같다”면서 “체력도 좋고, 파워도 있다. 수비도 좋고 발도 빠르다”라며 드물 정도로 칭찬을 쏟아냈다. 평소 선수들을 평할 때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는 ‘엄한’ 김태형 감독답지 않은 표현이었다.
이에 대해 11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만난 안권수는 “첫 타석이 제일 좋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며 “일단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해서 출루하려 한다”며 올 시즌 타석에서의 전략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권수는 “준비가 잘 돼야 초구부터 칠 수 있으니까, 상대 투수가 뭐가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보고 영상도 보면서 준비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단지, 그냥 초구부터 치는 접근이 아니다. 철저한 분석을 통한 ‘나만의 존’을 갖고 자신감 있는 스윙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 안권수가 웃는 일이 많아진다면 두산 외야와 타선의 고민도 줄어들 수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리고 조부모의 나라인 한국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해 2020년 두산의 10라운드 전체 99순위라는 극적인 선택을 받고 프로에 입단, KBO리그에서 3년째 뛰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 입은 프로 유니폼이지만 1군의 벽은 높았다. 안권수가 2년간 소화한 타석은 88타석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올해 기회는 안권수에게 더 절실한 순간들이다.
‘주전 자리를 거의 굳혀가고 있다. 현재 기분은 어떤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안권수는 곧바로 “아닌데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현재 1군 경기에 나서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
대신 안권수는 타석에서 “공격적으로 해야 (상대) 포수도 많이 생각할 것 같아서 더 공격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했다.
과거 한국과 일본의 많은 야구 지도자들은 타자가 초구부터 성급하게 스윙을 해서 기회를 놓치는 상황을 크게 질책하는 경향이 있었다. ‘개인의 활약’보다는 ‘팀의 결과’에 우선하라는 게 아시아 야구계를 수십년째 지배한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 일본야구에서 성장해 한국에서 뛰고 있는 안권수는 어찌보면 ‘이단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안권수는 “초구부터 잘 쳐야 좋은 타자니까. 그리고 프로 선수라면 초구를 잘 맞혀야 되는 것 같다”면서 “지금 자신감은 없지만 그냥 내 스타일로 계속하고 있다. 내 스타일로 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안권수는 “일본에서 뛰던 당시 포수들에게 물어보면 ‘확실히 초구부터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무섭다’고 이야기 해줘서 그 이후로 늘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안권수가 타석에서 적극적인 타자가 된 확신은 일본과 한국 야구를 직접 부딪쳐보고 배우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입단 당시에는 간단한 의사소통도 하지 못했던 안권수는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통역의 도움 없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됐다.
안권수는 “솔직히 2주 전까지 체력 관리를 잘 못 해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선배들한테도 많이 물어보면서 이제 배우고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맨날 런닝을 했는데 우리나라는 문화가 런닝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며 양국의 차이를 설명했다.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 안권수의 적극적인 초구 공략은 그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자신만의 스타일이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리고 안권수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달리기가 빠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힘이 너무 좋다”면서 “한국에선 장타가 꼭 있어야 한다”며 양국 타자들의 차이를 설명했다.
안권수는 양국 야구의 차이를 더듬더듬 설명하면서 내내 한국 쪽 입장을 ‘우리나라’로 표현했다. 안권수에게 이미 한국은 남이 아닌 우리였다.
이런 안권수에겐 여름까지 쭉 야구를 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본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가 1군에서 뛰고 있는 안권수를 보러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안권수는 “가족들이 아마 7월 중순에 올 것 같다”며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겠다’는 취재진 질문에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말도 문화도 다른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수년이다. 왜 어려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안권수는 ‘비밀’이라고 조용히 웃으며 그 시간을 가슴 속에 묻어뒀다.
다시 테드 윌리엄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이란 스스로
그렇다면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고를 떠나, KBO리그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각하고 나서 ‘자신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안권수는 이미 야구 완생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실(서울)=김원익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