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배터리는 에너지 저장장치와 농업용 운반차량으로 활용된다. [사진 출처 = 재규어, 제주테크노파크] |
대세가 된 전기차는 1886년 세계 최초 자동차로 특허를 받은 삼륜차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등장한 이후 130년 넘게 주도권을 차지했던 가솔린·디젤차(석유차) 시대의 종식을 앞당기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지난 2020년 처음으로 200만대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473만대로 급증했다.
전기차는 2030년에는 지금보다 5배 이상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 테슬라 모델Y [사진 출처 = 테슬라] |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같은 시기에 3000만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전기차 시장규모도 테슬라,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르노, 쉐보레, 벤츠, BMW, 포르쉐 등에 힘입어 빠르게 커지고 있다.
9일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연료별 판매현황(승용차 기준)을 분석한 결과다.
국내 전기차 판매대수는 2016년 5148대에서 2017년 1만4224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7만1505대로 전년의 3만1297대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 제주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사용 후 폐배터리들이 보관돼있다. [사진 제공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전기차는 화석연료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배출가스 제로(0)'다. 단, 주행 단계에만 해당한다.
전기차를 생산하고 운행하는 과정에서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석탄 화력발전소 에너지 생산비율은 35.6%다.
전기차 생산공장·운행 지역에 공급되는 전력의 종류를 분류하지 않고 단순 수치상으로 계산할 때 전기차 생산·충전용 전기 35% 정도는 친환경과 거리가 먼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화석연료를 통해 전기차를 생산한다면 전기차 출발은 친환경과 멀어진다. 전기차 충전용 전기까지 화석연료로 만든다면 친환경 의미는 더욱 퇴색될 수밖에 없다.
↑ 수거된 사용 후 배터리 [사진 출처 = 제주테크노파크] |
환경부가 2016년 수행한 '자동차 온실가스 라이프사이클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분석' 연구에서는 단순 운행 기준으로 1㎞ 주행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전기차가 86.9g으로 디젤차(137g), 가솔린차(177.4g)보다 적다고 나왔다.
하지만 차량·배터리 생산·폐기 과정을 포함하면 전기차가 1㎞ 주행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49.12g으로 가솔린·디젤차(44.55g)보다 10%(4.57g) 더 많았다.
전기차로 사용하다 폐기된 배터리도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코발트, 리튬, 망간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들어있어서다.
국립환경과학원도 친환경차 폐배터리를 산화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 등을 1% 이상 함유한 유독물질로 분류한다. 화재·폭발 위험도 있다.
↑ 제주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전기차 폐배터리 팩들이 보관돼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코발트는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금속 원소다. 원소기호는 'Co'. 일산화탄소(CO)와 혼동하기도 한다. 이름은 독일 전설에 나오는 도깨비 '코볼트'에서 유래했다.
코발트 광석은 고대부터 우수한 청색재료로 인정받아 유리나 도자기 등 사치품을 만들 때 사용됐다.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묘에서 발견된 진청색의 유리 제품, 이슬람 모스크의 푸른 모자이크 타일, 조선시대 청화백자에도 사용됐다.
아름답고 비싼 코발트 광석 상당수는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코발트 최대 생산국은 중부 아프리카 적도에 걸쳐있는 콩고 민주공화국이다. 세계 연간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 제주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시험이 완료된 배터리 모듈이 보관돼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코발트 광석 상당수는 사람의 손과 삽으로 채굴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콩고산 코발트 수출량의 20%가 아동 노동이 만연한 수작업 광산에서 채굴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하루 12시간을 광산에서 일하며 1~2달러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국제기구인 국제앰네스티는 코발트 채광 과정에서 이뤄지는 아동 노동의 실태를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발트에 숨어 있는 비참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배터리를 사용하는 몇몇 기업들은 콩고산 코발트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코발트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수입하지 않는다고 콩고 코발트 광산의 비참한 현실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BMW그룹은 이에 삼성전자, 삼성SDI, 바스프, 콩고 정부 등과 공동으로 '착한 코발트' 채굴을 위한 산업협력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 배터리 모듈 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동훈 제주테크노파크 활용기술개발팀장 [사진 제공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형태는 바뀌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환경오염을 계속 일으키는 폐배터리를 쓸모 있게 다시 바꾸는 과정이다.
폐배터리 다시 쓰기는 중·장기 정책으로 추진해야 할 전력 대책보다는 실행 속도도 효과도 빠르다.
폐배터리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어 돈도 된다. 삼정KPMG는 최근 '배터리 순환경제,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의 부상과 기업의 대응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규모는 2025년부터 연평균 33% 성장, 2040년 573억달러(72조원)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폐배터리 활용은 크게 2가지로 추진된다. 재활용(recycle)과 재사용(reuse)이다.
↑ 사용 후 배터리 유통이력 관리시스템 [사진 출처 = 제주테크노파크] |
여기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회수한다. 배터리 원료를 다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광산'으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폐배터리에서 원자재를 추출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재활용이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이 폭등으로 재활용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추출기술도 폐배터리에서 주요 금속의 70~90%를 회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배터리 재사용은 폐배터리 상태를 점검한 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기차에 주로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전기차용으로는 쓸모가 다한 배터리도 신품의 60~80% 수준의 성능은 보유하고 있어서다.
↑ 폐배터리로 다시 탄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진 제공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제주테크노파크는 지난 4일 한국자동차기자협회(회장 이승용)에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를 공개했다.
제주테크노파크는 이 자리에서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전주기 체계'를 통해 대기환경보존법에 따라 수명이 다한 전기차의 배터리를 대상으로 '회수→안전→보관→시험평가→보급→연구지원' 원스톱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 사용 후 배터리 활용 범위 [자료 출처 = 제주테크노파크] |
지금까지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가 회수한 배터리는 250개 정도다. 이를 활용해 전기차 충전스테이션 연계형 제품, 가로등 연계형, 농업용 운반차 등 8건을 개발했다.
이곳에서는 72시간에 걸쳐 폐배터리 팩의 성능과 안전을 검사한다. 우수 등급 판정을 받으면 전기차 충전, 가로등, 휠체어, 농업용 운반차 등에 재사용된다.
비우수 등급 판정을 받은 모듈은 리튬, 니켈, 망간,
폐배터리는 재사용·재활용을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친환경 이동·운송 수단을 확산시키는 '갓데리(god+밧데리)'로 거듭나고 있다. 전기차도 지구도 다시 '살맛'나게 만들어준다. '돈'도 된다.
[제주 =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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