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사건을 보도한 기사 / 사진= 월스트리트저널(WSJ) 웹사이트 갈무리 |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옛 소련의 붉은 깃발을 흔드는 모습이 찍힌 영상으로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었던 우크라이나 60대 할머니가 이번에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을 비판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소련과 러시아는 별개라고 말하며, 이번 전쟁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개전 후 수주가 지난 시점이었던 3월 어느 날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 외곽 마을 주민 안나 이바노바(69)는 자신의 집을 지나는 자국 병사들을 보고 나와 옛 소련 국기를 펼쳤습니다.
당시 그는 지나가는 병사들이 러시아군 병사들인 줄 알고 환영하려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과 푸틴,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고 말했지만, 병사들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말한 뒤 이바노바에게서 깃발을 받아 땅에 내려놓고 짓밟았습니다.
분노한 이바노바는 우리 부모님은 이 깃발 아래에서 싸웠다며 "깃발을 내게 돌려달라"고 외치며 병사들이 그를 달래려 건네는 식료품을 뿌리쳤습니다.
해당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이후 소셜미디어(SNS)에 올라갔는데 러시아에서는 큰 인기를 끌며 이바노바는 '안나 할머니'란 별명이 붙은 채 러시아 선전전의 핵심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자국과 우크라이나 점령지 곳곳에 옛 소련기를 든 이바노바의 모습을 딴 동상과 벽화, 간판 등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 마리우폴에 세워진 소련기를 든 여인상 /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이번에 WSJ 기자를 만난 이바노바는 선전전에서 표출된 이미지와 달리 이번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는 "푸틴에게 전화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들과 우리의 아들 중 누구도 죽어야 하지 않도록 전쟁 없이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왜 불가능했느냐고"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바노바는 "이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에 막대한 재앙"이라며 "우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무엇을 했기에 우리를 죽여야만 하는가?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 우크라이나는 그들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바노바에 따르면 그는 과거 소련 체제에 익숙한 평범한 우크라이나 할머니지만 1991년 소련 붕괴의 여파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옛 소련은 훨씬 살기 좋았던 시절로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이바노바는 이번에 펼쳤던 옛 소련 깃발은 푸틴 대통령이나 전쟁 지지와는 무관하다며 "나에게 이건 2차 세계대전을 끝낸 평화의 깃발이다. 이건 악의 깃발이 아니라 사랑의 깃발이다"고 밝혔습니다.
WSJ에 따르면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바노바는 불과 몇 ㎞ 거리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포격전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마을에 남은 채 교회에서 전쟁이 빨리 끝나길 기도하고 있습니
이바노바는 "전쟁이 이어지면서 매일같이 포탄이 우리 위를 날아다닌다. 포격이 있을 때마다 깨진 창문을 고치는 것도 의미가 없다"며 "이제 정원에 씨앗을 심고 있지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삶이 한 가닥 실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고 털어놨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